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를 여행할 때 현지인의 집에 머물면서 돈을 지급하지 않는 대신 집 구성원과 문화, 언어를 공유하는 시스템인 카우치서핑을 이용해서 숙박을 대부분 해결했다. 기니에 머물 때 카우치서핑 호스트는 시에라리온 친구인 John이었다. 2주일 동안 그와 동거동락하며 기니와 시에라리온이라는 나라에 대해 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런데 그에게 여러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 내게 시에라리온은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의 배경지라는 것 말고는 여분의 지식과 정보가 없었다. 인터넷 검색에는 가난, 내전, 기아가 대부분이었다. 1년 동안 여행하며 흔히 적당한 위험쯤은 감내할 수 있다는 여행자 마인드를 가진 나에게도 쉽게 발걸음을 내디딜 용기가 생기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John은 그러한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내가 얕게 알고 있는 시에라리온과는 다름을 이야기했고, 꼭 내 눈으로 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결국 기니를 떠나기 3일 전에 <블러드 다이아몬드>를 다시 본 후 시에라리온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까지는 시에라리온이 여러 부분에서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나라일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는 10년 넘게 이어 온 시에라리온 내전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반정부세력(RUF)이 내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무기를 구매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다이아몬드가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반란군과 정부의 이야기가 큰 흐름으로 이어졌지만, 그 안에는 내전의 아픔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수작(秀作)이었다. 시에라리온에서 만난 현지인들과 이야기 나눴을 때도 영화가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현실을 잘 반영했다고 말했다.
시에라리온은 최근까지 전쟁이 벌어졌던 나라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평화로웠다. 내전으로 부서진 건물과 도로를 보수하느라 여념이 없었지만,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그런데 이전에 여행한 나라와는 달리 꽤 많은 사람이 신체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로 인해 정신장애까지 겪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반란군이 당시 대통령을 투표했다는 이유로 투표한 사람의 손을 칼로 자르는 장면이 있다. 누군가는 그로 인해 한쪽 손목을 잃었고, 한 친구는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벽에 튀겨져 나온 총알이 다리에 박혀 한쪽 다리를 잃었다고 했다. 내전으로 인해 장애를 가진 이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눴는데, 유난히도 달이 밝았던 어느 날 밤에 해안가에 앉아 문득 ‘장애란 무엇일까?’란 생각을 마주했다.
장애란 신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를 말하며, 장애인은 이러한 장애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다리는 서고 걷고, 눈과 귀는 무언가를 보고 듣고, 입은 음식을 먹고 생각을 말하고, 뇌는 신체의 감각이 원활하게 작동되게 할 때 제 기능을 한다고 말하며, 그렇지 않은 사람을 장애가 있는 것으로 사회는 판단한다. 그리고 장애가 있는 사람을 사회적 약자로 칭하며, 약자가 아닌 일반 사람과 더불어 누군가 강자라 칭하는 사람이 그들을 돕기를 바란다. 이것이 오랫동안 나를 포함한 대부분이 교육과 일상생활에서 인지한 장애인이자 사회가 만들어놓은 장애인에 관한 일반적인 시점이었다.
이러한 시점에 대한 옳고 그름을 논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모든 시선을 양면으로 바라보려 하는 지금의 나에게 이 부분 또한 해당함을 이제야 인지하게 되었고, 그 생각의 일부를 글에 옮기는 것이다.
시에라리온에서 만난 그들은 자신을 ‘다른 사람’으로 보는 눈빛이 제일 두렵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정신 장애인 관련 교육을 받았을 때 교육하시는 분은 정신 장애인을 만날 때 ‘도와야 할 사람’으로 바라보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이전에도 누군가 내게 이와 같은 말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내 귀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이야기는 아니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장애인 공식 등록 수는 약 259만 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 명이라고 한다면 20명 중의 한 명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 22인 버스에 앉은 사람 중 한 명이며, 현재 초등학교 한 반에 한 명이다. 5%의 수치는 당연히 특별함에 가깝지만, 우리가 인지하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생각보다’ 평범함에 가까울 수 있다. 그렇다고 장애가 있는 사람을 평범한 사람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인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누군가는 다른 시선으로 보지 말아 달라고 하지만, 다른 누군가는 약자로서 대우받는 부분에 감사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장애인에게 해당하는 복지로 하루하루 삶을 연명하는 사람 또한 주변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애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지금의 현실에서 우리는 그들을 특별함만으로 바라봐서는 안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군대 면제를 받기 위해 경음기, 나팔 소리에 귀를 노출시켜 청각 상태를 일시 마비시키고, 누군가는 장애인 등록증을 위조해 대학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입학하기도 한다. 이들은 어디에 속할까?
학창 시절 축구를 하다가 공에 발만 닿으면 골인 상황에서 공을 놓치면 누군가는 “발이 애자네.”라고 말했고, 그보다는 더 흔하게 무언가에 대한 행위를 잘하지 못하면 심심치 않게 “병신”이라 말했다. 그때만 해도 그냥 또래에서 흔히 사용되는 일시적 말실수라고 치부했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주변에서 이와 비슷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는 사람을 그리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과연 골을 못 넣는 사람이 장애‘자’인가, 그런 말을 심심치 않게 하여 누군가에게 치유되지 않는 비수를 날리는 사람이 장애‘인’일까?
이러한 사회 시선 때문에 장애를 가지고 있음에도 장애 신청을 꺼려기도 한다. 특히 정신장애를 가진 사람은 사회적 약자가 아닌 사회적 악(惡)자로 보는 풍토를 가지고 있음을 부정하기란 어렵다. 나도 정신장애 관련 칼럼을 적으면서 일부 단어를 이미 ‘다른’ 관점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었음을 타인의 의구심을 통해 알게 되었다. 아마도 장애 신청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장애로 얻는 소량의 이익보다 스스로 감내하여 다량의 손해를 미리 방지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모른다.
참여하고 있는 인문학 수업에 가수 강원래 씨가 강연자로 참석하여 장애와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도 장애인 중에 가장 대중화된 사람이 아닐까 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사고로 인해 갑작스럽게 바뀐 그의 삶을 알고 있다. 그의 첫인상은 타인의 도움이 없으면 20cm 단상 위조차도 스스로 올라갈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첫 인사가 유독 귀에 담겼다.
“SRT를 타고 부산에 왔습니다. 그런데 SRT 타러 가는 길은 제가 집에서 직접 운전해서 갔습니다.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어떻게 운전을 하느냐?’라고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차에는 당기면 엑셀, 밀면 브레이크가 되는 작대기와 같은 장치가 있습니다. 30만 원 정도면 달 수 있습니다. 휠체어에서 차로 어떻게 옮겨 탈까요? 일단 휠체어에서 차량 앞자리로 옮겨 앉습니다. 의자를 뒤로 넘깁니다. 휠체어를 접습니다. 그리고 뒷자리에 싣습니다. 빠르면 30초, 느리면 1분 20초 걸립니다. 그렇게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극단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생각한다. 나는 몇 번의 교통사고를 겪었다. 사고의 정도가 조금 더 깊었다면 가정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과연 내가 장애인으로 살아갈 때 사회가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을 버틸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그 시선에 담긴 불안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되묻는다. 이러한 상황이 단순 경우에 머물렀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지만 5%의 확률은 소망에 속하는 다른 확률에 비해 높은 축에 속한다. 그래도 그렇지 않음을 바라는 마음으로 다시 생각한다. 나는 오늘도 장애를 달리 보는 말로 하루를 보내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