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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골에 인앤아웃이? 15년만에 찾은 미국 교환학교

세도나➡️플래그스태프(46 km, 45분)

by Tatte
보스턴→라스베이거스→세도나→플래그스태프→그랜드캐년→페이지(Horseshoe Bend, Antelope Canyon)→모뉴먼트 밸리→ 모압(Arches NP, Capitol Reef Np)→브라이스캐년시티(Bryce Canyon NP)→스프링데일(Zion Canyon NP)→라스베이거스→보스턴

"이 시골에...인앤아웃이 생겼다고?!"


세도나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플래그스태프Flagstaff로 들어서자 가장 먼저 인앤아웃 간판이 우리를 맞이했다.


많은 이들이 그렇겠지만 인앤아웃은 내가 미국에서 가장 좋아하는 햄버거 브랜드 중 하나다. 빵 대신 양상추를 싸주는 프로틴 스타일 버거가 나의 최애다.


인앤아웃은 미국 서부에만 있는 햄버거 체인점인데, 현재 나는 미국 동부에 살고 있어 갈 수 조차 없다. 서부에서도 캘리포니아의 주요 거점 도시에서 주로 운영되고 있어 소도시에 사는 서부 사람들에게도 접근성이 낮다.

인앤아웃이 플래그스태프에 생긴 지 벌써 몇 년 지난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15년 만에 찾는 곳이라 이 놀라운 변화에 할 말을 잃었다.


잠깐 플래그스태프가 어떤 곳인지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랜드캐니언을 다녀온 사람은 알겠지만, 이곳은 애리조나 북부에 있는 작은 도시로 루트 66을 따라 세도나나 그랜드캐니언을 가기 전 들리는 교통 거점이다.


도시 이름에서 기둥을 뜻하는 Staff는 이 삼림 지역에서 주로 나는 소나무를 의미하는데, 19세기 미국 서부 개척 시기에 독립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서부 개척자들이 소나무에 성조기를 걸었던 것에서 이름을 따와 플래그flag스태프staff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애리조나주 하면 떠오르는 사막의 이미지와 달리 이곳은 해발 2100m에 위치해 있어 시원하고 울창한 침엽수림으로 유명하다. 과거 활발한 화산 활동 지대였던 터라 현무암 지대도 남아있다. 애리조나주 최고봉인 험프리 봉은 여름을 제외하면 항상 눈이 덮여 있는데, 플래그스태프 시내 어디에서든 이 험프리 봉을 볼 수 있다.


애리조나의 주도인 피닉스에서도 차로 3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아무튼 시골 동네.

15년 전 내가 있었던 시기에도 버거킹, 맥도날드 만이 유일한 햄버거 프랜차이즈였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한 달 전인가 치폴레가 생겨 주변에서 박수를 치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도 이 시골 동네에 치폴레가 생겼다며 모두 놀라워했다.

플래그스태프는 학부 시절 이곳에 있는 주립대로 교환학생으로 오게 되면서 2개 학기를 보낸 곳이다.


벌어놓은 돈도 없는 주제에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덜컥 합격해 부모님께 사정하며 갔던 터라, 생활비는 항상 넉넉지 않았다. 달러샵에서 팔던 1달러짜리 냉동 피자에 스리라차 소스를 뿌려 먹는 게 금요일 저녁의 낙이었다. 과일과 고기와 같은 신선식품은 사치였다. 아마존으로 시킨 신라면과 너구리를 찌개 삼아 쌈장을 풀어 얼큰하게 만든 뒤 밥 말아먹던 게 일상이었다.


교환학생 시기를 다 보내고 미국을 떠난 이후 다시 이 나라로 돌아올 일은 없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는 취업에 집중했고, 언론사에 취직한 이후에는 시간이 날 때면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나라에 집중했다. 인도나 이탈리아의 시칠리아, 일본의 소도시 같은, 낯선 곳을 찾아다녔다. 선택의 순간마다 미국은 항상 후순위로 밀렸다.


같은 시기 교환학생으로 이곳에 왔던 동기들과 달리 나는 처음부터 이 나라와 이곳의 문화에 대한 판타지가 아예 없었고, 직접 살아보면서 미국의 이면도 여럿 목격했던 터라 다시 가고 싶다, 또 살고 싶다는 감정은 거의 없었다.


더 넓은 세계를 보고 타지에서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운 선택이었지만, 고된 자취 생활과 부족한 영어로 난감했던 기억, 인종 차별을 겪었던 경험은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마음 한 구석에 무겁게 남아 있었다.


그렇게 무려 15년이 걸렸다. 다시 미국의 이 시골 동네에 오기까지. 비록 그랜드서클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겸사겸사 찾았지만, 어쨌든 오랜 숙원을 풀게 됐다.


아쉽게도 내가 방문한 시기는 졸업식이 끝나고 여름 방학이 막 시작된 시기라 학생들이 없어 한산했다. 나 때문에 굳이 이곳을 찾은 배우자에게 텅 빈 캠퍼스를 보여줘야 해 조금 민망했다.


거창한 소개와 달리 플래그스태프에서 다시 가보고 싶은 곳은 단 세 곳뿐이었다.


동기들과 자취했던 오프캠퍼스off campus 아파트.

전공 수업을 들었던 대학교의 커뮤니케이션 전공 건물.

중앙 도서관.


내가 만든 삼각지대다. 겨울 방학 때나 주말에 잠깐 여행을 하러 타 도시로 나갔던 일을 제외하고 학기 중에는 이 삼각지대를 벗어난 적이 없다. 학교 캠퍼스는 108만평에 이르지만, 나의 주된 동선은 집-학교-도서관-집 정도였다.


변한 것은 나뿐이었다. 20대 초반에 이곳에 왔던 나는 15년 사이 30대 후반의 길목으로 접어들었는데. 학교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낡거나 녹슨 티도 전혀 나지 않았다. 교보문고처럼 시그니처향을 뿌린 것도 아닐텐데 중앙도서관 특유의 오래된 책 냄새도 그대로였다.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 가장 좋아했던 자리로 가 조심히 의자에 앉아봤는데 그 딱딱한 나무 의자의 느낌도 변함 없었다.


아마 10년 후에도, 100년 후에도 이 학교는 그대로 일 것이다. 사라지는 것은 나 뿐이다.


학교 밖도 마찬가지다. 바뀐 것이라고는 그 사이 인앤아웃이 생긴 것과 오프캠퍼스에 있는 집으로 가는 길에 교차로가 생겼다는 것 정도. 서울만 해도 15년이면 한 지역의 상권이 적어도 한 번쯤은 물갈이되는데. 여기는 신기하게도 카페, 밥집, 마트 모두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구경하는 동안 배우자는 지루한 티를 숨기지 못했지만, 어쨌든 내가 오랜만에 추억 여행을 하는 것을 끈기 있게 기다려줬다. 나의 나와바리(?)이다보니 아는 맛집으로 배우자를 당당히 데려가고 싶었지만, 학생 시절 제대로 된 외식을 해본 경험이 없다 보니 아는 식당이 없었다(ㅠㅠㅠ).


그나마 하나 떠올린 곳은 아메리칸 차이니즈 뷔페. 돈이 없던 학생들이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성비 식당이었는데 아직도 운영 중이었다. 이번에 우리가 갔을 땐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도 몇 팀 와 있었다.


플래그스태프에 살았음에도 플래그스태프를 잘 알지 못하는 나를 위해 배우자는 명소를 하나 찾아내 이날 저녁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여기에 이런 곳이 있는지 꿈에도 몰랐다.




그랜드서클 로드트립 여행 TIP.

- 플래그스태프는 다른 애리조나 지역에 비해 평년 온도가 낮습니다. 봄,가을에는 일교차가 커 얇은 외투를 소지하길 권합니다. ★겨울에는 영하의 날씨가 이어지고, 허리춤까지 눈이 쌓이는 날도 있습니다. 눈이 많이 올 때는 고속도로를 통제하는 경우도 있으니 일기예보를 상시 확인하세요.
- 플래그스태프에 세이프웨이와 타겟, 월마트가 있어 그랜드서클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필요한 물건이나 음식을 미리 구비하기 좋습니다.
- 아메리칸 차이니즈 뷔페는 <China Star Super Buffet>를 방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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