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캐년→Page(225 km, 2시간 30분)
보스턴→라스베이거스→세도나→플래그스태프→그랜드캐년→페이지(Horseshoe Bend, Antelope Canyon)→모뉴먼트 밸리→ 모압(Arches NP, Capitol Reef Np)→브라이스캐년시티(Bryce Canyon NP)→스프링데일(Zion Canyon NP)→라스베이거스→보스턴
그랜드서클을 도는 여정에는 여러 관광지들이 나바호 자치국Navajo Nation에 걸쳐 있다. 그랜드캐니언 국립공원에서 페이지Page로 가려면 애리조나 주 북동쪽이 걸쳐져 있는 나바호 자치국을 지나야 한다.
페이지는 나바호 자치국 소속은 아니지만, 이곳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앤탈로프 캐년Antelope Canyon은 나바호 자치국에 포함돼 있다. 페이지의 또 다른 관광 명소인 홀스슈벤드Horseshoe Bend는 연방정부가 관리하는 반면, 여기서 차로 15분여에 있는 엔탈로프 캐년은 나바호 자치국이 관리하는 식이다. 다음 여정지인 모뉴먼트 밸리도 나바호 자치국에 속해있다.
때문에 이때부터는 나바호 표준 시간까지 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여름철(3월~11월) 나바호 자치국은 일광절약시간제(DST) 적용하는 반면, 페이지는 애리조나 타임(MST)을 적용해 1시간 차이가 난다. 투어를 예약했다면 그 시간이 페이지 기준인지, 나바호 기준인지 미리 확인해 두는 것이 좋다.
나바호 자치국 안에 포함된 관광지에 들어가려면 나바호 원주민이 운영하는 투어를 예약해야 한다. 나바호 투어를 예약하지 않으면 출입이 금지돼 헛걸음을 하게 되니 사전 예약이 반드시 필요하다.
앤탈로프 캐년은 빛줄기가 캐년 밑으로 내려오는 환상적인 풍경을 볼 수 있어 인기가 높다. 5월~8월 정오 전에는 햇살이 수직으로 내려와 멋진 빛줄기 장면을 볼 수 있어 이 시간대는 몇 달 전부터 일찌감치 예약 마감된다고 한다.
앤탈로프 캐년에는 두 개의 주요 관광코스가 있는데, Upper Antelope Canyon과 Lower Antelope Canyon이다.
어퍼 지역은 입구까지 지프를 타고 이동해야 하지만, 비교적 길이 평탄해 노약자도 관광하기 좋다고 한다. 로어 지역은 입구까지 걸어갈 수 있는데, 투어 과정에서 두세 번 계단과 사다리를 오르내려야 해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적합하지 않다.
빛 내림이 강한 어퍼 지역은 인기가 많아 투어 가격이 좀 더 높다. 하지만 이곳은 나가는 곳과 들어오는 곳이 같아 인파가 몰려 섞인다고 한다.
내가 갔던 로어 지역은 일방통행 코스라 나가고 들어오는 인파가 뒤섞이는 일은 없어 좋았다. 투어비용은 인당 72.8달러. 여러 후기를 찾아보니 빛 내림의 정도가 큰 차이는 없다고 해 가격이 저렴한 쪽을 선택했다.
그랜드서클 여행을 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사진이 실제를 담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자연의 웅장한 광경은 좁은 화각으로는 담을 수 없었고, 새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 신비한 고요함은 녹화 버튼을 수십 번 눌러도 영상에 녹이기 어려웠다.
특이하게도 앤탈로프 캐년은 보이는 것에 비해 사진이 놀랄 만큼 월등히 잘 나오는, 한 마디로 사진발이 잘 받는 곳이었다.
앤탈로프 캐년이 있는 지역은 건조한 사막이지만, 짧고 강한 폭우가 가끔 내리는 특성이 있다. 폭우가 내리면 협곡 바닥부터 2~3미터에 이르는 높이까지 순식간에 물이 찬다고 한다. 지금도 갑작스러운 홍수가 예고되면 출입이 통제된다.
수천만에 걸쳐 이 지역 사암이 대규모 홍수를 겪으며 침식돼 만들어진 공간인데, 이 공간이 지표면 밑에 형성되다 보니 사람의 입장에선 마치 지하 공간에 들어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10~30미터 깊이의 바위 벽을 따라 시선을 올려다보면 보이는 좁은 틈을 통해 하늘이 보인다. 그 공간을 거쳐 조절된 빛이 들어오다 보니 사암의 침식된 지형은 조명을 비춘 것처럼 극적으로 보이게 된다.
카메라를 어떻게 들이밀어도 윈도우 기본 배경 화면에 준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빛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15년 전 들었던 전공 수업의 내용이 문득 스쳐갔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왔을 때 영상과 사진 전공 기초 수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교수님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강조했던 요소가 바로 빛이었다. 좋은 사진과 영상을 위해 빛과 조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 한 학기의 반을 할애해 라이트닝에 대해서만 수업을 했던 교수님도 있었다. 빛의 방향과 빛의 온도가 모든 것을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직사광선보다는 반사된 따뜻한 빛을 만날수록 피사체는 영상 속에서 부드럽게 표현된다. 앤탈로프 캐년 안으로 들어온 햇빛이 그런 역할을 한다. 협곡 입구에서 직접 바닥까지 닿지 않고, 바위 벽에 부딪혀 반사되면서 안쪽까지 은은하게 퍼지면서 사암으로 흘러오는 반사광은 다채로운 시각 효과를 낸다. 빗물의 흐름을 따라 형성된 부드러운 곡선이 강조되면서 사암 벽을 타고 빛이 따뜻하게 흘러 다니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귀한 빛이 형성되다 보니 앤탈로프 캐년에서는 누구나 전문적인 사진사처럼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손만 대면 인생사진을 찍을 수 있다.
투어에 참여한 관광객들이 사진 찍기에 매진하다 보니, 나바호 투어 가이드의 역할은 지형에 대한 설명이나 안내보다는 관광객들의 사진 찍어주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투어 하며 걸어가는 내내 정신없이 사진을 찍다 보니 1시간의 투어 시간은 금방 지나갔다.
사진은 잘 나왔지만 다시 오고 싶다는 생각은 그닥 들지 않았을만큼 투어는 시시했다. 다른 국립공원에서는 이 멋진 경관을 두고 떠나기 아쉬워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는데 말이다.
페이지에서는 관광객들은 좀처럼 몸을 쓸 일이 없다. 익스트림한 트레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관광지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라 쉬엄쉬엄 구경할 수 있다.
앤탈로프캐년만큼 홀스슈벤드도 난도가 낮다. 주차장에서부터 이어지는 평탄한 공원 길을 따라가다 보면 콜로라도 강이 말굽 모양으로 크게 휘돌아 흐르며 만들어낸 홀스슈벤드를 볼 수 있는 뷰포인트에 도착한다.
완벽에 가까운 말발굽 모양이다. 전망대에서 절벽 아래로 약 300m 깊이의 낭떠러지가 있어 주의가 필요한데, 관광객들은 아슬아슬하게 벼랑 끝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너무 멀리 있어 점처럼 보이긴 했지만 강 아래에서는 카약을 타기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카약 액티비티가 있었는지는 미처 몰랐는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다음에 또 이곳에 올 기회가 생긴다면 옛 탐험가들처럼 그랜드캐년 사이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을 따라가는 배를 타보겠다고 결심했다.
그랜드서클 로드트립 여행 TIP.
- 앤탈로프캐년 투어는 나바호 자치국에 등록된 공식 투어사인지 확인하세요.
- 하계에는 페이지의 시간과 나바호자치국 표준 시간이 다르니 사전에 체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