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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kjudan Sep 30. 2024

4. 첫 만남.. 소피아

4. 첫 만남.. 소피아

화성에서 열리는 파티에 초대받을 때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기분이었다. 우리 둘은 이제 그들 중 하나처럼 보였다. 금빛 잔에 담긴 고급 와인을 들고,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은 사람들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제로를 보며, 나는 문득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실감했다.

“주단, 이렇게 살 줄은 상상도 못 했지?”

제로가 웃으며 내게 속삭였다. 나는 그저 미소를 지었다. 과거의 삶은 너무도 먼 기억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더 이상 지구에서 황폐한 땅을 일구던 농부가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화성 상류층의 일원처럼 살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지구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우리가 놔두고 온 그곳은 여전히 무너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지금 이곳에서의 삶은 너무 달콤하고 화려했다. 화려한 파티장에서 유리잔들이 반짝이며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그 순간, 제로는 상류층 인사들과 어울려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멀찍이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반짝이는 샹들리에 아래, 제로는 점점 더 화성 상류층의 일원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런 파티에 익숙해지기도 했고 서로의 재능을 엿보다 이용하려는 비즈니스적 관계에 이골이 나고 있으려는 찰나였다.  그런데 그때, 파티의 중심부에서 한 여자가 다가왔다. 그녀는 화려한 금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고상한 미소를 띠며 우아하게 걸어왔다. 그녀의 금발 머리는 완벽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제로에게 다가가더니, 부드럽게 말을 걸었다. “당신이 바로 그 신소재 패션 디자이너, 제로 맞죠? 정말 대단해요. 최근 컬렉션을 봤는데, 모든 사람들이 당신 얘기뿐이었어요.”

제로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고맙습니다.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죠.”

그녀는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운이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당신 같은 사람은 그저 운이 좋다고만 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요. 제가 그걸 알아보는 데는 꽤 능숙하거든요.”

그녀의 시선은 제로를 사로잡고 있었고, 그 눈빛에는 뭔가 유혹적인 기운이 흘렀다. 그녀는 손을 들어 제로의 팔을 살짝 스치며 미소를 지었다.

"화성에서 당신처럼 특별한 사람을 찾는 게 쉽진 않죠. 혹시 다음에 시간이 된다면, 저와 개인적으로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제로는 순간적으로 말을 잇지 못한 듯 보였다. 나는 그녀의 뻔한 여우짓에 헛웃음이 났다. 그리고는 제로에게 다녀오란 듯이 장난스러운 고갯짓을 했다. 하지만 속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마음속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파티의 화려한 조명이 반짝이고, 사람들이 끊임없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나는 홀로 유리잔을 들고 있었다. 화성 상류층 속에서 점점 더 고립감을 느끼며 그들 사이에 내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모든 것이 너무나 화려하고 완벽해 보였지만, 그 속에서 나는 혼자였다. 곧 우아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렸다. 검고 멋진 웨이브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가진 여자가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 또한 금빛 드레스를 입고 있었으며, 그 옷은 마치 그녀가 이 파티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소피아, 이곳에서 가장 주목받는 상류층 패션 디자이너였다. 소피아는 부드럽고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내 옆에 섰다. 그녀의 맑고 하얀  피부에 지구에서 노동하다 온 내 몸뚱이가 창피해졌다. 그녀는 영롱할 정도로 희었다.

“너무 바빠 보여서 다가가기 어려웠어,”

 그녀는 농담처럼 말을 던지며 와인잔을 내밀었다.

“혼자 있는 것 같길래, ”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따뜻했다. 나는 살짝 당황하며 웃었다.

“아니에요, 그냥... 생각할 게 좀 많아서요.”

소피아는 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때 있지. 특히 이 화성에서의 삶이 낯설면 말이야.”

그녀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시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사실 나도 그랬거든. 처음엔 이곳이 굉장히 화려하고 완벽해 보였지만, 그만큼 외롭기도 하더라고.”

그녀는 와인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 뒤,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는 서로를 이해하고, 같은 길을 가는 사람들을 찾는 거 아닐까? 나도 네가 겪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어.”

나는 소피아가 그저 상류층의 부유하고 성공적인 사람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녀의 말은 의외로 진지하고 따뜻하게 들렸다. 그저 겉으로만 화려한 사람이 아닌, 그 속에 무언가 깊은 외로움과 공감을 품고 있는 듯했다.

“우리가 처음 여기에 와서 적응하는 건 쉽지 않잖아.”

그녀는 다정하게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나도 겪어봤으니 말할 수 있어. 네가 혼자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돼. 우리 모두 비슷한 감정을 느끼거든.”

소피아의 따뜻한 말에 마음이 조금씩 녹아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녀도 화성에서의 삶 속에서 나와 비슷한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파티가 끝난 후, 나는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으며 겨우 긴장을 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제로가 성큼성큼 들어왔다. 그는 무언가 짜증이 나 있는 듯 얼굴이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이야?"

내가 물었다.

"오늘 그 여자... 수상한 여자가 있었어."

제로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넌 그 여자를 모르겠지? 내가 뭐라고 물어보면 넌 항상 모르겠다며 신경도 안 쓰잖아."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제로를 쳐다봤다.

 "누구 얘기하는 건데?"

"그 파티에서 나랑 이야기 나눈 여자."

제로는 말투가 날카로웠다.

"네가 나랑 이런 데 와서 뭐 하는지 모르겠어. 넌 혼자 다른 생각에 빠져 있고, 난 이상한 사람들 만나서 계속 엉뚱한 질문이나 받았어."

나는 한숨을 쉬었다. 하긴 제로의 말이 틀리진 않다. 한때 한참 잘 나가던 할아버지를 궁지로 넣은 건 할아버지와 어울렸던 지인이었다. 둘은 가치 도박이나 골프를 즐겼다. 섬유공장을 할 때부터 알았는데 할아버지가 많이 도와준 사람이라 했다. 할아버지가 싸함을 느낀 건 멀쩡하던 공장의 폐기오수점검기가 고장 나고 누군가의 신고로 위기를 겪었을 때였다. 하지만 설마 하며 넘어간 게 문제였다. 신고를 하도고 할아버지가 건재함에 더 분노를 느낀 그는 정부의 흐름과 정책의 정보를 우연히 알게 되고 그는 환경정책과 관련된 패션사업을 준비하며 할아버지에겐 일회용 쓰레기나 만드는 일을 권했다. 인간이란 죄인이 맞다.

 "미안해, 제로. 난 그저 좀... 이 화려한 파티가 어색해서 그랬던 거야."

그러나 제로는 나의 말을 듣지도 않고 화를 내며 방을 왔다 갔다 했다.

"그 여자가 뭔가 이상했어. 계속 우리 사업에 대해 캐물었고, 갑자기 관심을 갖더라고. "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사실 파티 중간에 잠시 소피아와 이야기를 나누느라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으니까. 제로의 짜증이 커지는 걸 느끼며 나는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너도 좀 더 신경 써야 하지 않겠어?"

제로는 결국 마지막으로 쏘아붙였다.

"우리를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가득해. 그런데 넌 그저 방관하고 있잖아."

그의 말은 마치 나를 향한 비난처럼 들렸다. 나는 억울함과 짜증이 섞인 감정이 올라왔지만,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 여자, 나도 신경 쓸게. 그러니 너무 화내지 마."

제로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나의 말에 더 이상 대꾸하지 않았다.

제로와 나는 파티에서의 모든 일을 잊고 다시 본업에 몰두하기로 했다. 파티장에서 마주한 불쾌한 기억들과 제로의 짜증이 머릿속에 남아있었지만, 우리는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신소재 패션 사업, 그것이 우리의 길이었고, 여기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의 작업실은 화성 도시의 외곽에 있었다. 수많은 스케치가 흩어진 책상 위엔, 갈리비아 해초로 만든 샘플들이 놓여 있었다. 이 해초가 지구를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것을 신소재로 한 패션을 통해 이곳에서의 자리를 굳히고자 했다.

제로는 말없이 집중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무언가에 몰두한 듯 날카롭고, 손놀림은 정확했다. 그는 나보다 훨씬 디자인에 열정적이었고, 늘 한 발 앞서 나가는 감각을 가졌다. 그는 새로운 의상을 만들기 위해 바느질을 시작했다. 갈리비아 해초의 독특한 질감을 최대한 살리며도 현대적인 감각을 접목한 옷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도 그와 나란히 앉아 스케치에 집중했다. 우리 컬렉션의 테마는 강렬함과 도발적인 매력, 그리고 기능성이었다. 이 옷들이 단지 상류층의 허영심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시할 수 있기를 바랐다. 갈리비아 해초의 질감과 형태를 최대한 활용해 세련되면서도 실용적인 의상을 만들고 싶었다.

“이번 컬렉션은 정말 중요해,”

제로가 입을 열었다.

“이게 잘되면 우린 화성 패션계에서 확실히 자리 잡을 수 있어.”

“알아, 그래서 더 완벽하게 만들고 싶어.”

 나는 그가 디자인한 옷을 가만히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그냥 유행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우리가 패션을 주도해야 해. 여기 있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는 함께 강렬한 디자인을 추구하면서도, 기능적인 면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제로가 만든 옷은 단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용성과 지속 가능성을 모두 갖춘 것이었다. 화성 상류층의 입맛을 충족시키면서도, 지구를 구할 가능성을 품은 그 옷들이 우리의 무기가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는 각자의 작업에 몰두했고, 머릿속의 복잡한 생각들이 하나둘 정리되었다. 그 순간만큼은 파티에서 있었던 일도, 소피아와의 불편한 대화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우리가 이뤄낼 혁신, 그것만이 우리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작업실에 고요가 흘렀고, 오직 펜 끝이 종이를 스치는 소리와 제로가 작업하는 소리만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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