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에 대한 작은 이야기
1985년, 내가 태어난 해 이자 정국이 어지러웠던 시기이다.
초등학교를 가고, 대학교를 졸업할 때 한국은 imf를 이겨내고 선진국의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굶고 살지는 않았고 좋은 차, 좋은 집은 아니어도 평범한 차, 크지 않은 집은 마련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전쟁과 부모님 세대의 항쟁으로 만들어낸 민주화는 우리와는 큰 상관이 없는 일들이었다. 단지 우리가 성장하기 전에 겪었던 사실과 결과일 뿐이었다.
우리는 편안한 삶을 보내고 있다.
부모님에게 용돈을 받아서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용돈을 받기 싫으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직장을 통해 돈을 마련하면 되는 일이었다. 돈의 크기에 따라 규모가 달라질 뿐 욕심을 줄이면 대부분 가능한 것들이었다.
분명 자살 국가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치열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지만 편안한 삶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삶 속에서 어쩌면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일에 대한 감사함을 잊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마워" "Thank you"
여자 친구가 나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었을 때, 후배가 승진 축하한다고 나에게 인사할 때, 나를 위해 깜짝 생일 파티를 열어 주었을 때, 떨어진 물건을 누군가 주워주었을 때 우리는 가볍게 혹은 진심을 담아 상대에게 고마움을 전달한다.
그러나 일요일 아침에 커피를 마실 때, 퇴근 후 따뜻한 욕조에 반신욕을 할 때, 한 겨울에 보일러를 틀 때, 한 여름에 에어컨을 틀 때, 집에서 라면을 먹으며 게임을 할 때, 지하철에서 유튜브를 볼 때 우리는 고마움을 느끼지 못한다. 왜냐하면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지내면서 감사함이라는 단어를 다시 배우고 느끼고 있다.
종종보다는 자주 전기가 없는 집에서 며칠씩 지내기도 하고, 3일 동안 1.5L의 물로 씻고 마시기를 했다. 8명이 정원인 차에서 20명이 탑승하여 16시간을 이동하기도 했으며, 5일 동안 인터넷이 안되어 6일 째만에 카톡을 켰을 때 무슨 일 생긴 것 아니냐고 와 있던 수많은 문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편하고 불편하고 불편한 아프리카에서의 삶을 나는 즐기기도, 이해하기도, 그냥 그러려니 하기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한국에서 지낸 것처럼 자연스러워진 것일 수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나눠주는 보상없는 도움의 손길들은 불편함을 넘어 이걸 꼭 보답하고 싶다는 생각들을 가지게 한다. )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한국에서 지냈던 자연스러운 삶들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커피를 마시며 부모님과 대화했던 것도, 반신욕을 하며 하루를 정리하는 것도, 이불을 둘러싸고 귤을 까먹으면서 영화를 보는 것도, 에어컨을 틀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도, 핸드폰의 블루 라이트를 안대 삼아 잠을 청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가장 감사한 것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에서는 한쪽 손이 없거나,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수많은 내전과 테러로 인한 결과이다. 또한 돈이 없어서 아이가 아파도 병원은 고사하고 약도 제대로 사 먹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시에라리온 마케니에서 잠시 머물 때 옆집 막내 아이가 그러했다. 미혼모 여성이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는데 아이의 엄마도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했고 수입원이라고 할 만한 것조차 딱히 없었다. 아이의 배를 채우는 것조차 어려워 끼니를 거를 때가 많았고 6달도 되지 않은 둘째 아이는 피골이 상접해있었다. 머물렀던 친구와 함께 아이의 분유와 몇 가지 음식을 사서 그 집에 전달하고 나는 마케니를 떠났었다.
그리고 어제 친구와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지난주에 둘째 아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사도 없어서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했지만 아마 굶주림이 주원인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또한 아이의 엄마도 며칠째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어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다고 했다.
수 없이 듣기만 했던 일이 내가 봤던 사람 중에 벌어진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그 감정은 무어라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불어로 가득한 외국 액션 영화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흘렀다.
여행을 시작한 이유가 어떠한 계기들로 인해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내 삶 속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자라는 생각으로 선택했는데 어제 수많은 생각에 잠도 제대로 청하지 못했다.
잠깐이지만 내린 결론은 살아감에 있어서 감사하자였고, 여러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한국이라는 나라에 감사하기로 했다. 또한 내가 겪지 못했던 아버지 세대와, 그 이전의 할아버지 세대에도 감사함을 전달하기로 했다.
아마 한국에 돌아가면 이전과 같이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확률이 크다. 감사함을 느낄 시간도 없이 이전과 같이 치열하게 살아가거나, 인터넷이 느린 것에 불평, 불만을 할 수도 있다. 그냥 자연스럽게 말이다.
그러나 오늘은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한다. 종교적인 의미가 아닌 그냥 내가 살아가고 있음에 감사한다.
내일도 감사할지, 다음 달에도 감사할지는 모르겠지만 이 마음이 오래가기를 바란다.
당신이 살아가고 있는 삶에 감사하는 사람이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