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고향에 내려왔습니다. 고향이라는 말이... 고향이라 하면 논 있고 밭이 있고 과수원쯤은 있어야지 고향이라는 말이 나올 텐데 이제 고향이라는 말보다는 예전에 살았던 동네라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주소만 틀 리뿐 현재 살고 있는 곳과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동네의 모습이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불편하지는 않지만 좋은 건 아닙니다. 무채색이 짖게 깔려있는 것 같습니다. 같은 색을 너무 오래 보면 색깔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빨간색도 봤다, 파란색도 봤다, 초록색도 봐야 내가 색깔이 있는 곳에서 살아가는구나 세상이라는 곳은 고정된 곳이 아니라 돌아가는 거구나 하는 걸 느끼는데 고향이라고 생각하는 곳마저 같은 색깔이면...
감개무량하다는 말을 쓰고 싶어도 쓸 수 없음에 답답해서 그런가 추운 날씨에도 차가운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땡겨 커피점에서 Grande 사이즈로 주문했습니다 결제는 스마트폰으로 Pay 이 결제를 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이 됩니다. 한 번은 폰 액정이 깨져서 3일 정도 폰을 못 사용하게 된 적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3일 동안 멘붕이었습니다. 무언가에 중독이 잘 안 되는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다 이때는 중독이라는 말보다 스마트폰에 길들여졌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스마트폰이 삶을 사는데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이미 그것에 노예가 되어있었던 겁니다. 3일 동안 모든 것이 불편하더군요 모든 것에서요 일, 놀이, 결제, 연락 등등등 손바닥만 한 이 물건에 내 생활 많은 것들이 좌지우지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 밸런스 게임 많이들 하더군요 현금 200만 원 들어 있는 지값VS 스마트폰 중 어느 것을 분실하겠습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전 차라리 지갑을 잃어 버리는 게 났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의 많은 것들이 추억마저도 담겨있는 물건이니깐요.
이런저런 생각에 아버지 집으로 갑니다. 아버지와는 그리 많은 대화를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서먹서먹한 사이도 아닙니다 뭐랄까 보통의 부자관계라 할까.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버지는 목욕탕에나 갈까라고 말합니다. 가기 귀찮아 이 시국에 목욕탕은 좀이라고 말해보지만 아버지는 사우나를 하고 싶은 가봅니다. 어릴 적에는 아버지와 일주일에 한 번씩은 같었습니다. 종교활동 같은 거라 말해야 하나요. 일요일은 오전은 시간을 비워두었습니다. 꼭 그러자고 한건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하나의 룰이 되었습니다. 그 룰을 깬 건 저이지만요. 중학교를 때부터 친구들과 노는 것이 더 좋아 두 주에 한번 세주에 한번 한 달에 한번 이렇게 아버지와 목욕탕 가는 횟수가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같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냥 가끔 누구 한 명 갈까라는 말이 나오면 약속시간을 정하고 그 날짜 그 시간이 되어야 같습니다. 오늘은 목욕탕 가기로 한건 아닙니다. 날씨가 추워 뜨끈하게 몸을 지지고 싶은 가봅니다.
저도 가는 길이 귀찮아서 그렇지 막상 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기지개를 켜며 그럼 가자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집에서 샤워를 합니다.
지금은 익숙한 일이지만 처음에 이것 때문에 투닥거렸습니다. 왜 목욕탕 가는데 왜? 샤워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남들 시선 때문인지 남들을 배려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목욕탕 가는 시간이 깁니다 이 시간에 갔다 왔으면 벌써 갔다 왔을 겁니다. 목욕탕 가기 전에 저는
항상 편의점에서 캔커피를 한 개 사서 먹고 갑니다. 아버지는 생수 한 병 커피를 물 마시듯 마시는 저를 아버지는 이해할 수 없나 봅니다. 하지만 목욕탕 가기 전 캔커피는 사우나를 본격적으로 하기 위한 저의 마음 가짐입니다 반신욕으로 내 몸안 속 깊은 까지 있는 나쁜 것들을 다 뽑아 버리겠다는 의지 같은 겁니다. 하지만 커피를 물 마시듯 마시는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는
이상한 눈빛으로 흘깁니다. 한 번은 이것 때문에 투닥인이후로 입만 아픈지 딱히 뭐라 말하지는 안지만 눈빛으로 말을 합니다.
목욕탕에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시국이라 목욕탕에 사람들이 없어서 엄청 좋았는데...
가끔은 혼자서 할 때도 있었는데... 방역 패스라고 하나 백신 패스가 생긴 이후에 오히려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목욕탕 가면 무언가 죄인이 된듯한 느낌이었는데 백식 패스라는 것 때문에
당당해질 수 있는 면죄부를 얻어서 일까요.
샤워를 하고 난 뒤 아버지와 저의 목욕 순서는 전혀 틀립니다. 각자 취향 되로 움직이죠 근데 마지막은 뜨끈한 탕에서 만나서 목까지 몸을 담그고 옆에서 이상한 소리 내면서 아이고~ 시원하다~를 서로 연발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물어봅니다. “때 밀레?” 예전에는 때 밀어줄까였는데... 나는 됐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저도 물어봅니다. “아빠는?” 고개를 절레절레 합니다
그리고 저는 말합니다 “밥은” 아버지가 말합니다 “거기 그거” 배가 고파옵니다
목욕하고 나서의 공복은 오히려 고통이 아니라 어떠한 나른한 황홀감 같은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목욕탕과 집까지의 거리는 애매합니다 걷기에는 멀고 그렇다고 차를 타기에는 가까운 거리입니다. 그래도 안 걷고 버스를 탑니다. 근데 웬일인지 아버지가 걸어서 가자고 합니다.
딱히 싫지는 안아 걷기로 합니다. 동네에 오래 살아 아버지는 오다가다 아는 사람을 많이 만납니다. “어디같다오노~” “야랑 목욕~” “오랜만에 보네 마이 킀네” 저도 얼굴은 기억하는 사람들이라 어색하게 인사를 합니다.
오랜만에 골목길을 걸어봅니다. 어렸을 때는 이 골목 저 골목을 발바리처럼 돌아다녔는데...
골목길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추억들이 생각나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 그렇게 놀았지 하고 생각이 납니다 여러 가지 게임을 만들어서 놀았습니다.
어떤 놀이인지 그때만 해도 이름이고 게임 룰을 줄줄 꿰고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도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하지만 그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감정만은 가슴속에 남아있습니다.
골목길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어떤 건물을 허물어지고 어떤 건물은 새로 지워지고 그렇게 골목길이
변하는 건지 사라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는구나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골목길에 작았던 내가 요리조리
뛰어다녔는데 어느새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이 든 사람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니깐요.
그때 같이 놀던 아이들은 잘살고 있으려나요. 평생이었던 존재가 한순간이라는 것이 가슴 한편
또 그럽니다. 아버지는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합니다. 거의 모든 순간을 이곳에서 살았는데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가끔 이 동네 였날에는 이랬었다라고 많이 이야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재가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그런 말이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아마 저와 같은 감정 기분을
느꼈던 같습니다. 아버지가 살았던 골목길은 이제 다 없어졌으려나요.
아버지 정도 나이가 됐을 때 다시금 여기 온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골목이라는 단어가 있긴 하게 될까요.?
저의 추억은 아마 발전이라는 이름에 살아져 없어질 것 같습니다.
추억은 사라져 가기 때문에 생겨난 단어 같습니다.
조금은 천천히 조금은 더디게 조금은 내가 모르게 사라져 같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어린 '나'로 남아있을 것 같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