환몽

by J팔

달동네, 높지만 높지 않은 곳. 화려한 것을 볼 수 있지만 만질 수는 없는 곳. 이런저런 아름다운 말로 포장되는 곳이지만 결국에는 매섭게 불어오는 삭풍에 온몸이 베이고 찢겨지는 곳일 뿐이다.
이상하지. 한없이 이리동동 저리동동 거려도 결국에는 제자리 걸음이니 저 멀리 보이는 높은 빌딩을 북두칠성마냥 바라보며 앞으로 앞으로 가지만, 하늘 위에 떠 있는 진짜 별마냥 평생을 기어도 근처에도 못 갈 것 같은 기분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 많은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릿속은 이미 에버랜드고 디즈니랜드인데 주위의 모든 것들은 짓다 만 폐건물 같았다.
헛웃음을 지으며 마음속 욕망을 위해 욕구를 꾹꾹 눌러 앞으로 가지만 잘 되지 않는다. 욕구는 배고프다며 칭얼대고 칭얼댄다. 조금 주면 더 달라 하고, 더 주면 더 달라 한다. 한 번 주기 시작한 배는 줄어들지 않고 더 커져 간다. 처음 줬던 양만큼 주면 이제는 간에 기별도 안 간다는 듯 입을 벌려 댄다.
점점 배가 불러 욕구로 무거워진 나는 뛰는 것은 물론 걷지도, 기어 가지도 못한다. 욕망은 현실 속 존재가 아닌 환상 속 존재가 되어버린다. 이상하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욕구라는 녀석의 입은 대책이 불가능할 정도로,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을 보이며 입을 벌려 댄다.
그 순간 선택해야 한다. 칼로 입을 잘라 버리든지, 아니면 내 몸을 던져야 한다. 둘 중 하나가 나쁘거나 좋은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런 거다. 그냥 선택과 책임만 있을 뿐이다.
결국에는 늙을 테고 죽을 테니 일생이라는 게 어쩌면 지포라이터로 불 붙이기 전 잠깐 터지는 스파크 같은 것 같다. 운이 좋으면 불이라도 되어 죽지만, 불이 되지 못하면 잠깐 반짝이며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 휘날리는 부싯돌이었던 작은 알갱이가 되는 것 같다.
달동네에 아무렇게나 지어진 계단 위를 성큼성큼 오른다. 날씨는 춥고 달은 밝다. 목이 말라 주머니에서 팩 소주를 꺼내어 계단을 오르며 조금씩 마신다. 소주라도 마셔야지, 뼛속까지 파고들어오는 추위 때문에 아려 오는 고통을 이겨내며 계단 위를 걸을 수 있다. 달동네가 왜 달동네가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달이 가장 아름답게 떠 있는 곳이라 달동네라 지은 것은 아닐까 한다.
커다란 달을 보며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희미하게 들려오는 캐럴 노래를 반주 삼아 소주를 마신다. 가끔은 계단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계단 아래로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계속해서 내려가다 보면 ‘달’ 안으로 빨려 들어가겠지 하는 생각이 든다.
알코올이 몸에 퍼지며 여러 상상을 하게 된다. 술에 취하기 전에는 스스로도 부끄러워 상상하지 못하는 것을 상상한다. 그래야 이 지긋지긋한 계단을 오를 수 있다. 환상에 취해야 그래야 걸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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