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J팔

난 꿈꾸는 것을 좋아했다. 어떤 이는 꺼림칙하다고 말할 수 있는 꿈조차 사랑했다. 나에게 있어 ‘잠’은 피곤함과 욕구를 해소해 주는 것 이상을 넘은 행위였다. 난 크랑크 박사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일 거다.


어느 날부터 꿈을 꿀 수 없었다. 뭐, 처음에는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꿈을 꾸지 않는 날이 길어질수록 알 수 없는 불안함과 초조함이 찾아왔다. 꿈을 꿀 수 없어 잠을 자도 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니 많은 잠을 자도 피곤함이 사라지지 않았다.


의미 없는 피곤함에 일상생활 속에서 ‘나’는 ‘나’인 것 같지 않았다. 생활 또는 일에서 보여줬던 ‘나’다움도 점점 옅어져 갔다. 꿈이 아닌 다른 자극으로 불안함과 초조함을 지워 보기도 했다. 처음에는 건전함을 좇았다. 운동, 독서, 규칙적인 삶. 하지만 물에 젖은 장작이 되어 버린 난 아무리 부싯돌로, 라이터로 불을 피우려 해도 피워지지 않았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옅음의 색이 짙어지니 잿빛으로 변하는 내 모습이 나만이 아닌 다른 타인조차 알아봤다. 처음에는 걱정과 격려로 힘을 보태어 줬지만 그들 또한 그들의 삶의 팍팍함에 하나둘 떠나갔다. 그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사회라는 구성원에 속하기 전부터 하나의 철학이 있다. ‘각자도생’. 별볼일 없는 집이 유일하게 화목할 수 있었던 우리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지론이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손을 벌일 일을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대신, 나 또한 삶을 살며 손을 내밀어 준 기억이 없다. 그러기에 섭섭함, 서운함 이런 건 없었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에 어쩌면 주위 사람을 도우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귀찮고 품이 들지만 말이다. 일종의 특약 보험처럼 말이다.


건전한 것을 넘어 술과 담배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살며 평생을 해 오지 않던 거라 얼마 가지 않아 하지 않게 됐다. 술과 담배를 좋아하는 부류를 이해할 수 없는 근거만 늘어난 경험이었다. 하지만 술만큼은 가끔은 이해할 수 있었다.


햇빛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정도로 달구어진 시멘트 바닥에 팔닥이는 생선처럼 지내다 이내 기운이 빠질 때쯤, 누군가 나의 손을 잡고 어디론가로 끌고 갔다. ‘현대미술관’. 살면서 문화생활이라고는 그나마 값싸게 할 수 있는 영화가 전부였는데, 미술관은 처음이었다. 심지어 영화보다도 쌌다. 하지만 그 어떤 신선함보다 신선했다.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공기, 분위기, 색 모든 것이 말이다.


누군가는 날 방치해 두고는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주위에 자연스럽게 헤엄쳐 다니는 물고기들처럼 말이다. 난 너무 육지에 살아 헤엄치는 방법을 까먹은 물고기처럼 이리 쭈뼛, 저리 쭈뼛했다. 하지만 물고기는 물고기였는지 점점 본능적으로 헤엄치기 시작했다.


꿈이 아닌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자고 있지 않는데 자는 것 같았다. 난 그렇게 또다시 꿈을 꾸었다. 그날 이후로 난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꿈이 꾸어지지 않는 날이 오면 아파서 병원에 가는 환자처럼 이 미술관, 저 미술관을 기웃거렸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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