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는 이중성이 존재한다. 한 단어에 두 가지 뜻이 담긴 이중적 의미가 아닌 화자가 전하는 의도와 청자가 받아들이는 간격 사이에서 발생하는데, 화자가 특정 의도를 담아 상대에게 말을 건넸어도 청자가 그 의미를 오롯이 받아들이지 못하면 그 말은 의미를 잃은 것이 아닌 이중성을 가지게 된다. 특히 사회에서 오랜 시간을 거쳐 굳어질 대로 굳어진 뜻으로 해석되는 말일수록 더욱 그러한데, 그중 하나가 생각이 많다, 이다.
생각은 하지 않으려 노력할수록 수가 많아지는 특별한 존재이다. 흔히 생각이 없다고 불리는 사람도 하늘에 떠 있는 별의 개수만큼 생각의 가지를 뻗친다. 그러므로 명상과 같은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려 노력하는 일련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생각이 많다는 말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과 상대에게 “나는(너는) 참 생각이 많은 것 같아.”라는 말을 종종 사용한다. 그 사람의 진중한 성격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왜 저렇게 고민이 많을까, 왜 저렇게 우유부단할까, 왜 저렇게 굼뜰까를 내포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동전에는 양면이 존재하듯 생각이 많다는 것을 다른 시선으로 봤을 때 4차 산업에서 필수 가치라고 여기는 창의성의 확장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창의성은 사물을 바라볼 때 한쪽이 아닌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며 발달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게 본다면 생각이 많다고 불리는 사람은 4차 산업 시대를 선도할 능력을 갖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 더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는 오랜 시간을 거쳐 확립된 사회적 통념의 결과일 것이다. 삶은 언제나 양면성을 가지지만, 양면성이 꼭 균등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처럼 부정적인 관점으로 여겨진 데는 생각의 다수가 수채화 물감 뿌려지듯 고민으로 번지기 때문이다. 뇌의 가운데에서 호르몬 분비를 총괄하는 뇌하수체처럼 머리끝에서 시작된 고민은 발끝까지 찰나에 흩어진다. 생각과 고민이 많다고 해서 잘못된 것도, 나쁜 것도 아닐 것이다. 장고(長考) 끝에 꼭 악수(惡手)를 두는 것은 아니다. 고민한다는 것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음을 의미한다. 고민은 100m를 전속력으로 뛰었을 때 심장박동수를 정상 수준으로 가라앉히는 역할을 하며, 조금 더 효과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게 한다.
그런데 고민은 불안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여러 실험에 의하면 어떠한 행동을 하지 않고 생각에만 머무르면 부정적인 흐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즉 작은 불씨가 화마로 번지듯 순식간에 불안이 생각을 잠식해버린다. 불안은 보이지 않는 존재와 대치해야 한다. 집에서 눈을 감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그 집에 오랫동안 산 사람일수록 집의 구조를 눈감고도 알 텐데, 쉽게 발걸음을 내디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벽, 문턱, 자신의 몸에 상해를 입힐 어떠한 물체를 생각하고, 그곳에 부딪혔을 때 얼마나 아픈지를 상상한다. 아픔의 척도는 최고치에 다다라 몸을 위축되게 하며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기도 한다. 즉 하나의 생각은 하나의 불안에 닿게 되고, 그 불안은 또 다른 하나의 생각을 만들어 하나의 불안을 창조한다. 생명공학자가 추구하는 순환체계의 완벽한 예시이다.
나와 직간접적으로 연을 맺는 사람 중에 생각이 가장 많은 사람은 어머니이다. 4차 산업을 선도할 만큼의 역량을 갖추셨으나, 어머니의 생각 다발은 대게 불안으로 이어진다. 어머니는 매분 매초 보이지 않는 불안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으신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 심신으로 체력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존재했을 때는 불안과 대등한 위치에 서 있는 듯했으나, 시간의 흐름 앞에 체력이 떨어지면서 지금은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서 아슬아슬 위태해 보이기도 한다.
아들로서 운동장을 다시 평평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어머니의 시간과 공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그리 많지 않았다. 가끔은 스스로 매우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 믿었던 나조차도 어머니가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버렸다. 가끔 위로라는 명목으로 다가서려 할 때, 감정의 전이가 순식간에 이루어져 내가 가진 불안에 어머니의 불안이 더해져 둘의 불안이 오히려 진해지기 일쑤였다. 그 순간을 감내하기엔 나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어머니 다음으로 생각이 많다. 어머니는 종종 내가 생각이 많은 데는 유전의 영향이 클 것이라 말씀하시는데, 외형의 범주가 아닌 기준에서 유전자의 영향을 잘 믿지 않는 나조차도 어머니의 자조적인 말씀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어떠한 생각을 하는 데 있어서 불안이란 감정이 나를 먼저 마중했다. 나는 불안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올곧이 받아들여 품거나 수용하려 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고 떨쳐내려 노력했다. 그 순간의 노력이 잠깐의 불안을 해소하게 하였다는 데는 거짓 없는 사실이라 말하고 싶으나 언제나 임시방편에 불과했던 것 또한 진실에 가까운 사실이었다.
반소매가 어색한 어느 계절의 평일 낮이었다. 며칠간 잠을 제대로 못 잔 탓이었는지, 전날 우산이 없어서 소나기에 홀딱 젖은 탓이었는지 몰라도 몸이 꽤 아팠다. 정오쯤에 힘겹게 눈을 떴으나 뭉그적대다 보니 어느 정도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오후 2시가 조금 넘었음을 알았다.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댔을 때 대충 38, 39도 언저리쯤 되겠구나 생각하며 몸을 구부정하게 일으켰다. 이불을 둘러쓴 채 종일 눈을 뜨지 않고 싶었으나, 다음 날에 있을 강의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였다. 한 번도 뜯지 않은 몸살약을 주방 찬장에서 꺼내어 두 알을 빼냈다. 그냥 삼킬까 하다가 속이 쓰릴 것 같았다. 뭐라도 속을 채워야 할 듯하여 냉장고 문을 열었더니 삼겹살, 두부, 소시지 등 다양한 먹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칼로 썰고, 가스를 켜는 긴 과정을 거치기 싫다는 생각에 부딪히자 ‘그냥 물에 밥이나 말아먹자.’란 결심에 이르러 며칠 전에 시장에서 사 온 김치가 담긴 작은 통만 꺼내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식탁에는 비빔밥을 섞을 때나 쓰는 큰 유리그릇과 방금 데운 즉석밥, 김치, 생수 한 병 그리고 알약 2개가 전부였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없었으나 오랜 습관처럼 TV를 켰다. 밥이 물에 잠기도록 물을 붓고, 밥알에 물이 스며들기를 잠시 기다린 후 밥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김치를 뒤따라 넣었다. 그런데 태생에 맛이란 의미가 존재하는 게 무색한 듯 축축한 밥맛도, 김치의 짭조름한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밥을 넣고 빼는 행위를 대여섯 번 반복하다가 문득 ‘지금 느끼는 불안을 이렇게 물에 말아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는지 적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는 밥과 김치란 존재가 외적 세상에 있다가 없어지는 단순한 행위처럼 불안도 내적 세상에서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섞인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밥을 다 먹고 김치가 담긴 그릇의 뚜껑을 닫은 후 식탁에 놓인 알약을 입에 넣고 세 시간 정도 더 잠을 청했다. 붉음이 내려놓을 즈음 눈을 떠서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결국은 그날 밤을 새우가 다음 날 강의에 갔다. 강의가 끝나고 피곤이 거센 파도처럼 나를 덮쳤으나 전날의 선택에 후회는 없었다. 눈을 뜨고 이마에 손을 얹혔을 때 37도쯤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