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 부산과 서울의 현실 거리

아프리카보다 더 먼 것 같은 부산과 서울

by 오늘내일

서울에서 지내는 내 또래 지인들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참 치열하게 산다는 느낌을 매번 받는다. 아침에 눈 떠서 출근하고, 퇴근하고, 주말에 쉬고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과 특별히 다른 점은 없다. 나라고, 부산에 사는 다른 사람이라고 치열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그들은 뭔가 좀 더 치열하게 사는 것 같다. 그렇다고 그들이 돈과 시간에서 여유가 없는 삶을 사는 것만도 아니다. 서울에서 10억대 집을 두 채나 가지고 있는 친구도 있고, 1년 중 절반만 일하고 절반은 여행 다니는 친구도 있다.

그럼에도 여유가 없다는 느낌을 받는 건 어쩌면 내가 여유가 없어서 일수도 있다. 그런데 친구 말로는 그것이 ‘서울스러움’이라고 했다. 분명 남들보다 잘 살아가고 있는 것 같은데 뭔가 계속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곳, 비가 와야지 하늘을 바라보는 곳, 경쟁의 최상위층만이 살아남는 곳이 서울이라고 했다.

부산과 서울의 거리가 차로 5시간, ktx로 2시간 30분의 물리적 거리가 아닌 수 천 km에 달하는 심리적 거리가 생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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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부산에서 계속 살고 있다. 군대와 세계 일주를 제외하고는 한 달 이상 부산을 벗어난 적은 없다. 내가 서울을 처음 접한 것은 26살 취업 전선에 빠져들었을 때이다. 무슨 놈의 회사들이 전부 서울에 있는지 면접만 본다 하면 대부분 서울이었다. 서울 면적은 부산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좁은 땅덩어리에 1,000만 인구, 1,000만에 육박하는 차량, 그에 걸맞은 아파트와 빌딩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면접 비용을 받았지만, 계속 올라오는 것도 일이었다. 그냥 서울에 짐을 풀어버렸다.


친구 집에 머물면서 면접을 보고 서울에서의 삶을 맞이했다. 사실, 별 다를 바는 없었다. ‘유명한’ 서울이었지만, 조금은 덜 유명한 부산에서 지낸 나에게 그다지 특별할 것은 없었다. 부산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아침, 점심, 저녁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어디에나 사람이 많다는 것과 저녁에 빌딩에서 비치는 빛의 범위가 조금 더 넓고 오래간다는 것이었다. 지금에서야 그 불빛을 이해하지만, 당시에는 그저 불빛이었다.


그렇게 20여 일간의 서울 살이를 마치고 입사를 위해 다시 부산으로 내려왔다. 최종 합격한 회사 중 서울에 있는 회사도 있었다. 연봉도 내가 다녔던 회사보다 좋았고 네임벨류도 밀리지 않았다. 그런데 계산을 해보았다.


(월세 50만 원 *12개월) + (부산보다 1.2~1.5배의 서울 물가)


편하게 다니면서 돈을 모을 수 있는 부산 직장을 이기지 못했다. 아마도 이때 서울을 선택했다면, 나는 지금도 서울에 살고 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퇴사했을 수도 있고, 부산으로 내려왔을 수도 있지만 서울에 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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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하면서 서울에서 회사를 다녔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한 적이 종종 있었다. 부산에서의 직장은 정말 편하게 다니는 느낌은 있었지만, 어느 선 위로 올라갈 수 없을 것이라는 제약을 많이 받았다. 20, 30대 남자라면(남자가 아니더라도) 성공욕을 느낄 때가 많은데 그런 삶에 취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아니라고는 하지 못하지만, 20대 후반에는 절정에 달했다.


나보다 연봉을 좀 더 받는 친구들이라고 나보다 돈을 더 많이 모으지는 않았어도,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기회란 직장, 인맥, 투자에 적용되는 말이었다. 연봉이 적은 친구도 어느새 아파트 한 채 씩을 자기 손에 쥐는 것을 보았으며, 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사는 세상이 절대적으로 좁다하기 보다는 그들의 세상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아 보였다. 그렇다고 ‘서울로 가자.’하고 모든 것을 놓을 자신은 없었다. 안정이란 맛에 취해 나는 이미 도전을 두려워하게 된 평범한 직장인이 되어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오며 거주지를 정해야 했다. 마음은 부산이었지만, 이참에 서울에 정착할까란 마음도 있었다. 글을 쓰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는 제대로 잡지 못한 상태였다. 하다가 안 되면 직장을 구한다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5월까지 어느 정도의 성과가 보이지 않으면 직장을 구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서울이 아닌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 것은 몸과 마음에 안정이 필요했다. 새로운 선택에 도전하는 입장이었지만, 거주지를 새롭게 정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게다가 교통사고를 당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보니 치료를 꾸준히 받는 것이 중요했다. 한 바탕 휘몰아치는 태풍을 보내고 난 뒤의 내 선택은 결국 다시 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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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요즘 들어 서울에서의 삶이 다시 꿈틀대고 있는 것 같다. 서울이 얼마나 치열하고, 빡빡하고, 살기 힘든 곳인지 충분히 알 나이가 되었음에도 꿈틀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먼저 부산에서의 문화적인 삶이다. 나는 정말 부산이 좋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가장 좋다. 수많은 도시를 다녀봤지만, 살기에는 부산만큼 좋은 도시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부산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 그런데 부산의 문화적인 한계가 정말 또렷이 보이기도 한다. 한계는 기회와 동반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기회가 안개 뒤에 넘쳐난다면, 한계는 쨍쨍한 햇살처럼 뜨겁게 내리쬐는 것 같았다. 부산을 제2의 도시라고 하지만, 문화는 ‘제2의’라고 붙이기에는 민망한 정도인 것 같다. 이제 발들인 초짜가 무엇을 알겠냐 하겠지만, 초짜니까 편견 없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현직에 오랫동안 계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비슷하다. 그분들은 문화 절벽이라고도 말씀하신다.


부산은 영화제 및 연극제 등 다양한 문화 행사로 유명한 곳이다. 록 페스티벌, 가을 독서 문화 축제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있다. 그에 비하면 문화 인식은 부족한 느낌이다. 문화에 지불하는 비용이 절대적이든 상대적이든 높지 않은 것도 연장선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나조차도 마찬 가지다. 어떠한 문화적인 모임 비용이 2만 원이 넘으면 한 번 더 모임 커리큘럼을 확인한다. 얼마 전에 내가 했던 퇴사 강연도 마찬가지였다. 돈에 특별히 구애받지 않는 직장인이 주 대상이었지만, 여러 조건 상 참가비가 만 오천 원 보다는 만 원이 낫겠다는 판단이었다. 여러 조건에 가장 큰 조건은 ‘우리 보러 만 오천 원이나 주고 오겠어?’였다.

서울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적고 싶지만 그렇지 않다고 느끼고 있다. 엄청난 경쟁으로 가격은 인하되지만, 어느 정도 선 밑으로는 담합이라도 된 듯 내려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참가자들은 그만큼의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다고 대부분이 비용만큼의 질을 제공하는 것도 아니다. 한 번은 1회 5만 원의 비용을 지급한 2시간 특강을 듣고 나서 내 표정은 진짜 엉망이었다. 이 따위로 하면서 5만 원을 받는 것도 이해 안 되었지만, 일주일 홍보하고 30명이나 온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였다. 뭐, 나도 그 중 한 명 이었으니. 가장 놀라운 것은 인터넷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강의를 듣고 나서 정말 좋았다고 계속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 하면 조심스럽지만 분명 친한 지인일 것이다.


다음으로는 서울에 살고 있는 지인들의 말이다. 타인이 내 삶을 살아주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알 나이가 되었다. 그런데 첫 번째 이유의 연장선상으로 서울에서 살고 있는 지인들이 서울로 와야 함을 계속해서 이야기한다. 내가 직장인일 때는 ‘여기는 지옥이다. 정말 힘들다.’만을 외치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다양한 기회를 이야기한다. 직장인에게 기회는 부장, 이사라는 정해놓은 답이 있다면, 지금 내가 선택한 길은 좀 더 넓지만 정해지지 않은 답이 있는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더 넓은 기회를 눈으로 보고 잡으라는 것이다. 처음에야 감사하다는 인사로 넘기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서울로 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일은 없을 수도 있다. 이 글이 책으로 나오는 순간까지도 서울에 안 갈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한다. 확실한 것이 없으면 그저 돈과 시간만 낭비할 뿐이다. 그래서 더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안 그래도 돈과 시간이 빠듯한데 대놓고 뿌려대며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아직은 ‘서울스러움’보다 ‘부산스러움’이 더 좋은 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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