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이라는 이미지와, 도시라는 이미지가 섞여있는 곳이 내가 살고 있는 곳입니다. 일을 마치고 걸어서 갑니다. 집까지는 한 시간 정도의 거리입니다. 저에게 묻습니다. “일하고 그렇게 걸으면 힘들지 않아 다이어트해?” 뭐 딱히 안 힘들지도, 다이어트할 생각은 아니지만 다이어트가 되는 것도 사실입니다. 걷는 길이 평탄한 길이 아니라 구불구불하고, 막 높지는 않지만 오르다 보면 허벅지가 무거워지고 숨이 찰 정도의 높이의 언덕 두 어개 정도 넘어야 하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걷는 이유는 걸어서 집으로 간 다음날이 걷지 않고 간 날보다 하루가 더 가볍기 때문입니다. 잠시의 뻐근함이 다음날 하루를 상쾌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 같은 길을 걷고 있지만, 같은 길을 걷지 않아서 계속 걷게 됩니다. 계절이 바뀌고, 날씨가 바뀌면 모든 것들도 미묘하게 바뀌어 주위의 모든 것들이 조금씩 천천히 변해가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작게 천천히 변하는 풍경을 느끼며 저의 감정도 바뀌어 갑니다. 가끔은 처음 느꼈던 감정도 덜컥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걸어가던 걸음을 잠시 멈추고 가만히 서서 주변을 크게 봅니다. 내 몸을 타고 흐르는 바람을 느낍니다. 숨을 크게 한번 들이켰다 내뱉으며 냄새를 기억합니다. 어쩐지 이렇게 하면 온몸에 전율이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사람이라는 감정은 몇 가지로 분류되는 게 아니듯 합니다. 분도, 화 , 기쁨, 슬픔 이런 것 말고도 세상에 존재하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무언가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걸 알지만...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은 매우 버겁고 힘이 듭니다. 그래서 자신이 알 수 있는 감정들에 포함시키는 듯합니다.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것이 무엇인지 깊게 들어 보려 하지 않고 두루뭉술하게 아무 감정에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이 또한 사람이기에 가능합니다.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이냐, 아니냐 라는 것으로 정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기도 합니다. 다만 모든 것은 어떠한 형태로든 삐져나오기 마련입니다. 컴퓨터였다면 오류나 에러 같은 게 떠서 다시금 다른 길을 가도록 하겠지만 당장에 우리의 감정의 분류에 대한 나의 선택은 바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니 까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분명 어떠한 것이든 나오기 마련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좋은 형태로 나올지도 모르지만 때로는 일그러진 이상한 형태로 만들어져 나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다양한 인간들이 생겨나는 듯합니다. 똑같은 상황이 생겨도 생각하는 방식 접근하는 방식이 다 다른 이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감정에 대한 생각의 미사여구가 많은 단어들로 머릿속이 꽉 차고 있는 건 날이 어두워지고부터였습니다. 늘 걷던 길 환하게 모든 길이 보이던 날에는 느껴지지 않았던 무언가가 날씨가 어두워지고 한 치 앞밖에 보이지 않은 날이 되고부터 느껴지지 않던 것들이 밀려오곤 합니다. 감정이라 말하면 감정일 수도 있지만 꼭 그거라고는 하기에는 마음이라는 곳이 이상합니다. 마음을 심장으로 말해 표현하자면 떨게도, 죄여 오기도, 아프게도 합니다. 그럴 때면 날이 밝은 날 느꼈던 어느 날처럼 가던 길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먼발치에 보이는 바다, 높은 아파트에서 뿜어 나오는 밝은 빛, 이리저리 들려오는 풀 소리, 나무소리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들의 지저 김, 차갑지만 기분 좋게 하는 추운 날의 공기 주위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 흘러들어 옵니다. 다 나쁘지 않은 것들인데 왜 내 안에서 벌어지는 요동들은 나쁠 것만 같이 느껴집니다. 애써 떨구어 내려 애쓴 적도 있습니다. 갑자기 집까지 뛰어보기도, 좋았던 날의 기억을 되살려 보기도, 폰으로 다른 무언가를 보면서 걷기도, 귀막이 찢어져라 음악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럴수로 더 짙게. 더 분명하게 새겨집니다. 왜인지 이름을 불으며 홀연히 나타난 것처럼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걸어가며 ‘이것’에 이름을 어떻게 부를지 고민하며 생각나는 대로 여러 말을 하며 걸어갑니다. 계속해서 살아지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 내 방식이 틀렸거나 '그것'에 맞는 이름이 아니겠지요. 덜컥 겁이 납니다. 이대로 살아지지 않고 나에 피와 살이 될까 두렵기도 합니다.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말입니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에는 어쩌면 조금은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때까지는 너무 그러하지 말기를 '나'에게 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