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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캐년 사우스림에 간다면 기억해야 할 두 가지

플래그스태프→그랜드캐년(130km, 1시간 30분)

by Tatte
보스턴→라스베이거스→세도나→플래그스태프→그랜드캐년→페이지(Horseshoe Bend, Antelope Canyon)→모뉴먼트 밸리→ 모압(Arches NP, Capitol Reef Np)→브라이스캐년시티(Bryce Canyon NP)→스프링데일(Zion Canyon NP)→라스베이거스→보스턴

플래그스태프를 벗어나 그랜드캐년 사우스림으로 가는 길은 제주도를 떠올리게 할 만큼 크고 작은 오름이 늘어져 있었다. 드넓은 화산 지대와 울창한 소나무 숲이 교차하는 길을 운전하다 보니 1시간 30분여의 여행길은 지루할 틈이 없었다. 뇌우의 영향권에 있어 가는 길목 드문드문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지만 운전하는데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운전은 막힘없었다. 그랜드서클을 여행하며 적응해야 하는 도로 위에 우리 차만 홀로 달리고 있는 상황은 바로 이 구간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사우스림 입구에 도착하니 그랜드캐년 내셔널파크(NP)의 입장을 위해 차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우리는 1년간 미국의 국립공원을 방문할 수 있는 '아메리카더뷰티풀' 패스가 있어 간단히 신분 확인만 하고 입장했다.


애리조나와 네바다, 유타주에 걸쳐있는 거대한 그랜드서클 안에서 그랜드 캐년은 어느 곳보다 대중적인 여행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번에 방문한 사우스림은 편의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난이도 별 다양한 트레일을 갖고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다. 그랜드캐년에 방문하는 여행자 90%가 사우스림에 방문할 정도.


그랜드캐니언에 당일치기로 방문하는 여행자들이라면 숙소 문제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곳에서 1박 이상 머무는 사람들에게는 숙소를 선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랜드캐니언 밖에 있는 도시에서 숙박하면 한 시간 이상 운전을 해야 하는 데다, 매번 들어올 때마다 입장료를 내는 것은 비효율적이라서다.


때문에 1박 이상 머문다면 롯지Lodge 예약을 권장한다. 사우스림 내 공식 롯지는 7곳이 있다. 위치가 각각 다른데, Rim 내부에 있는 El Tovar Hotel, Bright Angel Lodge, Kachina Lodge, Thunderbird Lodge가 여행하기 편리하다. 그랜드캐년 앞에 있다 보니 숙소 안에서 경치를 보기 편한 곳도 있고, 그랜드캐년을 도는 셔틀 접근성이 좋아 체력과 시간을 아낄 수 있다.


여행객들이 그랜드캐년에 1박을 머무는 이유는 해가 뜨고, 별이 지는 순간을 모두 느껴보기 위함이 클 것이다.


6월 초 기준 그랜드 캐년의 일몰은 오후 8시가 다 되어야 볼 수 있다. 해가 지면 도로 위해 전등이 없어 어두컴컴한 길을 운전해야 해 공원 외부 숙소로 나가려면 부담이 크다. 해가 완전히 진 후에는 수없이 박힌 별을 공원 안 어느 곳에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또 오전 5시 30분 보기 위해 5시쯤 느지막이 일어나 느릿느릿 걸어 일출 포인트로 걸어갈 수 있다.

문제는 이들 롯지는 성수기 기간 예약이 치열하다는 점이다. 나 역시 여행 3개월 전부터 이들 숙소를 가장 먼저 알아봤지만 이미 예약이 마감돼 있었다.


다행히 림Rim에서 차로 3분 거리에 있는 야바파이 롯지Yavapai Lodge에 자리가 남아 이곳을 예약했다. 다른 숙소처럼 접근성이 뛰어나지 않지만 야바파이 롯지에도 그랜드캐니언 안으로 들어가는 무료 셔틀도 연결돼 있고, 차로 간다고 해도 금방 갈 수 있는 거리라 불편함은 크지 않았다. 공용 라운지에서 판매하는 식사도 합리적인 가격이었고, 브루어리 맥주도 판매하고 있다. 스타벅스도 입점해 있어 식사 문제는 특히 어려움 없이 해결했다.


1박 가격은 280달러.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라운지가 깨끗하게 운영돼 있었고, 숙소 상태도 수준급이었다. 야바파이는 다른 롯지에 비해 객실 수가 많은 편이라 상대적으로 예약이 용이하다고 한다. 다른 숙소가 마감됐더라도 너무 낙심하지 말고 야바파이를 꼭 잡길 바란다. 성수기에는 이마저도 금방 마감될 가능성이 크다.

그랜드캐니언을 시작으로 우리의 기상 시간은 오전 5시 전후, 취침 시간은 9시 전후로 바뀌었다. 이는 하계 기간 그랜드서클을 도는 여행자라면 숙지해야 할 기본 사항이다.


6월 초는 아직 서늘하지만, 중순만 되어도 기온이 30도를 넘어서기 시작한다. 느긋이 일어나 정오쯤 트레일에 나서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부담이 크다.


그랜드캐니언은 산 밑에서 정상으로 가는 한국의 산과 달리, 트레일의 입구가 산 정상에 있어 트레일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내려갈 때는 쉬워도 돌아올 때는 기온까지 높아져 내려갈 때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아지게 된다. 실제 그랜드캐니언에는 트레일 밑으로 내려갈수록 기온이 올라가니 탈수에 조심하라는 경고 표지판을 트레일 입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더워지기 시작하는 오전 10시 30분 전까지 모든 등산(트레일) 일정을 마치는 것을 목표로 매일 일정을 세웠다. 때문에 가급적 해가 뜨기 전인 5시 정도부터 트레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하루 중 가장 더워지는 정오~4시까지는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일정을 반복했다.


다행히 서부의 시간은 내가 사는 보스턴보다 3시간 빠르다. 평소 자는 시간에 자고 일어나면 이 루틴을 자연스럽게 맞출 수 있었다.


이날도 오전 5시에 일어나 마더포인트Mather Point에서 일출을 본 후, 바로 그랜드캐년 사우스림에서 절경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꼽히는 '우아(OohAah)포인트'를 보기 위해 이동했다.


Mather Point에서 비지터센터로 걸어서 이동한 후, 옐로 라인 셔틀버스를 타고 South Kaibab trailhead에서 내리면 된다. 버스에는 나를 비롯해 두 팀이 타고 있었는데, 사우스카이밥에서 내린 것은 우리뿐이었다.

마찬가지로 경고문이 있었다. 밑으로 가면 43도 이상으로 기온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경고를 보니 마음이 서늘하다. 물 없이 트레일을 시작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확인할 때마다 긴장이 된다. 전일 비가 오는 바람에 이날 오전 날씨 역시 15도 수준으로 서늘해 후드를 입어야 했지만, 거대한 사막의 날씨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방심은 금물이다.


수직의 절벽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잘 닦여진 길을 따라 내려갔다. 자연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만든 이 길도 멋있었고, 눈앞에 가까워지는 그랜드 캐년의 경관도 발을 내딛을 때마다 새로이 바뀌었다. 실제 말들이 짐을 싣고 걷는 길이라 말똥도 많았다.

경사진 길을 30여분 내려가는 동안에도 이 길을 먼저 걸은 누군가는 숨을 헉헉 대며 되돌아오고 있었다. 이 사람들은 우와포인트에서 일출을 봤을까? 그러려면 새벽 4시에 와서 산행을 시작해야 했을 텐데. 자연의 가장 아름다운 구석을 체험하기 위해 새벽부터 여행을 떠난 이들에게 존경스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경관이 아름다워서 도착한 모두가 '우아-'라고 내뱉게 된다는 우아 포인트에 도착했다. 아침에 본 해가 부지런히 올라와 그랜드캐니언 위에 다채로운 명암을 만들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6시 45분을 막 넘긴 시간이었다. 이른 시간이라 등산객이 없어 산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 대체로 바람이 내 몸에 부딪혀 옷깃을 스치는 소리였고, 가끔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진공 속에서 이곳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몸이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전날 그랜드캐니언 셔틀버스를 타고 돌면서 봤던 여러 풍경들과 겹쳐 이제는 익숙해질 법도 한데도, 우아 포인트에서 바라본 풍경은 할 말을 잃게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이곳에서 눌러앉아 살고 싶었다.


우아 포인트 밑으로도 길은 이어졌다. 발 밑에 펼쳐진 콜로라도 강까지 이어진다. 강을 향해 더 내려가보고 싶었지만, 이 구간부터는 산행을 철저히 준비한 사람들이 다니는 구간이기 때문에 나는 다음을 기약했다. 돌아오는 길, 아쉬운 마음에 뒤돌아 서서 물끄러미 보다가 숨 한번 크게 쉬고 앞으로 나아가길 반복했다.


트레일 헤드에 도착하니 아까 봤던 풍경은 이제 다른 산에 보여 잘 보이지 않았다. 부지런히 일어나 그랜드캐니언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나니 다음 행선지로 나아갈 힘이 자동으로 충전된 것 같다.




그랜드서클 로드트립 여행 TIP.

-그랜드캐년 사우스림에 다양한 트레일 코스가 있으니 한 번은 산행을 하시길 추천합니다.
-롯지는 Grand Canyon Lodges 공식 웹사이트 또는 nps.gov를 통해 예약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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