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술자리 예찬론자입니다만

요즘 술자리를 피하는 이유

by 오늘내일

어느새 연말이다.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을 것 같은데 한 달 뒤면 복귀 1주년(?)이다. 거리에는 캐럴이 울리고, 사람들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상기되어있다. 행복해 보인다.

이럴 때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술이다. 왁자지껄 하는 사람들과의 술자리도 좋고, 집에서 맥주 한 캔과 함께 영화 보는 자리도 좋다. 술과 함께면 괜히 기분이 좋다.


나는 개인적으로 술자리를 좋아한다. 좋아한다보다 많이 좋아한다가 맞는 것 같다. 술을 좋아한다고 말하기에는 아쉽다. 맥주는 좋아하지만, 다른 술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소주 한 잔이 꿀처럼 달콤할 때가 있긴 하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냥 쓰다. 쓰기 때문에 마신다고는 하지만, 그냥 소주를 마시기 때문에 마신다가 맞는 말이다.



지금부터 어릴 적 부끄러운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정말 철딱서니 없다가 맞을 정도로 부끄러운 이야기이다. 미리 양해를 바란다.

내가 술에 입문(?) 한 것은 수능이 끝나고이다. (술은 20살 성인부터 합법이다.) 고백하자면 그 전에도 술에 입을 데기는 했다. 그래도 입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수능 다음 날이었다. 친한 친구 4명이서 수능 결과에 대한 회의감을 안주 삼아 맥주 500cc 한 캔을 마셨다. 그리고 나는 술에 취해버렸다. 아마도 500cc를 다 마시지도 않았던 것 같다. 요즘 말로는 완벽한 알쓰(알코올 쓰레기)였다.


그런데 남자 자존심이라는 것이 있다. 진짜 쓸데없는 행위인데 그럴 때가 있다. 보통 술, 게임, 운동에 특화되어 있는 것 같다. 취한 날을 계기로 술을 못 마신다고 놀림당하기는 싫었다. 그렇다고 술을 주야장천 마시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 당시 살을 빼는 기간이었다. 3달 동안 20kg을 감량하기 위해선 술은 독약이었다. 다행히 살을 빼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술을 접하게 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의 기억이라고는 아침에 학교를 가고, 수업을 마친 후 오후 5시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새벽 2시에 일을 마친 후 첫 차가 운행할 때까지 술을 마셨다. 그렇게 1년을 보냈다. 취하기도 하고, 숙취로 인해 다음 날 시험을 못 가기도 했다. 기억하기 싫은 추억도 있고, 기억하고 싶은 추억도 많았다.

아르바이트로 번 돈은 대부분 술값으로 전환되었다. 자연스레 주량은 엄청 늘었다. 주위에서도 술 잘 마시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술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 모이면 종종 보다 자주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술을 얼마나 마시냐면...


나도 이야기하자면 두 명이서 소주 16병까지 마셔봤다. 맥주는 두 명이서 20,000cc를 마셔보기도 했다. 당연히 다음날은 ‘내가 저렇게 다시 마시면 사람이 아니다.’라고 생각하며 사경을 헤맸다.

그러나 그때도 나는 술이 좋아서 마시는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남의 연애, 연예인 가십거리 등 다음 날이면 아무 의미 없을 이야기를 하면서 술 한 잔을 기울이는 그 시간이 그저 좋았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사회생활을 시작한 형들로부터 직장 상사에게 절대 술 잘 마신다고 하지 말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말을 충실하게 실행했다. 입사 첫날 상사가 주량을 물어볼 때 당당하게 “소주 1병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때 선배들의 표정은 실망이 가득했다.

첫 회식 때 한 병쯤 먹었을 때쯤 취한 척 연기를 시작했다. 씨알도 안 먹혔다. 내 몸은 이미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주는 술은 다 받아먹었다. 얼마나 마셨는지도 모르겠다. 취하지는 않았다. 실수하는 순간 큰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수하지 않도록 노력했고, 어느 때보다 집중(?)했다. 선배들을 하나씩 택시를 태워 집으로 보내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사회 초년생이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지만, 첫 회식이 직장 생활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고 생각한다. 술을 잘 마시느냐, 안 마시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실수하는 순간 고행길이 될 수 있음을 항상 인지해야 한다. 그런데 잘 마신다는 소문과 더불어 술자리 매너가 좋다는 소문이 나면 예상지도 못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성격상 직장 상사가 술 마시자 하면 집안에 경조사가 있지 않는 이상 웬만하면 참석했다. 여자 친구와의 약속도 취소한 날도 많았다. 자는 시간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상사가 마시자고 할 때까지 마셨다. 그리고 그들을 집에 데려다주고서야 하루를 마감했다. 집에서 2시간 정도 자고 제정신이 아닌 채로 출근하는 날이 늘어갔다.


직장 생활 초창기에는 5일 중 5일이 회식을 포함한 술자리였다. 다행인 점은 나는 회식을 좋아했다. 술도 좋았고, 내 돈으로 쉽게 먹기 힘든 비싼 음식을 먹는 것은 더 좋았다. 보통 메뉴의 시작은 소고기였다. 그래서인지 직장인 초년생이 싫어하며 꼰대 문화라고도 하는 ‘으쌰 으쌰’ 문화도 좋았다. 회식이 없으면, 선배, 후배, 동기,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나중에는 야근이 많아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평일 술자리가 많이 줄기는 했다. 반대로 사모임을 많이 했던 편이라 주말 술자리로 대부분 대체했다.



퇴사 후 세계 일주를 하면서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숙취의 농도가 예전(?) 같지 않았다. 그것보다는 이동을 포함해 여행을 즐기려면 술에 취하지 않는 편이 좀 더 낫다고 생각했다. 최대한 양을 자제했다. 그러나 횟수는 자제하지 않았다. 하루에 한 번은 그 나라의 맥주를 마셔야 했다. 30개국을 여행하며 적어도 200여 종류의 맥주를 마신 것 같다. 몰타에서 가방을 분실하기 전까지 각 나라 맥주 뚜껑을 모으기도 했다. 나름대로 여행에 대한 추억을 남기는 방식이었다.

술도 좋았지만 역시나 술자리는 최고였다.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란 점이 달랐지만, 좋음은 더 좋음으로 바뀌었다. 펍, 식당, 집, 거리, 사막 어디든 술 한 병과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으면 행복이라 말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술자리는 전 세계 어디서든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좋아하는 술자리도 최대한 참석하지 않으려 한다. 술자리는 참석하더라도 술은 거의 마시지 않는다. 마셔봤자 맥주 2잔, 소주 몇 잔 정도이다. 술자리가 좋은 것은 언제나 변함이 없다. 하지만 술을 안 마시며 술자리를 즐겨본 적은 거의 없어서 즐거움의 정도가 조금은 낮아진 것 같기는 하다.

주량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직장 생활 때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4대 신을 종종 찾아서 빌었는데, 얼마 전에 소주 2병 조금 안되게 마시고는 오랜만에 4대 신을 찾았다.

다시는 이렇게 마시지 않겠습니다. 제발 두통 좀 없애주세요.

가끔 술을 참는 내가 스스로 대견하다. 담배나 초콜릿을 끊는 고통이 이러할까?

술을 안 마시는 이유는 간단하다. 술 마신 이후에 내가 하는 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보통 자정부터 새벽까지 글을 쓰는데 술은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누군가는 술 마시고 글을 쓰면 더 잘 써진다고도 이야기한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술 마시고 집에 와서 자주 글을 썼다. 새벽에 쓰는 글이 낮에 쓰는 것보다 조금 더 감성적인 느낌이 드는데, 술을 마시고 새벽에 쓰면 감성의 끝에 다다른 느낌이다. 문장의 마침표를 찍은 글을 읽고 나서 잠자리에 누우면 스스로 ‘아, 글 정말 잘 썼는데’라고 자화자찬을 하기도 했다.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한 답이 술인가라고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음 날 전날의 글을 읽어보고 난 후의 내 행동은 단순했다. 마우스 오른쪽 커서로 파일을 클릭 후 ‘삭제’ 버튼을 누르는 것이다. '이런 쓰레기 같은 글을 봤나!'라는 생각이다. 이런 행동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야, 원고 마감기간이 촉박한 글이 아니면 술 마시고 나서 글을 쓰지 않는다.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잠을 더 자는 것이 나았다. 그래서 술을 잘 마시지 않는다. 결과에 대한 행위를 탓하기 전에 원인을 원천 봉쇄해버리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이 프리랜서로서의 삶이다. 다 그렇지는 않지만 프리랜서도 인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능력만 있으면 내게 인맥이 모이지만, 내게 아직 그런 능력은 없다. 프리랜서 지인들에게 여러 이야기를 듣거나, 새로운 인맥을 만들려면 자연스레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그렇다고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글 쓰는데 방해가 되는 양일 때가 잦다.

그들과의 술자리는 대부분 기분 좋다. 글과 강연에 대한 트렌드를 들으며, 기회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접하기도 한다. 또한 저런 실수는 하면 안 되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스스로 반성하기도 한다. 가끔 기분이 좋아지면 ‘오늘은 달려볼까?’하고 잠시 유혹에 빠진다. 그러나 곧 이성 세포가 정신을 차리게 한다.

뭐, 달려도 상관은 없다. 그다음 날이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냥 하루를 쉰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아직까지 거기까지는 내 마음이 허락지 않는 것 같다. 프리랜서는 자신이 하는 만큼 돈을 번다고 생각한다. 숙취로 인해 하루를 버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런데 이성 세포가 다잡는 가장 큰 이유는 술로 달려서 얻는 인맥이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면, 나는 이미 저 위까지 올라갔어야 했다.

술은 적당히 기분 좋게 마시는 것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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