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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가 비용이 500만원?보스턴마라톤의 경제적 효과

런트립(RUN TRIP)을 계획한다면

by Tatte
미국 보스턴에 잠시 거주 중입니다. 이제는 구글맵 없이도 다닐 수 있을 만큼 지리에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것은 이 도시의 물가입니다. 달러당 1400원대라는 기록적인 고환율과 살인적인 물가의 압박을 벗 삼아 지내는 이방인의 느슨한 도시 적응기를 전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마라톤, 보스턴 마라톤을 직관하겠다는 작은 목표를 마침내 이루게 됐다.


지난 4월 21일 월요일, 129회 보스턴 마라톤이 성황리에 마무리 됐다. 세계 6대 마라톤으로 꼽히는 보스턴 마라톤은 보스턴에서도 공을 들이는 대대적인 행사다.


보스턴마라톤 코스는 출발지와 도착지가 다르다. 홉킨턴에서 시작해 도착 지점이 있는 보일스턴까지 42.2마일이 이어진다.


가장 어려운 구간은 하트 브레이크 힐이다. 레이스 초반인 20마일 지점에 있는 악명 높은 오르막길인데 800m 정도 경사가 이어진다. 그 뒤에도 오르내리는 구간이 반복돼 선수들이 두려워하는 코스다.


마라톤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마지막이다. 피니쉬 라인을 보스턴에서 가장 번화한 뉴버리 스트리트 근처인 보일스턴(Boylston)에 배치해 경주가 극적으로 끝나는 효과를 낸다.


일반인 참가자들은 오전 10시에 출발하는데, 1시를 전후해 하나둘씩 다운타운을 향해 속속 뛰어오기 시작한다.


다운타운에 가까워지면 응원하는 시민들의 수가 극적으로 늘어나는데, 힘들어하던 참가자들도 이 구간에서는 엔돌핀이 도는 듯했다.


내가 경기를 지켜본 곳 역시 결승선이 있었던 보일스턴이다. 덕분에 선수들이 긴 여정을 마치고 성취감을 느끼며 감격하는 모습을 직관할 수 있었다.


보스턴 마라톤의 묘미는 참가자들을 향해 박수를 보내며 힘껏 응원하는 시민들이다.


간혹 극심한 통증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는 사람도 있었지만 보스턴 시민들의 열띤 응원은 그들을 일으켜 세울 만큼 열정 가득했다.


참가자들은 힘든 와중에도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하고 더 큰 응원을 유도하며 결승선 앞에서만 즐길 수 있는 기쁨을 최대한 만끽했다.


관절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무릎도 제대로 펴지 못해 주저앉다가도, 열정적인 응원에 힘입어 다시 결승선을 향해 나아가는 어떤 이의 모습을 보니 나 역시 박수가 절로 나왔다.

마라톤을 완주한 참가자들이 보스턴 커먼에서 가족, 지인들과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이런 감동적인 순간들이 129회째 이어져 이 도시의 전통으로 굳어 이어진 것이다. 보스턴이 왜 마라톤에 진심인지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마라톤에 참가하지 않더라도 마라톤이 열린다는 사실을 모를 수 없을 정도로, 이미 도시 곳곳에서 광고 캠페인이 진행됐다. 보스턴 마라톤의 협찬사인 보험사와 은행, 스포츠용품 등의 광고들은 모두 마라톤을 타깃으로 제작됐다.


보스턴 마라톤이 갖는 경제적 효과는 7000억원 규모를 넘어선다.


보스턴 육상 협회(BAA)에 따르면 지난 2024년 보스턴 마라톤은 매사추세츠주에 5억910만 달러의 경제적 효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작년 경기에는 3만명 이상이 참여했는데, 뉴잉글랜드 이외 지역 참가자의 절반 이상인 51%가 평균 500달러를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마라톤이 끝난 후 한 내국인 참가자(@elizabethcolr)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쇼츠가 눈길을 끌었다.


올해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그가 쓴 비용이 정리된 내용이었다.


마라톤 참가비 250달러
국내선 비행기(워싱턴→보스턴, 2인 기준) 950달러
호텔비(뉴버리 근처 2박3일 기준) 1464달러
택시&우버 비용 149달러
식비(외식비) 605달러
마라톤 기념 자켓 및 엑스포 쇼핑 252달러

총: 3670달러(약 525만원)


이 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그가 지출한 비용은 500만원을 넘어선 것이다.


워싱턴에선 온 내국인 참가자가 들인 비용이 이 정도이니 한국에서 보스턴 마라톤에 참가하려면 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요새는 한국에서도 러닝이 성행하다 보니 해외 유명 코스에서 직접 러닝을 하는 런트립(RUN TRIP)이 늘어나는 추세다.


스카이스캐너에 따르면 세계 7대 마라톤 중 한국인 러너들이 가장 참여하고 싶은 마라톤은 보스턴과 뉴욕 마라톤이라고 한다.


비행기표를 왕복 기준 300만원으로 잡는다고 하면 700만원 이상을 예산으로 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안 그래도 비싼 보스턴의 호텔 가격은 봄이 시작되는 4월 마라톤과 맞물려 호텔 가격이 치솟는다. 극성수기로 봐야 한다.


식비의 경우 개인차는 있겠지만, 요새 미국 도시의 외식 물가와 팁, 체류 기간을 고려하면 넉넉히 잡는 편이 속 편하다.


이렇게 되면 서울-보스턴 기준 런트립 한 번을 위해 천 만원이 조금 안 되는 비용이 필요하다.


꽤나 비싼 취미 생활이지만 마라톤에 진심인 이들은 비용을 감수하고서라도 보스턴을 찾는다. 최고(最古)라는 진가는 직접 뛰어야만 알 수 있기에.


실제 이날 태극기를 들고뛰는 한국인 러너도 여럿 봤다. 러닝계에서 이름을 날린 연예인도 이날 보스턴에서 피니쉬 라인을 통과했다.


마라톤이 갖는 경제적 효과도 어마무시하지만, 외로운 경주를 견뎌내는 참가자들의 끈기와 집념, 그들을 열성껏 응원하는 시민들에게서 느낀 감동은 당분간 잊기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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