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반가운 사람을 보기로 했습니다. 3년 만인가 4년 만인가 어찌저찌 연락이 되어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꼭 만나고자 하는 의지... 음 마음이 있어서 만나는 건 아닙니다. 볼까 라는 저의 말에 상대방 또한 얼떨결에 수락하는 듯했지만. 뭐 영 보고 싶지 않으면 어떡해서든 이 핑계 저 핑계돼서 든 거절을 했을 겁니다. 바쁘다 하거나 몸이 안 좋다 하거나 만나는 것이 부적절하다거나 하는 그런저런 핑계 되며 다음에 보자거나 다음에 연락하자 하거나 했겠죠 만약 그런 거였다면 저도 굳이 만나려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깐 제 말은 그렇다고 해서 섭섭하거나 그런 것에 마음 아프거나 아리 거나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숫자만 많아지는 것은 아니거든요 마음이라는 게 닳아요 쇠붙이를 담금질하면 단단해지는 것처럼 아무리 순진한 사람도 아무리 마음이 여린 사람도 시간 안에서 어느 정도는 변화기 마련이죠 아마 4년 전에 이 사람에게 만나자고 이야기했다면 저는 마음을 졸였을 겁니다. 허락 안 해줄까 혹여나 안 만나주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으로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그냥 뭐랄까 그냥 그래요 만나주지 않으면 만나주지 않는 데로 만나주면 만나주는 데로 덤덤해졌어요. 그래서 그런가 먼저 만나자고 연락했을 때 어떠한 감정이 앞서서 라기보다는.... 어떡해 표현해야지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음 엄청 기대했던 개봉작을 보기 위해 영화관에 가는 게 아니라 음.... 예전에 봤던 그러니깐 인상적이게 봤던 영화를 다시 보는 마음이었다고 해야 할까요. 아무튼 그런 마음으로 연락을 했던 거 같아요. 어쩌면 그 사람도 저의 연락에 저의 만나자는 말에 무게가 없어서 수락해줬을 거예요. 저도 그렇거든요 만남에 무게가 느껴지면 꺼리게 되거든요. 아마 상대방 또한 그랬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의 보자는 연락에 수락했을 꺼라 생각해요. 커피 집에서 30분째 기다리고 있어요.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나왔어요. 예전에 자주 보던 커피집에서 보기로 막상 약속을 잡고 생각해보니 아직 커피집이 그 자리에 있을까?라는 걱정에 먼저 나왔는데 다행히 그 장소 그대로 있었어요. 처음 이곳에 온 것도 아마 이맘때였을 거예요. 너무 덥지 않았던 6월이었는데 사실 이 사람과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요 그냥 처음 만났다고 생각한 기억은 거리를 같이 걸었어요. 말 한마디 없이 거리를 걸었어요.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았어요 그 사람은 모르겠어요 어땠는지 하지만 저는 어떠한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다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거리를 걷던 그때 살며시 불었던 바람도, 풍경도 그 사람에게서 풍겨오는 은은한 향기도 다 좋았어요.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걷다, 걷다, 걷다 이 커피집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와 서로 마주 보고 않아 따듯한 커피를 홀짝이며 많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요 정확히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은 안 나요 아마 그냥 시시한 이야기들 이였어요. 너무 시시해서 기억이 안 날정도로....
탁, 탁, 탁
누군가 테이블을 노크하듯이 두드렸어요 두드렸던 손을 따라 서있는 사람의 얼굴로 시선을 올려 봤어요. 그 사람입니다 순간 가슴에 큰 돌 하나가 풍덩 했습니다.
“혹시나 이 자리부터 왔는데 앉아있네!!”
“아직 점심시간 전이라 사람들이 없어 다행이었어~”
“음 그렇구나 나 여기 앉아두되?”
“음.. 응응”
변한 것 같기두 아닌 것같디기두 했습니다. 뭔지 모르게 공기가 틀려진 것 같기도 하고...
“언제 온 거야?”
“한~ 한 시간 전쯤에”
“왜 여기 살아졌을 까 봐!!”
“뭐.. 응”
공백이 있었는데 이상하리 만큼 어색하지 않아요 어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닌데
어색하지가 않아요. 약간은 걱정했었는데
“여전하네 티슈로 학종이 접는 버릇”
“그런가 그렇네 벌써 다섯 마리네.”
“혹시 내가 티슈에 적어서 준거 아직 가지고 있어?”
“아니, 살아졌어.”
“아~ 그렇구나”
사실 가지고 있어요. 지금 지갑 안에 있어요. 조금 번지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글씨도 성명하게 보여요 이 사람과 마지막으로 여기서 보던 날 적어준 거였어요.
서로 보지 말자 한 것도 아닌데 그때 이후로 서로 실종된 것처럼 연락이 안 됐다고 해야 하나
연락을 안 했다고 해야 하나 그렇게 시간이 지났같어요, 이상하게 거리가 멀어졌었어요.
지금 되돌이켜 보면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이 순간 다시 생각해보아도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사귀던 사람은?”
나는 왜 이 질 문부터 한 걸까요? 괜시리 이 사람의 손동작하나 몸짓 하나에 눈동자가 흔들립니다.
“사귀던 사람.... 아~ 헤어졌어 좀 됐어.”
“응.... 진짜 왜?”
“음 글쎄.... 사실 뭐 좋아했던 것도 아니었고 얼떨결에 사귄 거라 그리 오래 가리라 생각하지는
않았어.”
“내 기억으로는 오래 사귀였던 거로 기억하는데...”
“그랬던가 모르겠네... 그건 왜?”
“어~ 뭐~ 그냥, 뭐~ 그냥 그냥 물어봤어 시간도 지났으니깐 혹시 결혼했을 수도 있고.”
“그래... 그래 너는 있어?”
“나, 아니 없어.”
“음~ 그래... 덥다, 점점 더워진다. 날씨가 곧 있으면 8월이네~”
“음 그렇네”
“예전에 우리 바닷가 간 거 기억나?”
친한 사람들과 술자리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 이 사람이 사귀고 있던 사람을 데리고 나왔었어요. 사귀고 있는 사람은 있다는 건 모두들 알고 있었지만 이런 자리에 데리고 나오지는 않았었 거든요. 같이 올 거라 생각지도 못한 날 방심하고 있던 날 같이 온 거죠. 나는 아무렇지 않으려 이 사람 앞에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무척이나 애를 썼었어요.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야만 했었던 기억이 나요. 그리고 다음날 천장을 바라보는데 너무 많은 감정을 써서 그런가 감정이라는 것이 비워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몰래 내방을 비집고 들어온 따듯한 바람이 내 몸을 휘감았어요. 바닷가가 보고 싶어 졌어요. 충동적이었어요 순식간에 기차역으로 왔고 홀린 듯 바닷가에 와버렸어요. 막상 바다를 보니 그때서야 내가 여기 왜 왔지, 왜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렇게 대워질때로 대워진 모래 해변에 쪼그려않아 멍 때리고 있는데 좋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왔어요 맞아요 좋았어요. 푹푹 찌는 열기가 너무 좋았고. 여름이라 좋았고. 시원하게 부는 바람이 크게 부는 바람이 좋았고 다 좋았어요 기분이 춤추는 연처럼 널뛰었어요. 가장 기분이 좋을 때 그때 전화가 왔어요. 그 사람이었어요. 기뻤다 반가웠다 했어요 마음이 근데 선 듯 전화받을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한참을 전화기를 바라보았어요 그 사람의 이름이 사라지기를 아니 안 사라지기를 감정이 춤추는 연처럼 널뛰는 걸 느꼈어요 그 널뜀속에서 충동적으로 전화를 받았어요.
“뭐해?”
“바닷가에 왔어.”
“앵~ 바닷가?”
“응 바닷가?”
“왜? 갑자기?”
“그러게...”
“어때? 좋아?”
“응 나쁘지 않아 바람이 좋아”
“....... 나도 갈게~”
“응?”
“나도 바다 보러 거기로 갈게!!”
“어? 온다고 여기?”
“응 갈 거야 조금만 기다려.”
그때 그날 생각에 웃음이 나온다. 그 순간에 감정이 지금은 다른 감정으로 돌아와 날 이상하게 만든다.
“왜 웃어?”
“응 뭐~”
“바닷가에 돗자리 펴놓고 해 뜰 때까지 바닷가만 멍하게 본거 기억나?”
“응”
“그때 맥주 한 캔 사놓고 주절이 주절이 뭔 이야기를 그리도 만이 했는지... 우리가 무슨 이야기 했는지 기억나?”
“아니 기억 안 나.”
“나도....”
“응”
“그리고 해 뜨는 거 보면서 컵라면 먹은 거 기억나? 그냥 컵라면이 었는데 맛있었어”
“응”
아직도 그해를 잊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것이 천천히였던 것 같기도 한 시간이었습니다. 해변가에 쪼그리고 앉아 먼 해안을 바라보면서 서서히 떠오른
해가 이 사람의 얼굴에 묻어나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움직이는
이 사람의 옆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던 기억이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이 사람도 나와 같은 마음일 거다 그럴 거다
“왜 보자고 했어?”
사실 저도 모르겠어요 왜 보자고 했는지... 뭘 바라는 것도 뭘 해야겠다는 것도 아니었어요
이 커피집에 이 테이블에 앉아 그냥 따듯한 커피 하잔을 마시고 싶었었던 거였을 수도 있고요.
“궁금해서 그냥 궁금해서 연락 안 한지도 오래된 것 같기도 하고...”
“너답다”
“그런가”
“그러고 보니 우리 왜 연락을 안 한 거지”
“글쎄”
“이 집에서 초코케익에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한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은데”
“응 맞아 그때 네가 티슈에 적어 준날”
“기억하네 너두 왜 그때 이후로 연락이 안 된 건지 한번 인가 내가 연락을 했었는데
다른 사람이 받았는데....”
“언제?”
“흠... 몰라 기억 안 나...”
이 커피집을 좋아합니다. 은은한 노래 은은한 향기 은은한 조명 뭐하나 과한 게 없는 이 공간이 하루 종일 앉아 있어도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사람도 은은합니다 항상 그랬습니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봄에도, 겨울에도 몽땅한 4B연필 같은 사람입니다. 하얀 도와지에 뭉툭한 연필심으로 슥삭일떼 번지는듯하게 그려지는 그런 사람입니다.
“뭐하고 싶어?”
“응?”
“다음에 뭐하고 싶어?”
“글쎄.... 생각 안 해봤어!!”
“뭐 할지도 생각 안 해 보고 나왔어.”
이 사람은 시간을 버리는 걸 싫어합니다. 음... 목적지까지 바로 가는 버스와 환승해야 하는 버스가 두대 있습니다. 한 번에 가는 버스는 얼마 뒤에 오고 환승해야 하는 버스는 지금 옵니다. 저는 기다리다 바로 가는 버스를 탄다면 이 사람은 환승을 해야 합니다. 정체되어있는 어떠한 순간을 어색해하는 사람입니다.
“뭐~ 그냥 시간 죽이기 하지 뭐~”
“시간 죽이기.....”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다가 은은하게 웃습니다.
“응”
“이런 거 잘 안 해주는데 너라서 해주는 거야”
“응?”
“여전하네...”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