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 평생직장은 없다

퇴사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by 오늘내일

2011년 12월 30일이었다.

외근을 마치고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였다. 그런데 그날따라 사무실에 들어가지 않고 주차장에서 배회하는 사람이 많았다. 대부분 각 팀의 대리, 과장들이었다. 동행했던 선배에게 왜 오늘따라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거냐고 물으니 1시간 뒤에 알게 될 거라고 답했다. 무슨 말인지 감이 잡히지 않은 채 사무실 문을 열었는데 평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매우 엄중하면서도 날카로웠다. 무거운 공기에 베일 것 같았다.

지점장에게 복귀 인사를 하고 조용히 앉아 업무를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무실에 있는 그 누구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얼마 후 오후 6시를 가리킴과 동시에 저 멀리서 한숨 섞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그 한숨을 신호탄으로 우리 팀을 포함한 대부분이 모든 업무를 멈췄다. 그리고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공지를 확인했다.


‘xxx 사업부장 -> ooo 관리부장’


공지에는 부서 이동 및 진급 명단이 나와 있었다. 명단의 제일 위에는 한숨을 내쉬었던 사업부장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다. 사업부장 주위에는 각 팀 부장들이 모여 숙연한 분위기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장례식장 같았다.

30분 후 사업부장은 퇴근하면서 우리 팀에 들렀다. 지점장부터 아래로 인사를 나눴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되었다. 그는 미묘한 눈빛으로 나를 보며 말을 건넸다.


“김성환 사원이었지? 지난주에 입사했다고 내게 와서 인사했을 때 눈이 참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있어. 그 눈 오랫동안 가지고 가기를 바라네.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보도록 하지.”


그는 악수와 격려의 말을 남기고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갔다. 그 말을 끝으로 나와 그는 회사에서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가 맡게 될 부서는 소위 떠나라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좌천’이라 하기에는 위로 올라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정년이 아니었던 그를 회사에서 '강제'로 퇴사시킬 수는 없었다. 25년 동안 회사 월급을 받던 사람을 떠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주차장에서 대기 중이던 사람들은 사업부장의 ‘퇴사’를 대략적으로 예상했었다. 분위기가 좋지 않을 것이므로 최대한 늦게 들어가려 한 것이었다. 1년 쯤 지난 후 나는 거래처 체육 대회에서 맥주 박스를 내리고 있는 그를 보았다. 그는 퇴사 후 슈퍼마켓 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 나눈 인사 이후로 아직까지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한 회사에서 25년 동안 일한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다. ‘평생직장’이라 불리는 정년으로 화려하게 마무리하지는 못했으나, 대단을 넘어 엄청나다는 것을 직장 생활 3년 차쯤에 알게 되었다. 시대가 다르긴 하겠지만, 그와 내가 겪었던 직장생활의 어려움은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90년대가 ‘워라벨’이라고 불리는 삶과 직장의 균형을 맞추는 시대는 아니었으므로 어쩌면 더 힘들었을 수도 있다. 게다가 IMF를 견뎌낸 사람이기도 하다.


한 곳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내 동기 혹은 친구들은 어느새 입사한 지 7~8년이 되었다. 빠른 친구는 올해 과장에 진급했다. 그러나 7년 동안 8번의 회사를 옮기거나, 장사나 사업을 하거나, 나와 같이 프리랜서로서 일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직과 퇴사의 이유는 다양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회사에서 25년 동안 다닐 수 없다고 판단되었기에 나온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 모든 이유를 이겨내고 한 직장에서 젊음을 보낸 것이다.

그가 아니더라도 그와 같은 사람들을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다. 멀리 보지 않더라도 우리네 부모님이 그러하다. 내 아버지는 첫 직장은 아니지만 한 곳에서 25년 넘게 일하고 계신다. 몇 년 뒤면 일흔이 되신다. 회사 이력서에 존경하는 사람으로 세종대왕을 적었던 적이 많았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면서 그 자리에는 아버지가 들어가야 했음을 알게 되었다.


내 친구의 아버지들 또한 대부분 한 직장에서 정년을 넘기셨다. 공무원이냐 회사원이냐의 차이일 뿐 한 곳에서 젊음을 보내셨다. 그래서 우리 나이 때 결혼을 조금 앞당기려는 이유 중 하나가 부모님의 정년 때문이기도 하다. 정년이 끝나면 대부분 머물던 직장과는 연을 끊게 된다. 자연스레 알던 사람들도 이전보다는 멀어진다. 당연히 결혼식에 화환과 축의금이 줄어든다. 내 주위뿐만 아니라 나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


한 개라도 더 많은 화환을 받으려면


이전부터 퇴사는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사용되었지만, 조금은 비밀스러운 말이었다. IMF 시기에는 어떤 굴욕을 겪더라도 끈을 잡고 놓지 않는 것이 필요했다. 그 당시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자신의 꿈을 위해 퇴사한다고 하면 비아냥거리는 소리는 기본으로 들어야 했다.


그런데 최근 사회 트렌드에서는 퇴사를 어떻게 잘할 수 있는가에 대한 도서와 강의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퇴사’는 수면 위로 드러났다. 이제는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주는 곳이라면 어렵지 않게 이직을 선택할 수 있다. 상사가 자신에게 굴욕을 줬다면 다음날부터 아무 말도 없이 출근하지 않기도 한다. 내 동기는 출근하지 않는 신입의 집에 가서 신입의 아버지에게 ‘퇴사 통보’를 직접 듣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내가 생각하는 최악의 퇴사라고 생각하는 경우였다. 이와 같은 경우들이 아니더라도 퇴사는 이제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보통 홀수 연차에 퇴사와 관련된 말이 자주 나온다.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신입 적응 기간이 끝난 1년과 대리 진급이 좌우되는 3, 5년 차이다. 나도 3년 차에 퇴사라는 말을 처음으로 주위에 꺼내었다.


내 후배들로부터는 1년 차부터 “선배님, 저 더 이상 못 다니겠습니다.”는 말을 듣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후배들에게 “조금만 버텨라. 분명 해결책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퇴사를 막았다. 후배들이 나가면 내가 힘들어질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부산에서 일할 거라면 다니던 회사가 그리 나쁘지 않은 여러 조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만류의 첫 번째 이유였다. 내가 아는 한 모든 직장은 다 힘들다. 다른 곳에 가더라도 별 차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퇴사라는 것을 생각할 때가 되니 내가 했던 말이 그들에게 맞는 말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사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퇴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100가지라면 퇴사해야 할 이유는 101가지가 되었다. 중요 여부 판단을 제외하고 퇴사해야 할 1가지 이유가 해결되지 않는데, 직장을 계속 다닐 이유는 그리 크지 않았다.

나는 퇴사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았지만, 중요성에서 크게 차이 난 경우였다.


결국 내게 퇴사를 이야기했던 선, 후배들 중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퇴사했다. 내 동기가 100명이었는데, 그중 지금까지 남은 친구들은 10여 명으로 알고 있다. 남은 사람은 자신이 머무는 직무의 요직에 있거나 앞두고 있다. 나도 퇴사하지 않았다면 그들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을 것이다.


참고로 퇴사를 이야기했던 후배 중 남은 1명은 내가 좋아하는 동생이다. 그는 나보다 1년 늦게 들어온 친구인데, 나보다 먼저 퇴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어느 순간, 그의 마음이 진심임을 알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퇴사 만류를 시작했다.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퇴사를 만류한 사람이었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있었다. 내 눈으로 봤을 때 그가 퇴사해야 할 이유가 사라질 수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확신은 얼마 후 확정이 되었다. 직장생활 연차는 밥 먹은 횟수로 생긴 것은 아니었다.
퇴사해야 할 다른 이유가 남아있긴 했지만 가장 큰 이유가 사라지니 숨 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를 계속 다닐 이유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만났을 때 그만둔다는 말은 없었다. 결혼은 했고, 집도 샀다. 아마, 아이를 가지면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두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아는 한 대부분의 부모님이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오랫동안 다닌 이유는 가족과 연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혹시나 퇴사를 안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면 답은 그리 어렵지 않다. 직장생활 1년 차에 차를 사고, 5년 이내에 집을 사면 된다. 그리고 7년 이내에 결혼을 하고, 10년 이내에 아이를 가지면 된다. 이 모든 것에는 안정적으로 충당되는 돈이 필요하다. 월급으로 처리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은 대출을 받을 것이다. 대출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된 직장이다.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 또한 안정된 직장이다.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어느 순간 대출금액이 사회에서 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때가 있음을 알게 된다.

서글프지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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