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 백수라서 죄송합니다

부모님에게 죄송한 몇 가지

by 오늘내일

2016년 6월 18일이었다. 부모님에게 퇴사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집 앞에 있는 한식당인 <청담>에서 식사를 했다.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날 때쯤 부모님에게 세 가지를 말씀드렸다.


"퇴사하겠다. 세계 일주 떠나겠다.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


세계 일주는 별 시답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는 듯 신경 쓰지 않으셨다. 세계 일주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분들이셨다. 헤어졌다는 말에는 화까지 내시며 이유를 물어보셨다. 부모님은 식사 자리에 그 친구를 정식으로 소개해 주신다고 생각하셨다. 참고로 <청담>은 우리 동네에서 상견례가 가장 많이 이뤄지는 식당이다. 마지막으로 퇴사 이야기에는 일언의 반대도 없으셨다. 전적으로 내 의견을 존중해주셨다. 점점 변해가는 내 표정에서 언제든 그만둘 것이라 예상하셨다.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하든 믿는다고 말씀하셨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왔을 때 내가 무사귀환한 것으로 부모님은 만족하셨다. 그러나 시간은 흘렀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내가 무엇을 선택할까에 부모님은 신경을 곤두세우셨다. 부모님은 내심 한 달 정도 쉬다가 회사에 들어가기를 바라셨다. 어느 부모든 일반적으로 하는 생각 일 것이다.

직장을 구하지 않고 글을 쓴다고 할 때는 특별한 반대 없이 그저 지켜보셨다. 가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은 어때?”라고 말씀하시기는 했다. 부모님의 오랜 소원이었던 점을 제외하더라도 공무원은 안정적인 면에서 어떤 직업보다 매력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삶의 가치관이 바뀐 나에게 더 이상 공무원은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1년 혹은 몇 년이 될지 모르는 시간을 투자할 자신도 없었다. 차라리 그냥 회사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부모님 의견을 경청하고 존중하지만,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사는 삶을 살 나이는 지나버렸다. 나는 그저 내가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중이다. 그럼에도 내가 걸어가는 길에 부모님과 관련하여 걸리는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직장을 그만두고 가장 신경 쓰였던 것 중 하나는 생신, 결혼기념일, 어버이 날 등 부모님의 기념일이었다. 여자 친구 이벤트처럼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하지는 않았다. 취업 전에는 스카프, 와이셔츠 등 10만 원 미만으로 괜찮은 선물을 사드리려고 했다. 돈이 없으면 음식 해드리는 것으로 대신하려 했다. 부모님은 그것으로도 만족하셨다.

그러나 돈을 벌면서 선물이 달라졌다. 고민 끝에 내린 답변은 돈이었다. 그저 자본주의 시대에 맞는 선물이었다. 부모님도 좋아하셨다. 기념일마다 적으면 30만 원, 많으면 50만 원씩 두 분에게 드렸다. 또한, 생신에는 친척들을 불러 외식을 했다. 결제는 당연히 일시불이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소소한 이유 중 큰 이유에 속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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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한국에 들어와서 맞이한 어머니의 첫 생신부터 내 삶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일단 용돈을 드리지 못했다. 드리던 만큼 드릴 수는 있었다. 그런데 드리지 못했다. 왜인지 모르겠다는 말은 하지 못할 것 같다. 그저 돈을 아꼈다. 친척을 불러 식사는 했다. 내가 한국에 돌아온 기념으로 같이 본 것도 있었지만, 돌아왔기에 하던 것을 안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주문하면서 메뉴 안의 음식보다 1인당 금액이 눈에 들어왔다. 적당한 선에서 스스로 타협했다. 그러나 이전에 주문한 것보다는 한 단계 아래 메뉴였다. 식사를 마치고 하던 대로 일시불로 계산했다. 그러나 카드를 내밀던 미세한 떨림이 있었다. 나만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어쩌면 카드를 받으시던 직원은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 부모님에게 느꼈던 죄송함은 무어라 표현하지 못할 정도였다. 그저 죄송했다. 누군가는 ‘그게 뭐가 잘못이지?’할지 모르겠으나, 정말 죄송했다. 돈이 자식이 부모의 마음을 채워드리는 좋은 방법은 아니겠지만, 그저 죄송할 따름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정해진 시간에 나가는 것이다. 최근 종영한 <나의 아저씨> 전에 제대로 본 드라마가 <파리의 연인> 일 정도로 드라마를 챙겨보는 편은 아니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장면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도 알만한 장면이라 생각한다.


“여보, 나 다녀올게.”

“여보, 이제 일부로 나가지 않아도 돼요. 더 좋은 자리 구할 수 있을 거예요. 힘내요.”

“어떻게 알았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한 가정을 책임지는 중년 남성이 평소처럼 정장을 입고, 구두를 신고, 서류가방을 들고나가는 모습이다. 누군가에게는 그네들의 아버지를 보는 듯해서 괜히 찡하다는 감정마저 들기도 한다. 그런데 예전의 나는 이런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만뒀다고 말하면 되지 않나?’, ‘집에서 쉬면서 자기 할 일 하면 되지 않을까? 직장에 안 다닐 수도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의 내가 이와 비슷한 행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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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부모님과 함께 산다. 아버지는 타지방에서 근무하다 보니 어머니와 같이 지낸다. 월, 수요일은 봉사활동, 목요일은 수업으로 인해 아침마다 정해진 시간에 나온다. 나머지 요일은 일이 없으면 특별히 집에서 나올 일은 없다.

그러나 눈을 뜨고 밥을 먹고서는 항상 옷을 차려입고 집을 나선다. 약속이 없는 한 가는 곳이라고는 집 앞 카페가 전부이다. 자주 보는 직원으로부터 ‘오늘도 오셨네요.’란 눈인사와 함께 카페에 앉아 일 하는 것이 나의 일상이다. 카페가 집보다 일하기 좋은 점은 와이파이가 빠르다는 것뿐이다. 사람이 적은 것이 장점(?)이었지만, 이제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시끄럽다 느낄 정도이다. 집에서는 무제한 무료 음료와 다과를 즐길 수 있다. 반면 카페는 3,500원부터 시작하는 음료 값을 지급해야 머무는 시간에 대한 권리를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페를 찾는 이유는 마음이 편해서이다. 백수 초창기에는 낮에는 집에서 일했다. 어머니는 내가 부족한 것은 없는지 항상 신경 쓰셨다. 내가 글 쓰는데 방해될까 봐 TV 소리도 크게 높이지 않으셨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뭔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내가 가장 아끼는 사람이자 편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그 불편함은 나에 대한 불편함이었다.

나 때문에 부모님이 편히 쉬지 못한다는 것이 싫었다. 안 그래도 백수라 믿고 있는 부모님에게 백수라는 인식을 대놓고 심어드리고 싶지 않았다. 책이라는 것이 원고가 내 손을 떠나도 출간되는데 몇 개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렇다고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에 초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그냥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동네 마실 나가듯 편한 복장으로 나갔다. 그러다가 어딘가 약속 있는 것처럼 옷을 차려입고 나가기 시작했다. 아버지들처럼 양복에 구두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대한 깔끔하게 차려입고 집을 나섰다. 약속이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약속이 없으면 목적지는 집 앞 카페였다. 그리고 주위가 어두워지면 집으로 들어갔고, 밤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제야 드라마에서 보았던 중년 남자의 모습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내가 갈 곳은 만화방 아니면 공원 벤치일 뿐인데. 그렇다고 가족을 실망시킬 수는 없다.’를.

어쩌면 내 뒷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모습이 아내와 다를 바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오늘 또 나갔다. 아마 집 앞 카페에서 글 쓰겠지.”라고 하실 수도 있다. 그러나 아들을 바라보는 그 먹먹함을 내가 알 수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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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예전보다 부모님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것에는 나도, 부모님도 감사하고 있다. 많다는 개념이 절대적으로 많아진 것은 아니다. 그래도 예전과 같이 잠만 자는 ‘하숙생’이라는 말은 듣지 않는다. 어머니와 집 앞 공원 데이트도 하고, 부모님과 찜질방, 영화관, 야구장도 간다. 직장 생활할 동안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뭐가 그렇게 바빴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돈을 예전 수준까지 만이라도 벌면 돈으로 선물을 다시 대신할지 모른다. 바쁘다는 핑계로 영화 한 편 못 볼지 모른다. 그래도 얼른 돈을 벌어서 용돈으로 선물을 대신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부모님 마음도 같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편해지는 길이라 생각하실 것이다.

요즘에는 어머니에게 데이트하자면 안 해주신다. 귀찮으시단다. 선물도 돈으로 줬으면 하는 눈치시다. 얼른 돈 벌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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