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어회

by J팔

가끔은 아주 가끔은 생것이 땡길 때가 있다. 방금 전까지 살아 있었다. 운명을 달리하신 존재들 말이다. 그런 것들에는 대형마트 냉장고에 처박혀 있거나 유효기간이 거의 무한대나 진배없는 매대에 깔려 있는 것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무언가가 있다. 그것을 분명하게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개똥밭에 굴며 왜 살아가야 하는지 모른 채 꾸역꾸역 버티기만 하다, 어찌저찌 살다 보니 숨통이 트여 살 만하다 싶어졌을 때. 사는 거, 먹는 거, 가격을 따지기보다는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를 먼저 생각할 정도의 여유가 생겼을 즈음에 주위에는 없었다.


마음 편히 술 한 잔 하자 말할 수 있는 사람조차 말이다. 처음에는 고독하기도 쓸쓸하기도 했지만, 내가 원하는 왕관의 무게가 이런 것이라면 그냥저냥 이런 건 참을 만했다. 오히려 알 수 없는 공허에 헤매었을 때가 더더욱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때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아무것도 없는 거였다. 주위를 둘러볼 그런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여유’가 없었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여유라는 것은 마른오징어를 짜도 물이 나온다는 말에 비유하듯, 짜면 나오기 마련이다. 이렇게 말하는 게 맞을 것 같다. ‘그릇’이 안 됐다라고 말이다. 추상적인 표현이기는 하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는 가장 확실한 표현일 거다.


아무튼 어찌저찌 숨통이 트여도 당장 그것이 와닿지는 않았다. 주위를 갑갑하게 하던 것들이 하나둘 풀리기는 했지만, 아직 마음에는 그전에 옥죄어 왔던 옷들뿐이었기에 작은 옷의 기준에 맞춰 입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점차 분위기에 적응이 되면 번데기가 허물을 벗듯이, 가재가 새로운 집을 찾듯 옷을 갈아입기 시작하면서 몸도 마음도 고요한 물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새해를 맞이했다. 그동안 고마운 사람에게 그동안 못 했던 표현을 하고 인사를 나누었지만, 그들은 고마운 존재일 뿐 편한 존재이지는 않았다.


추운 날이었다. 집에 덩그러니 혼술하기에는 조금 뭔가 헛헛했다. 꾸역꾸역 가장 편하고 따뜻한 옷을 갈아입고 도심에 몸을 맡겼다. 굳이 먼 거리까지는 가고 싶지 않았다. 근처에 괜찮은 안주를 파는 곳이면 괜찮았다. 그렇게 걸었다.


주위에 새해라 그런 것인지 문 연 곳이 별로 없었다. 평소에 자주 먹던 음식점들만 문을 열었다. 나올 때는 아무거나라도 좋다고 나왔지만, 막상 나오니 그래도 조금 색다른 것을 먹고 싶었다.


그렇게 걷다 보니 화려한 것인지, 아니면 잘 꾸며 놓은 것인지 모를 횟집을 발견했다. 가장 땡겼다. 주위를 둘러봐도 그저 그런 곳뿐이었고, 나올 때는 상쾌하게만 느껴졌던 차가운 바람도 점점 칼이 되어 얼굴을 아프게 했다. 결국에는 횟집에 들어갔다. 화려한 겉모습과는 달리 안은 아늑한 느낌의 인테리어였다.


중국풍 같기도, 일본풍 같기도, 한국풍 같기도 한 모습이었다. 좋게 말하면 이색적으로 잘 믹스했다고 말할 수 있고, 나쁘게 말하면 좋은 것은 다 갖다 붙였다고 말할 수 있는 인테리어였다. 어지럽지만 어쩐지 아늑했다. 아마도 어렸을 적 내가 이런 분위기의 집에서 살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님은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을 정도로 있었다. 가게에 들어갈 때 혼자서 먹어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일까 하고 뻘쭘뻘쭘하게 들어갔지만, 혼자서도 먹을 수 있는 1인석 자리들이 있었다. 자리에 앉아 메뉴판을 보니 1인이 먹을 수 있는 모둠회가 있어 그것 한 개와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시간이 흐르고 주방장인지 서빙하는 알바생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쁘게도 꾸며 온 회 접시를 가져와 부위와 부위별로 먹는 방법을 설명해 주었다. 설명해 주는 사람의 말이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접시 위에 올려진 회들만 보아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건 정말 맛있는 거다, 라고 말이다.

분명 방금까지 살아 있었던 거다, 라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생기’가 느껴졌다. 음식을 오면 바로 집어 먹는다, 아마 살면서 처음이리라. 음식을 그토록 오랫동안 쳐다만 보고 있었던 것은.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회에서 기름이 흐르는지 윤기가 흘렀다. 젓가락으로 천천히, 정성 들여 입안으로 넣었다. 설명할 수 없는 맛이다. 이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는 맛이다. 하지만 씹으면서 하나는 느꼈다.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느꼈다.

여유로워졌지만 그냥 그게 전부였던 하루였다. 안도했다. 그전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게 좋았다. 하지만 방금 전까지 팔딱이던 살아 있던 회를 한 점 집어 먹으면서 느꼈다. 나에게도 ‘욕망’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더 팔딱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더 살아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평생을 이런 음식을 먹고 싶었다.


그날 난 무엇을 먹었는지 모르겠다. '화중왕' 평생을 살며 한번쯤 들었던 단어지만 이말에 뜻을 모른다 하지만 음식을 꼭꼭 씹어 먹으며 이단어가 떠 올랐다. '화중왕'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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