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미국 보스턴에 잠시 거주 중입니다. 하루 이틀이면 대부분의 랜드마크를 둘러볼 수 있을만큼 작은 도시이지만 미국 역사가 시작돼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러 곳에 붙을 만큼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입니다. 보스턴 도심 북서쪽의 캠브리지에는 하버드, MIT 등 명문 대학도 있어 교육 도시로 손꼽히죠. 전세계 러너들의 꿈의 무대인 보스턴 마라톤은 올해 129년차 대회를 맞이합니다.
이제는 구글맵 없이도 다닐 수 있을만큼 지리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은 이 도시의 물가입니다. 달러당 1460원대라는 기록적인 고환율과 살인적인 물가의 압박을 벗 삼아 지내는 이방인의 느슨한 도시 적응기를 전합니다.
14년만에 미국을 오게 됐다. 자연이 가득했던 서부 지역 작은 도시에서 짧게 지낸 경험이 있지만, 미국 도시는 여행 빼고는 처음이라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중이다.
간단히 지난 일을 되짚자면 내가 미국땅을 처음 밟은 것은 2010년. 여름에서 가을으로 들어서는 길목이었다. 학부 시절 교환학생으로 선정돼 1년간 미국에서 지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가을학기가 시작하기 몇 주전 미국에 도착했다.
교환학생으로 가게된 학교는 애리조나주의 한 주립대였다. 사시사철 더운 기후가 지속될 것만 같은 애리조나에 대한 선입견과는 달리 내가 있던 도시는 한국만큼 사계절이 뚜렷했다. 도시의 고도는 6800피트로 정도로 해발 2000m에 이른다. 한라산이 1947m이니까 이보다 높은 곳에 도시가 있는 것이다. 근처 도시인 B(4360ft)와 C(1086ft)의 고도와도 한참 차이난다. 이런 지리적인 특성 때문에 겨울에는 눈이 허리춤까지 쌓이기도 한다. 애리조나에서는 찾기 힘든 스키장도 있다. 한 state 안에서도 이렇게 다른 풍경과 계절차가 있는 것을 보고 미국 땅덩어리가 얼마나 큰 지 놀라곤 했다.
다시 찾은 미국은 3월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었다. 따뜻한 봄 날씨를 기대했으나 보스턴의 겨울은 아직 진행 중이었다. 이곳의 겨울은 다른 곳에 비해 긴 편이라고 한다. 5월이나 되어야 포근해지고, 다시 11월이 되면 겨울이 찾아온다는 것이다. 현재는 3월 중순이지만 때때로 저녁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다. 어느 날은 눈발이 날리고, 어느 날은 한낮 기온이 18도까지 올라간다. 어떤 날은 몸을 가누기 힘든 극심한 돌풍이 불어 간판이 어디선가 날아와 내 몸에 꽂힐 것 같은 공포감이 든다.
봄이 왔노라 단정짓기에는 어색한 날씨이지만, 도시는 활기를 되찾고 있다. 연중 해가 창창히 뜨는 날이 많지 않다보니 조금이라도 따뜻한 날에는 사람들이 도심으로 쏟아져 나온다. 봄 학기가 시작되면서 하버드와 MIT 캠퍼스에는 학생들이 가득하다. 날씨가 따뜻해져 그런건지, 4월 보스턴 마라톤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건지 몰라도 찰스강 주변을 뛰는 러너들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보스턴의 센트럴파크로 불리는 대표적인 공원 보스턴커먼에도 풀이 자라기 시작했고, 100년이 넘은 지하철에는 현지인과 관광객으로 바글바글하다.
이방인의 시선으로 도시의 일상을 관찰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처럼 시시각각 새로운 자극을 주어 별 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진으로 남겨두게 된다. 발제와 마감에 치여 하루살이처럼 시간을 보낸 서울의 시간과 보스턴에서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는 것만 같다. 새로운 자극 덕분인지 쉬는 동안만큼은 노트북을 절대 열지 않겠다는 다짐은 쉽게 잊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