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왕성을 발견한 로웰 천문대
보스턴→라스베이거스→세도나→플래그스태프→그랜드캐년→페이지(Horseshoe Bend, Antelope Canyon)→모뉴먼트 밸리→ 모압(Arches NP, Capitol Reef Np)→브라이스캐년시티(Bryce Canyon NP)→스프링데일(Zion Canyon NP)→라스베이거스→보스턴
플래그스태프Flagstaff 다운타운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나오니 이미 하늘에는 노을이 깔려있다. 다음 목적지를 향해 차를 타고 10분이나 이동했을까, 어두컴컴한 산 길이 나왔다. 이 도시에서 1년여를 살았지만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이었다.
어둑해진 길이었지만 꼬불꼬불한 산 길에는 조명 하나 없었다. 산 아래로 플래그스태프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쉬지 않고 차로 3분여를 올라갔다. 주차장이 나오는 것을 보니 산 정상에 다다른 듯했다. 플래그스태프에서의 마지막 일정인 로웰 천문대Lowell Observatory에 도착했다.
한산한 다운타운과 달리 이곳에는 꽤 사람이 많았다. 플래그스태프에 오면 꼭 가야 하는 명소다웠다.
1894년 퍼시벌 로웰(Percival Lowell)에 의해 설립된 로웰 천문대는 명왕성(Pluto)을 발견한 천문대로 잘 알려져 있다. 로웰 천문대에서 일했던 젊은 천문학자 클라이드 톰보(Clyde Tombaugh)는 1930년 이곳에서 아홉 번째 행성 명왕성을 발견했다.
국제천문연맹이 2006년 행성에 대한 기준을 바꾸면서 명왕성은 왜소 행성으로 격하됐지만, 그 당시만 해도 천문학의 불모지였던 미국 학계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고 한다.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아서 화성을 보진 못할 것 같아요. 그래도 운이 좋으면 볼 수 있으니 지켜보자고요."
예약한 티켓을 보여주자 은백발을 한 백인 직원은 오늘 구름이 끼어 많은 별을 보지 못할 수 있다고 일러줬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머나먼 곳에서 온 여행자들이 이곳에서 별을 제대로 못 보는 것을 우리보다 더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듯 다정하고 차분한 목소리로 친절히 오늘 천문대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꼼꼼히 알려주었다.
로웰천문대 공식 홈페이지에서 우리가 미리 예약하고 간 표는 General Admission Plus다. 인당 40달러다.
General Admission일반 표(35달러)는 오비츠 큐리오시티 존, 스텔라 갤러리, 역사 투어, 전시관, 풀토 돔, 클라크 망원경 등을 포함하고 있다면, 플러스 티켓은 이곳의 하이라이트인 Dark Sky Planetarium 쇼도 들을 수 있다.
Dark Sky Planetarium은 천문대 옥상에 위치한 원형 데크에서 직접 하늘을 보며 밤하늘의 별자리, 행성, 성운 등 실시간 해설을 듣는 쇼라 가장 기대했던 일정이었다.
안타깝게도 이날은 구름이 많이 껴 천문대 옥상을 개방하지 않았다. 대신 1층에 마련된 대형 스크린에 별자리 그림을 띄워놓고 하는 해설을 들어야 했다.
'Strange New Worlds'라는 주제로 시작된 해설은 30분 정도 진행됐다. 지구 밖에 또 다른 생명체가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을 여러 근거를 들어 설명해 주었는데, 해설을 듣고 나니 밤하늘의 별을 직접 보면서 설명을 들다면 더 극적이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움이 컸다.
쇼가 끝난 후 극장 밖으로 나오니 아까 만난 직원이 우리를 보고 달려왔다.
"잠깐 구름이 걷혀서 화성을 볼 수 있다고 하니 빨리 밖으로 나가봐"
하며 등을 떠밀었다. 이 많은 방문객 중 우리 부부가 유일한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그는 가장 이방인 같이 보이는 우리를 특히 세심하게 챙겨주려 했다.
천문대 3층으로 올라가 망원경이 있는 야외로 나가니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화성이 보인다는 소문이 퍼진 듯했다.
그런데 망원경을 관리하는 직원들의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 보였던 화성이 다시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다시 화성이 보이길 기다리는 사람들도 하나 둘 포기하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다리면 화성을 볼 수 있을까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니 직원은 "오늘은 달이 최선인 것 같아요"라며 다른 망원경이 있는 쪽을 가리켰다.
직원이 일러준 방향으로 빛 하나 없는 길을 따라가니 나무로 된 작은 건물이 하나 나왔다. 별을 보는 데 방해하지 않는 빨간 조명을 켜둔 것을 보니 직감적으로 망원경이 있는 곳인 것 같았다.
들어가 보니 나무로 된 돔 아래 거대한 망원경이 놓여있었다.
24인치 클라크 굴절망원경 (24-inch Clark Refractor)다. 로웰 천문대(Lowell Observatory)의 상징적인 망원경 중 하나로, 미국 천문학사에서 중요한 유산이라고 한다.
로웰은 화성의 운하를 관측하기 위해 1890년 말에 이 망원경을 설치했다. 로웰은 화성에 생명체가 있을 가능성을 주장하면서 대중으로부터 큰 관심을 받았다.
로웰이 이 망원경으로 직접 화성을 관측하면서 손으로 그린 화성 그림도 이 망원경 옆에 전시돼 있었다.
100년이 넘은 이 망원경은 지금도 대중에게 개방되어 있다. 5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리니 금방 내 차례가 됐다.
이 거대한 망원경의 작은 뷰파운더를 조심히 들여다보니 달의 표면이 내 손 안에 있는 듯 선명했다.
노잼도시 플래그스태프에서 예상치 못한 다채로운 경험을 한 것에 만족해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가는 중에 다시 백발의 직원을 만났다.
그는 화성을 봤냐고 물었다. 구름 때문에 못 봤다고 말하니 "My bad..." 하며 아쉬워했다. 우리가 있는 한 시간 반동안 이 노신사께서 우리에게 써주신 마음씨 덕분에 아쉬운 마음이 싹 달아나는 기분이었다.
신경 써줘서 고맙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한 뒤 마지막으로 기념품 샵을 들렀다.
노다지였다. 사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NASA의 로고가 박힌 우주복은 나의 원픽이다. 미국에서 살아도 쉽게 구하지 못하는 아이템이다. 아이가 있었다면 정말로 고민 않고 구매했을 것 같다.
또 기억에 남는 건 명왕성을 따서 만든 간단한 장식품. 토라진 얼굴을 한 플루토 밑에 'NEVER FORGET'이라고 쓰여 있다.
왜소 행성으로 격하됐지만, 잠깐 아홉 번째 행성으로 빛났던 플루토를 잊지 말아 달라는 재치 있는 당부였다.
그랜드서클 로드트립 여행 TIP.
- 로웰천문대는 사전 예약 없이도 당일 워크인 구매도 가능합니다. 현장 방문해 Dark Sky Planetarium 운영 여부를 파악한 후 날씨에 맞춰 티켓을 구매하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로웰천문대 티켓 예약은 Lowell Observatory 공식 홈페이지에서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