쎈 선배의 편지
저는 나무를 좋아합니다. 일상생활에서나 여행 가서나 주변의 나무를 유심히 봅니다. 나무에 시선을 자주 빼앗겨 어느 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제가 나무를 왜 좋아하는지를요.
저는 나무를 단단하게 지탱하며 거침없이 위를 향하는 기둥의 굳건함을 좋아합니다. 나무를 올려다볼 때면 하늘을 배경으로 마치 그림을 그리듯 사방으로 뻗는 줄기의 자유로움을 좋아하고, 주변의 크고 작은 나무들과 어울려 숲을 이루는 어울림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숲길을 걷다 쓰러진 커다란 나무를 보았습니다. 하늘을 향해야 할 무성한 잎은 땅에 널브러져 있고 땅속에 있어야 할 뿌리는 하늘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지나간 태풍 때문이라고 생각하면서 다가가 보니 뿌리가 얕았습니다. 보기엔 크고 튼튼해 보였지만, 땅속의 뿌리는 흙에 깊이 파고들지 못한 채 지표 가까이에 엉켜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새삼 깨달았습니다. 나무를 지탱하는 건 눈에 보이는 기둥이나 줄기, 잎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뿌리라는 사실을요. 그리고 무엇이든 오래 버티는 힘은 보이지 않는 뿌리에서 온다는 것을요.
생각해 보면 사람도 나무를 닮았습니다. 우리도 보이지 않는 뿌리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나무처럼 뿌리가 단단하면 잠시 흔들려도 다시 제자리를 찾지만, 뿌리가 약하면 작은 바람에도 넘어집니다.
요즘은 빠른 성과와 성취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입니다. 나무로 치면, 가지가 얼마나 멋지게 뻗었는지, 잎이 얼마나 무성한지가 더 큰 관심을 받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화려하게 자란 나무라도 뿌리가 약하면 오래 서 있지 못합니다. 깊게 뿌리내리지 않은 나무는 조금의 바람에도 흔들리다 결국 쓰러지고 맙니다.
나무의 뿌리를 눈으로 볼 수 없듯, 우리 역시 자신의 뿌리를 직접 보지 못합니다. 저 또한 세상에 보이는 일들에 집중하느라 제 뿌리가 어떤지는 살피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지금 나를 지탱하는 뿌리는 얼마나 단단한지, 내 뿌리를 감싼 흙은 메말라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지 못하고 지나칩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속도에 휩쓸리다 보면, 뿌리가 성장을 멈출 수도 있음을 잊습니다. 나를 버티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뿌리인데 말입니다.
나무가 그렇듯 사람도 뿌리를 깊이 내리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뿌리를 내린다는 건 자신을 단단히 세운다는 뜻입니다. 나를 지탱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그 가치를 지켜내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땅속에서 흙을 뚫고 물을 찾아 영양분을 끌어 올리듯, 사람도 자신의 뿌리로 각자의 흙 속에서 필요한 영양분을 끌어 올립니다.
깊게 내린 뿌리는 태풍이 와도 쉽게 뽑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단히 버틴 그 뿌리 위에서 가지가 자라고, 잎이 피고, 꽃망울이 맺힙니다.
요즘 무성한 나무를 볼 때마다 보이지 않는 뿌리를 생각합니다. 이 나무의 뿌리는 지금도 한순간의 쉼 없이 땅속을 파고들며 영양분을 끌어 올리고 있겠지요. 그 모습을 상상하면 나무가 더 경이롭게 다가옵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깊을수록 나무가 더 높이 자라듯, 우리도 성장하기 위해 자신의 뿌리를 단단하게 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삶을 지탱하는 진짜 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