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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밤호수 Oct 06. 2022

어쩌면 내 인생은 에세이

진짜 내 이야기로 에세이 쓰기 두번째.


에세이라는 글이 참 좋다. 소설도 좋고 시도 좋고 평전도 좋고 다~ 좋지만, 또한 에세이라는 글이 좋다. 쓰는 것도 좋고 읽는 것도 좋다. 에세이는 참 좋은 글, 그러니까 글을 읽고 쓰는 자들에게 ‘축복’과도 같은 글이 아닐까 싶다.


우선 좋아하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을 수 있다는 것이 축복이다.  몹시도 궁금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와 생각에 몰래 들어갈 수 있으니까. 있는 그대로의 작가를 엿볼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여기에서 좋아하는 에세이를 꺼내 이야기해 보라고 하지는 말아주길. 아마 글 쓰던 건 내팽개치고 내내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에세이, 심지어 고전 가사문학부터 에세이라고 우기며 ‘상춘곡’부터 시작해 이야기판을 벌일지도 모르니. 강호가도를 말하던 고려시대 가사문학부터, 피천득 님의 ‘수필’ 최근 홀딱 빠져있던 김용준 님의 ‘근원수필’에 이어, 외국 작가로 가면 조지오웰의 에세이에 버지니아 울프의 글들, 다시 돌아와 지금 읽고 있는 황정은의 ‘일기’에 이르도록 밤이 새도록 작품 얘기만 하다 끝날지도 모른다. 하나하나의 글이 왜 좋은지 이야기를 하느라 입이 부르틀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그냥 그네들의 글을 ‘읽는 게 즐겁다’ 정도로만 해 두자. 내 입을 틀어막기 위해.


그 다음. 에세이를 쓰는 자에게도 축복이다. 글을 쓸 재료가 ‘나 자신’이니 얼마나 좋은가? 달리 자료조사를 하지 않아도, 내 안에 있는 재료를 맘껏 꺼내다가 글로 만들면 되니 이 얼마나 고마운 글인가. 소설을 쓰려면 자료조사만 해도 한참이 걸리고, 상상을 하는 것도, 구성을 짜는 것도, 보통 고된 일이 아니다. (물론 그래서 재미있다. 그러나 고단하다.) 하지만 에세이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쓸 수 있다. 모든 소재의 시작과 끝이 내 안에 있다. 도서관 하나를, 자료로 가득찬 컴퓨터 하나를 통째로 들고 다니는 셈이다. (메모를 안하면 자꾸 날아간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 메모 얘기는 나중에 해 보자) 블로그 이웃들을 봐도 ‘난 글 못 쓰겠어’라고 투덜대는 분들이 많지만 그들의 일상 포스팅은 이미 에세이에 가깝다. 그러니 이 얼마나 고마운 글인가. 그러니 에세이를 쓰는 축복을 누리자!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한다. 친구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다보면 ‘그랬구나’ ‘정말?’하고 맞장구를 잘 쳐주고 듣기를 잘 하는 친구라 할지라도 사실은 내면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한다. 나누고 싶고, 공감받고 싶어한다.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듣고 깊이 공감해 주기를 바란다.


글도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쓰고 싶어한다. 그것은 본능이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회갑때, 칠순 때, 자서전을 써서 주변 지인들에게 돌리기도 하고 대필 작가를 통해서 자서전을 펼쳐내기도 한다. 특별히 그 책이 자손 대대로 읽히는 명저가 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지라도, 내 이야기가 ‘텍스트’가 된다는 것 자체가 이미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모든 이야기는 기록하는 순간 의미가 생기고, 기록되는 순간 영원성을 지니기 때문이다. 기록되는 순간 그것은 ‘역사’가 된다.


책을 쓰고, 에세이 강사를 하고, 블로거로서 많은 이들과 소통하고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이 얼마나 글을 쓰고 싶어하는지,  ‘자기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하는지를 느꼈다. 굳이 ‘내 얘기를 꺼내고 싶은 건 아니에요. 하지만 글을 쓰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에게서도 느꼈다. 그들이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어하는지, 그런데 그걸 깨닫지 못하는지. 반면 ‘나는 그냥 내 얘기를 하고 싶어요. 딱히 글을 쓰고 싶은 건 아니에요.’라고 하는 자에게도 느꼈다. 그들이 얼마나 글을 쓰고 싶어하는지. 그런데 그걸 깨닫지 못하는지.


지난 여름 마포도서관에서 만난 한 여성은 내게 말했다. ‘나는 특별한 게 없어요. 글을 쓰는 사람은 인생이 온통 특별한 일들이던데, 나의 인생은 어렵기는 했지만 너무 평범했어요’ 라고. 그러나 우리는 안다. 그 누구의 인생도 평범하지 않다는 걸. 그토록 평범한 당신의 인생 속에 특별한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걸. 당신의 삶 자체가 이미 당신만이 가진 고유하고도‘유일한’ 컨텐츠라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지만, 굳이 ‘십분’만 투자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우리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확인할 것이다. 평범한 인생은 없다. 위대한 작가들 가운데 살펴보면 극적이지 않은 인생을 산 사람이 더 많다. 그들은 상상 속에서 소설을 쓰고, 자신의 인생에서 소소한 특별함과 의미를 찾아내 에세이를 쓴다. 에세이는 거창한 스토리가 아니라, 사소한 진실이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이미 하나의 에세이가 될 준비를 마치고 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도 뭘 가르치고 싶어서가 아니라(내가 무슨 자격이 있다고 가르치겠는가!),

대단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내가 무슨 엄청난 삶을 살았다고 대단한 이야기를 하겠는가!),

결국 내 안에 있는 걸 꺼내고 싶기 때문이다. 이야기하고 싶고, 공감받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에세이’라는 내 인생의 키워드 하나를 꺼낸다. 이 키워드로 에세이를 쓰면서, 남들과 나눌 수 있고 이왕이면 도움도 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다니(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이 얼마나 고마운 ‘에세이’라는 글인가! 내 인생도 어쩌면 ‘에세이’가 이끌어 온 하나의 에세이인지도 모르겠다. ‘에세이’에 대해 하고싶은 말이 이리 많다니, 앞으로도 계속 많을 것이니, '내 인생의 주제가 에세이'라는 말도 조금은 일리가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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