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간의 그랜드서클 로드 트립 시작
보스턴→라스베이거스→세도나→플래그스태프→그랜드캐년→페이지(Horseshoe Bend, Antelope Canyon)→모뉴먼트 밸리→ 모압(Arches NP, Capitol Reef Np)→브라이스캐년시티(Bryce Canyon NP)→스프링데일(Zion Canyon NP)→라스베이거스→보스턴
꿈 같은 일이다. 배우자와 14일간 미국 서부 그랜드서클을 로드 트립을 하기로 했다.
그랜드서클(Grand Circle)은 미국 서부의 그랜드캐니언과 엔텔롭캐니언, 모뉴먼트밸리, 자이언캐니언을 크게 한바퀴 도는 자연 경관 루트를 말한다. 나의 경우 라스베이거스를 기점으로 네바다주, 애리조나주, 유타주를 돌아 다시 네바다주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잡았다.
그랜드서클은 나와 배우자의 몇 안 되는 버킷리스트 교집합 중 하나다. 그랜드서클을 제대로 돌려면 못해도 비행기로 이동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현지에서만 최소 8일은 잡아야 한다.
직장을 그만두어야 갈 수 있는 여행지라고 생각했다. 나의 경우 회사에서 길게 낼 수 있는 연차가 주말 포함해 최대 9일 정도였기 때문에 그동안 그랜드투어는커녕 미국으로 여행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미국 동부에서 1년살이를 하게 되면서 다행히 이곳을 여행할 기회가 생겼다. 아마 미국에 있는 기간 동안 시간과 돈을 가장 많이 쓰는 여행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랜드서클은 6월이 성수기라고 한다. 조금만 더 늦으면 날씨가 너무 더워져 관광을 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6월 중순을 넘어가지 않으려 여행 일정을 이때로 잡았다.
이번 여행에서 잠시 들리기로 한 애리조나의 플래그스태프는 특히 의미 있는 행선지다. 관광객들이 그랜드캐니언을 가기 위해 잠깐 쉬어가는 도시이지만, 나의 경우 15년 전 이곳에서 1년여를 살았던 터라, 이번 기회에 오랜만에 추억여행을 하고 싶었다. 잠깐 학창 시절을 보냈던 곳을 배우자에게 소개해주고 싶기도 했고. 여기서 1박을 보내기로 했는데 14일간의 여유로운 일정이라 하루정도는 시간을 뺄 수 있었다.
첫 시작점은 라스베이거스. 라스베이거스에서 차를 렌트해 반시계방향으로 한 바퀴 돌 계획이다. 같은 미국 땅에서 출발하는 건데 비행시간만 5시간 반이다. 한국에서 방콕이나 자카르타 정도 되는 거리다. 미국 내 항공업계 경쟁이 치열해 그런지 미국 국내선은 그렇게 비싸지 않았다. 먼 거리인데도 보스턴-라스베이거스는 인당 25만~30만원이면 왕복표를 구할 수 있었다.
이번 여행은 첫날과 둘째 날 일정이 가장 중요하다. 이동시간이 가장 긴 날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계획은 오후 8시 반 라스베이거스 공항에 도착해, 밤 10시까지 호텔로 이동한 후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이었다.
이미 보스턴과 시차가 3시간 늦어진 터라 이곳에서는 9시~10시에 자야 평소 바이오리듬을 유지할 수 있다. 또 다음날 렌터카를 오전 8시로 예약해 놔서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바로 5시간 이상 걸리는 세도나로 떠나야 했다. 그랜드서클 투어하면서 운전 시간이 가장 긴 날 중 하루였다.
보스턴 로건 공항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수월하다. 보스턴 시내 대중교통이 잘 마련돼 있는 덕분이다. 레드라인을 타고 사우스스테이션에서 내리면 버스로 환승할 수 있는 정류장이 나온다. 빠르게 걸으면 30초 만에 환승할 수 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운 좋게도 버스가 와서 냉큼 올라탔다. 20분이나 지났을까 공항에 도착했고, 델타항공 전용 체크인카운터가 있는 터미널 A에서 내렸다.
우리가 가져온 짐은 기내에 들고 탈 크로스백을 제외하고, 수화물용 캐리어 하나뿐이다. 무게는 60파운드가 조금 넘었다. 캐리어 하나에 짐을 다 때려 넣느라 무거운 편이긴 했지만, 어차피 인당 70파운드 캐리어 1개까지는 무료라고 해 별 걱정 없었다.
웬걸. 수화물을 부치려 하니 카운터에 있던 델타항공 직원이 130달러를 추가로 내야 한다고 했다.
앞서 언급했듯 델타항공에서 이메일로 나에게 고지한 영수증에는 수화물 70파운드까지 무료라고 쓰여있었다. 그런데도 이 직원은 막무가내로 돈을 내야 한다며 한숨을 쉬는 것이다.
황당한 마음에 델타에서 보낸 이메일 영수증을 꺼내 보여줬더니, 그제야 주변 직원을 불러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혹시나 우리가 대한항공 모닝캄 회원인게 영향을 준 건 아닌지 의견을 물었다. 델타와 대한항공은 스카이팀이자 JV 제휴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질문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는 답변 뿐이었다.
본인들 선에선 답을 찾지 못했는지 책임자를 연결하려 전화기도 한참 들고 있었지만 상대방이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전화를 끊은 담당자는 이내 아무 설명 없이 바코드를 인쇄해 수화물 손잡이에 둘둘 감았다. 무료 수화물이 맞는 건지, 추가적인 결제를 하지 않아도 되는지, 제대로 된 설명도 하나도 하지 않고 말이다.
배우자가 '우리 다 된 거지?'라고 먼저 물어보니 그제야 단답으로 '가도 돼'라고 하더라.
사전에 영수증을 살펴보지 않고 왔더라면, 불필요한 130달러를 지불할 뻔했다.
델타 직원이 규정을 잘 몰랐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 면전에서 그렇게 한숨을 쉬어놓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설명도 없이 짐을 부치는 건 잘 이해되지 않는다.
카운터를 빠져나온 이후에도 불쾌한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하지만 긴 여행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순간이니 의미부여하지 않기로 한다. 여행은 어렵고 곤란한 일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지 않은가.
마침, 비행기에서 벌어진 황당한 일로 이번 일은 아무것도 아니게 됐다.
그랜드서클 로드트립 여행 TIP.
- 라스베이거스를 기점으로 반시계방향으로 돌기로 했습니다. 반시계 방향은 여행 초반 상대적으로 한산한 편이라 숙소를 잡기에 용이합니다. 시계 방향은 인기가 있는 자이언, 브라이스 NP부터 여행을 시작해야 해 주차나 숙소 부분에서 경쟁이 치열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시작해도 결국 한바퀴를 도는 일정이라 정답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