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 남편과 adhd 아내의 대담
(나) 처음 아내의 ADHD를 의심하기 시작한 때가 언제였나요?
- (남편) 결혼하고 처음으로 같이 살기 시작한 후 1~2년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말하자면 계속 연애나 주말부부를 하다가 계속 같이 붙어있기 시작하면서부터 보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나) 결정적인 사건이나 시점이 있나요?
- (남편) 딱히 어떤 결정적인 시점이라고 할 수는 없겠네요. 늘 일상생활에서 남들이 하기 힘든 실수를 너무나 자연스럽게 했죠. 자동차 열쇠를 엘리베이터 문 사이에 떨어뜨린다든가, 자동차 창문 틈새로 신용카드가 떨어진다든가. 뭘 흘리고 깨는 것도 많고 손에 항상 구멍이 달려있는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아내는 Hyper active하진 않은데 너무나 잘 잊어버리고, Organize가 안되고, 자신이 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잘 기억하지 못하죠. 일이 주기적으로 빵꾸가 나고, 내가 두세번씩 체크를 해야 하는 일이 늘 반복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아. 물론 adhd와 별개로 장점이 훨씬 더 많은 아내이긴 합니다. 좋은 엄마고 좋은 아내에요 (이쯤에서 강요된 대답)
(나) 듣다보니까 그런 일은 남들도 다 있는것 같아요. 누구나 그렇지 않나요? 이런걸 과연 adhd라고 할 수있나요?
- (남편)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런 일들이 너무 빈번히 일어나면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는 일도 생기고요. Adhd로 인해서 엄청난 일들이 어마어마하게 벌어진다기보다는, 일상 생활에서 작은 균열이 계속해서 조금씩 일어난다고 봐야겠죠. 물론 큰 균열이 나타나는 사람도 많기는 합니다.
(나) 작은 균열은 누구나 있지 않나요? 채널 하나를 켜고 사는 사람이나 채널 여러개를 켜고 사는 사람이나 성향의 차이 아닌가요?
- (남편) 어떤 균열이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은 균열이 반복되면 큰 균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병과 성향은 다릅니다. 그런 성향이 일정 수준을 넘어가면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그때부터는 이를 ‘증상’으로 봅니다. Adhd를 가진 사람의 배우자들에게 물어보면 치료 전 후의 삶의 만족도가 매우 다릅니다. 또한, 미국의 예이긴 하지만 자동차 사고를 일으키는 사람의 38프로가 adhd를 지닌 사람이라는 통계도 있습니다.
(나) 옛날에 우리 때는 adhd고 뭐고 다 그냥 그런줄 알고 살았는데, 요즘 너무 유난을 떨어서 ‘병’취급한다고 생각하진 않으시나요?
- (남편)의과학이 발달되기 전에는 병으로 인식하지 못했던 병도 많았습니다. 의과학이 발전하면서 더 나은 삶을 가능케하는 치료방법이 있다면 굳이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나) 그럼 다른 정신없는 사람들도 다 adhd인가요?
- (남편) 다 그렇진 않죠. 하지만 정신없는 사람들 중에서도 분명 adhd가 있겠죠. 그래서 정확한 evaluation이 중요합니다.
(나)‘정신없다’는것에 adhd말고도 다른 병의 가능성이 있나요?
- (남편) 그럼요. ‘주의력이 떨어진다’는 것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불안해도, 우울해도, 잠을 못자도 떨어질 수 있죠. 정신분열병이 있어도 떨어질 수 있어요. Adhd는 그 중에 한 이유죠.
(나)그 중에서 와이프가 adhd라고 확신하는 이유가 있나요?
- (남편) 저는 확신하지 않습니다. 다만 걱정이 되었고, 진단받을 것을 권유했을 뿐입니다. 가족이 진단을 내릴 수는 없거든요. 미국에서는 주에 따라 가족 진단이 불법인 곳도 있습니다.
(나) 자신이 돌팔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 (남편) 아직까지 아내 말고 저를 돌팔이라고 한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오로지 아내 뿐.
(나) 아내에게 adhd 치료를 권유한 것은 아내를 위해서인가요 자신을 위한 것인가요?
- (남편) 1차적으로는 아내를 위한 것이고, 2차적으로는 온 가족을 위해서죠. 아내의 adhd로 인해서 온 가족이 문제를 겪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정보를 놓치고 기억하지 못하고 공유하지 못하는 일도요.
(나) 일평생 치료를 받지 않고 adhd로 살아온 성인이 나이가 들어서 치료를 받는다는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지금까지도 나름 잘 살아왔는데 말이죠?
- (남편) 치료를 받고 안받고는 본인의 선택이죠. 하지만 남은 인생이 얼마 되지 않았다고 해서 증상을 가지고 살아도 괜찮다는 건 아니죠. 남은 인생동안 더 잘 살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말입니다. 지금 삶에 본인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건 본인의 판단이고 선택이죠. 그러나 과연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고, 다른 이들에게 의도치 않게 피해를 주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죠.
(나) Adhd는 병인가요?
(남편)병입니다.
(나) Adhd가 없다면 약을 먹었을 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나요?
- (남편) 도움을 받을 가능성은 매우 적고,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은 매우 높아집니다.
(나) 어떤 부작용요?
- (남편) 두통. 불안. 짜증. 식욕감퇴 등 다양하죠.
(나) 그러면 내가 adhd가 있는지 없는지 알기 위해서는 약을 먹어보는게 가장 확실하네요?
- (남편) 아닙니다. 병이 있는지 없는지는 약을 먹어보는게 아니라 숙련된 정신과 의사의 진단으로 결정됩니다. Adhd가 있는 사람도 약에 따라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나) 아내의 adhd로 인해서 장점은 없나요?
- (남편) 장점은 모르겠습니다. 아내에겐 많은 장점이 있지만 그게 adhd덕분이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연애할 때는 깜빡깜빡하고 다 놓치는 것도 귀엽긴 했습니다.
(나) 지금까지 본 환자들을 비교해 볼 때, 아내의 adhd는 증상의 정도가 어떠한가요?
- (남편) 중간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과잉행동이 없는 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어릴 적 이야기를 다룬 아내의 책 ‘안녕 나의 한옥집’을 보면 꽤 사고친 이야기가 많은데 그땐 과잉행동이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남편)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솥뚜껑에 앉았다던가, 의자 굴리다가 넘어진 일, 전기스위치 넣는 데에 집게 지른 일. 자전거 사고 등은 특히 그렇습니다.
(나) 아내분은 학창시절에는 꽤 얌전한 아이였다고 하던데요?
- (남편) 많은 경우에 나이가 들수록 과잉행동은 줄어듭니다.
(나) 그런데 아내는 글을 쓰고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혹시 adhd약 복용으로 인해서 그런 창의성이 줄어들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요? 주변에서는 모두 그런 걱정을 하던데요.
- (남편) 그런 보고는 지금까지 없습니다. 그런 환자도 본 적이 없고요.
(나) 그런 건 보고되기가 매우 힘든 부분 아닐까요? 예술성이나 창의성 같은 부분요. 만약에 adhd치료와 함께 아내의 창의성이 줄어든다면 책임지실 건가요?
- (남편) 그건 제가 책임질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권유만 했고 돕는 사람일 뿐 선택과 결정은 아내가 하는 것이니까요. 약 복용 후 경과가 어떤지는 주치의와 상의하면서 지켜봐야 하겠지요.
off the record
(나) 당신이 진단받아보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당신이 책임져야지!
(남편) 나는 권유만 했지! 의사를 만나는 것도 당신이고, 약을 먹는 것도 당신이잖아!
(나) 나는 당신의 진단을 믿은 거지!
(남편) 나는 진단한 적이 없대도!
(나) 아무튼 내가 만약 글을 못 쓰게 되면 책임져!
(남편) 하.. 이상한 사람일세. 하지만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런 말 하는 사람은 한번도 본 적이 없어. 오히려 집중력에 도움을 받아서 예술활동을 잘 할 수 있다고는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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