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그'의 이야기
그는 참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당연히 처음부터 부정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학창생활을 지내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좀 더 꼼꼼히 살펴본다는 것이 계산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었고, 계산적인 사람은 긍정적이라는 것보다는 부정적인 사람으로 인식되어 버렸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자신을 감추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긍정적이려고 노력했다.
착함이 나쁨보다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는 그렇게 행동했다.
상황이 좋지 않아도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상대가 잘못해도 화를 내기보다는 감싸려고 노력했고, 상대가 화를 내도 다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사과했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이 편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는 연애를 참 잘한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원하는 것을 잘 들어주되 그가 원하는 것은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 상대가 피곤해하는 것도 싫었고, 자신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싫었다.
가끔 다투는 날이면 항상 사과는 그의 몫이었다. 사과 한 번이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아도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는 만들 수가 있었다. 분명 그의 잘못이 아닌 일임에도 그는 상대의 잘못을 줄이고 내 잘못을 만들었다. 그는 그게 편했다.
한 번은 그가 정말 화가 나서 처음으로 상대에게 소리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평소처럼 그가 사과하면 자연스럽게 넘어가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상대가 얼마나 놀랐는지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쁜 남자가 아닌 착한 남자로서 그녀를 보듬었다.
자연스럽게, 상대가 편안할 수 있게, 멍청한 남자가 아닌 착한 남자스럽게 그렇게 그는 행동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게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상대도 그렇다고 생각해주길 바랐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도 있는 법이다. 그녀들과 이별했을 때 그는 들었던 말들이 있었다.
"이해하려고만 하는 모습에 답답했다"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왜 표출하지 않는지 가끔 이해할 수 없었다"
"항상 사과를 받는 입장이 되었고 괜히 자신만 나쁜 사람이 된 것 같아 싫었다"
"착함 콤플렉스를 버렸으면 좋겠다"
그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다. 그녀의 잘못을 1부터 100까지는 안돼도 50까지는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는 말하지 않았다. 어차피 끝이면 남이 될 사이였기에 그녀가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이미지가 나쁘지 않기를 바랐다. 양다리를 걸쳤던 그녀에게도 말이다.
그리고 그는 다음 사람에게는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다 보여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상대가 잘못했으면 화도 내고, 사과를 받기도 하고, 연락도 과감하게 하지 않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말이다.
그의 다짐은 연말에 세우는 연초 계획과 같았다. 다 쓸모없는 계획들이었다.
그는 화내지 않았고, 사과했고, 연락을 먼저 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그것이 편했다. 정말 하기 싫어했지만 그것이 편했다.
아마 당신은 그가 정말 답답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어쩌면 그를 이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그가 정말 답답하다.
그가 변했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글을 적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그' 가 '그'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