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떨 땐 왜 그랬을까?, 왜 저랬을까? 하는 일들이 시간이 흐르고 필연인지 우연인지 모르게 나에도 상황이 맞게 맞닥뜨릴 때 그때 내가 바보 같은 짓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스쳐 지나가며 왜 나는 그런 멍청한 생각과 말을 함부로 내뱉은 걸까 하는 후회를 하게 된다.
누군가의 자살, 누군가의 중독, 누군가의 범죄 이런 바보 같은 이런 나쁜 놈이 이런 머저리 같은 이라 생각하지만 한번, 두 번 유혹이라는 두 글자에 노출되어 홀려 있을 때는 모른다.
알 때는 이미 나는 반쯤 돌이 킬 수 없는 무언가가 돼있을 요량이 크다.
누군가는 자신한다. 자신은 그럴 일이 절대 없다고 훗훗~ 영화에서 보면 가장 큰소리를 내는 사람이 훅~ 가는 경우가 많더라 그리고 어련 풋이 무언 가 잘못되었다고 생각이 들 땐 이미 미친놈처럼 중얼중얼거리기 일쑤이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 그럴 리가 없는데~라고 그러니 쉽게 장담 말라 모든 건 닥치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위에 말하는 행동에 대해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쉽게 장담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다. 쉽게 장담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방심하지 않게 큼 도와준다.
위에 '예'처럼 보통의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것이 아닌 드러나지 않는 어떤 것 당신은 당신도 모르는 어떠한 것 에 넘어 같을 수도 있다. 그냥 그것이 일상이 되고 습관이 되어 당신 자신이 당신을 속이며 계속해 올뿐 당신도 이미 무언가의 늪에 빠져 있을 수도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가끔 불현듯 내 머릿속에 전달되는 것이 있다. 나는 무언가에 홀려있구나 하는 그런 것, 그것이 어떤 형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 나에게 스며든 무언가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한참 스스로의 의지로 날 괴롭힐 때 그것이 어떤 모양을 하고 있고 어떤 소리를 내며 어떻게 나에게 접근하는 것인지 성명하게 보였는데 나 자신을 괴롭히는 일들이 자신이 없어지고부터 내 머릿속에 지우개처럼 깨끗이 그런 것들이 사라졌다. 그런 것들이 있었는지 모르게 기억 속에서 살아진다. 그리고 일상으로 바뀌어 버린다. 그럴 때면 나를 빨아먹는 것 같은 벌레 한 마리가 나의 정신에 기어 다니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벌레가 커지는 것을 막으려면 꾸준히 그리고 자주 나를 괴롭혀 줘야 한다. 어떠한 형태로든 말이다. 건전한 건 운동이 될 수 있고 나쁜 건 술이나 담배를 하는 것이다. 가끔은 게으른 나 때문에 포동포동하게 벌레가 살이 오르게 되면 우울이라는 감정이 밀려온다. 그 우울감은 내가 살아 있는 이유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긍정적이고 밝은 것이 아닌 축축하고 흐글므리한 무언가로 말이다. 생각에 생각을 더하면 더욱더 깊은 수렁에 빠져버린다.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노동이다. 노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에 대한 생각 외 다른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도구이다. 그리고 내 생각에는 노동을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자면 능동적인 노동과 수동적인 노동이다. 잡념을 없애는 노동은 능동적이 노동이 아닌 수동적인 노동이어야 한다. 개, 돼지처럼 채찍질당하면서 하는 노동이어야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이런 나의 모습을 가만히 들여 볼 때면 어떨 땐 마조히즘을 원하는 변태는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때가 있다. 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벌레의 정체의 정체성이 변태인가라는 생각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 벌레가 마조히즘이고 내가 새디즘인가!? 이런 고무줄 같은 생각을 하며 헛웃음을 짓게 되며 우울 속에서 빠져나온다. 가장 싫고 지겨운 일을 해야만 날 괴롭히는 벌레의 크기가 줄어들거나 어딘가에 숨어 버린다. 아이러니하게도 조금은 꾸역꾸역 지낼만해진다. 이를테면 싫은 상처를 견디기 위해 참을 만한 상처를 내게 주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방법이 아닌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찾기란 힘들다. 지금 이 글을 적는 동안 스스로 객관화하고 있다 생각하지만 아니다. 로또 같은 거다. 번호를 스스로 선택한다고 해서 통제를 할 수 있다는 착각, 환상.... 내 생각이라는 것도 스스로 통제하여 생각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벌레에 의해 거부감 없이 내 생각인 것처럼 나는 생각하고 나를 통제한다고... 이걸 구분 지으려면 끊임없이 나를 괴롭혀야 한다. 고통이 같아 보이는 무언가를 쪼개어 서로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니 말이다.
당신은 어떤가? 당신에게는 벌레가 없나? 벌레가 있다 생각한다면 그 벌레를 사라지게 할 수 있는 당신이 생각하는 현명한 방법이 있는가? 그러면 나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기 바란다.
epilogue
20XX 년 X월 X일
눈을 뜨자마자 폰을 켜 얼굴에 같다 된다. 폰 화면 불빛에 눈이 부시고 아프다. 그렇지만 휴대폰을 안 볼 수가 없다. 폰이 없었다면 나도 이 세상에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즐겨보는 웹툰을 시작으로 쓸데없는 폰의 다양성을 활용한다. 단톡방에 한 개의 영상이 올라와 있다. 영상에 대해 아직 다른 말이 없었다. 올린 당사자도 영상만 올렸을 뿐 다른 내용이 없었다. 일단 영상을 보기로 했다. 흥미롭지만 딱히 나에게 흥이 나는 영상은 아니었다.
그래도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인터넷 포털에 들어 가본다. 어제저녁일이라 아직은 따끈한 이슈라 그런지 메인에 벌써 관련기사가 올라와 있다. 기사가 내용으로 보이는 글로 마우스를 같다 된다.
<뉴스 방송 중 젊은 남성 괴한 한 명이 머릿속에 벌레가 있다며 난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