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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이거스 앞에 두고 온타리오에 비상 착륙한 비행기

14일간의 그랜드서클 로드트립, 험난한 시작

by Tatte
보스턴→라스베이거스→세도나→플래그스태프→그랜드캐년→페이지(Horseshoe Bend, Antelope Canyon)→모뉴먼트 밸리→ 모압(Arches NP, Capitol Reef Np)→브라이스캐년시티(Bryce Canyon NP)→스프링데일(Zion Canyon NP)→라스베이거스→보스턴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비행기는 정시에 출발했다. 비행기는 사실상 만석이었는데, 운 좋게도 내 바로 옆자리에 앉기로 했던 승객이 다른 자리에 앉는 바람에 더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5시간이라는 긴 비행시간이 지나자 창밖으로 사막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곳이 그랜드캐니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충분히 멋있는 거대한 사막 위를 날고 있었다. 사막이 보인다는 것은 라스베이거스에 가까워졌다는 의미다.


애리조나주에는 이날 뇌우 경보가 있었다. 비행기에서 저 멀리 보이는 어느 풍경에는 번개가 번쩍 거리고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정작 내 비행기가 날고 있는 사막 위는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사막의 뜨거운 지열과 건조함 때문일 것이다.

저 멀리 서쪽부터 해가 지기 시작했다. 노을 아래 조명 빛이 하나둘씩 켜지는 화려한 라스베이거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착륙을 위해 서서히 고도를 낮췄고 라스베이거스의 민가들이 셀 수 있을 만큼 점점 선명히 눈에 들어왔다. 5분만 있으면 우리는 첫 여행지인 베가스에 내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기체가 갑자기 극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바이킹을 탄 듯 속이 여러 번 울렁거렸다. 한 번은 약한 흔들림이었다가 그다음엔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듯 크게 흔들렸다. 놀란 승객들은 비행기가 흔들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오우'하며 탄식을 내뱉었다. 천진난만한 몇몇 아이들은 놀이기구를 탄 듯 까르르 웃어댔지만, 어른들의 얼굴은 그렇지 못했다.


곧 내린다는 기대감에 잠시 잊고 있었다. 라스베이거스는 터뷸런스가 심한 지역 중 하나다. 가열된 공기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하늘로 치솟는 강한 상승기류가 생기는데, 이게 비행기를 흔든 것 같았다. 구름 하나 없는 하늘에서 이렇게 기체가 흔들릴 수 있다니. 방심했다.


터뷸런스가 심해지자 비행기는 다시 높은 고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기장이 다시 착륙 시도를 하기 위해 고도를 높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좌석 앞 스크린에서 낯선 글자가 보였다. 비행기의 목적지가 라스베이거스에서 온타리오로 바뀐 것이다. 내가 온타리오라는 글자를 발견한 순간, 옆자리 승객들도 수군대기 시작했다. 상황 파악을 하려 두리번거리는데,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기장이 안내 방송을 했다.

"날씨가 안 좋아서 라스베이거스로 진입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온타리오에서 비상착륙을 하겠습니다"


온타리오는 캘리포니아의 한 도시로, 라스베이거스에서는 비행기로 30여분 거리에 있다. 처음 들어보는 낯선 도시로, 이번 일이 아니었으면 평생 갈 일이 없는 지역이었다.


방금 전까지 라스베이거스 상공에 있었고, 내리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온타리오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기장은 기상 악화로 공항에 진입하지 못해 온타리오로 회항해 가스를 넣어야 한다고 했다. 다시 라스베이거스에 진입할 수 있을지는 아직 정보가 충분하지 않아 추가적인 업데이트가 있는 대로 승객들에게 공유하겠다고 했다. 기내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오늘 우리는 라스베이거스에 갈 수 없게 된 건가? 황당해서 말도 안 나왔지만, 그보다도 방금 전 터뷸런스가 너무 심해서 제발 땅에 안전히 두 발을 내딛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30여분 더 날아가 온타리오 공항에 도착했다. 다행히 이곳은 터뷸런스가 없었고 공항에 부드럽게 안착했다. 온타리오 공항에 도착했지만 승객들은 멀뚱히 비행기에 앉아있어야 했다. 기장이 다시 안내하기를 주유를 하고 바로 라스베이거스로 떠날지, 아니면 공항에서 대기를 해야 할지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게 30여분 기다렸을까, 안내 방송이 다시 나왔다. 이 비행기의 기장은 이제 퇴근을 해야 해서 새로운 기장을 기다렸다가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출발하겠다는 거다. 새로운 기장은 지금 다른 비행기를 타로 온타리오로 넘어오는 중이라 2시간 이상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비행기에서 내리니 델타항공에서 식사 바우처를 제공했다. 인당 12달러로, 우리 일행은 2명이라 24달러의 바우처를 받았다. 공항에서 파는 햄버거 세트가 15달러를 넘었으니, 충분한 금액은 아니었던 것 같다. 라스베이거스에서 저녁을 먹을 생각으로 점심도 간단히 해결했는데, 이날 저녁까지 낯선 공항에서 짜디짠 텐더 치킨으로 때워야 했다.


비행기 운행이 취소될까 봐 노심초사했지만 다행히 3시간여 만에 비행기는 공항에서 표류하는 승객들을 불러 모아 다시 라스베이거스로 출발했다. 비행기가 뜨고 다시 40여분 날아갔다. 해가 지고 열이 식어서 그런지 터뷸런스는 없었고, 공항에 아주 스무스하게 연착륙했다.


보스턴 집을 떠난 지 약 15시간 만에 라스베이거스 호텔에 도착했다. 체력은 바닥났다. 우버를 타고 예약해 둔 '서커스서커스' 호텔까지 가는 내내 나와 배우자는 말을 한마디도 나눌 수 없었다.


겨우겨우 도착한 서커스서커스 호텔은, 이번 여행 최악의 호텔이었다. 다음날 렌터카 빌리는 곳과 가까운 저렴한 호텔이라 예약했는데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오래된 호텔이었던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 몰랐다. 코로나 시기 남들이 다 리모델링할 때 여기는 그냥 손 놓고 있었던 걸까. 피에로와 서커스가 가득한 컨셉은 낡고 오래된 호텔의 분위기와 맞물려 폐업한 놀이동산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침대에 몸을 뉘이니 새벽 3시. 다음날 아침 7시 30분에 호텔에 나서야 8시 전까지 렌터카를 픽업할 수 있을 텐데. 제 때 일어날 수 있을지 걱정을 한가득 하면서 힘겹게 잠들었다.



그랜드서클 로드트립 여행 TIP.

- 라스베이거스 공항에서 호텔로 갈 때, 2명 이상일 경우 우버나 리프트를 이용하시면 비용과 시간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버스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추천하지 않아요.
- 라스베이거스 호텔을 사전 예약할 시 리조트 요금, 도시세, 세금 중 불포함된 항목을 꼭 체크하세요. 현장에서 금액이 추가로 청구돼 예산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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