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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욜수기 yollsugi Oct 05. 2019

런웨이가 된 NBA 경기장 복도

NBA 시즌 개막 D-50 '느바 맛보기' DAY 31

[느바 맛보기] 프로젝트의 DAY 28 포스트로 농구화 이야기를 했었다.

NBA 사무국에서 선수들의 경기 중 착용 가능한 농구화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면서 선수들이 농구화로 본인들의 개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내용.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링크를 참조하길 바란다.

오늘은 <DAY 28 세상은 넓고 예쁜 농구화는 많다>의 후속이자 훨씬 넓은 범위의 이야기를 다뤄볼까 한다.

NBA 리그가 유독 패션에 민감하고 패션과 강하게 결부되어 있는 이유 말이다.



지겨울 수도 있겠지만 오늘의 이야기도 르브론 제임스로 시작한다.

뭐 어쩌겠나, 르브론제임스가 off-the-court에서 미친 영향이 이렇게나 크고 다양한 것을.

NBA와 패션 사이의 커넥션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의 르브론 제임스 전과 후로 나뉜다.

Beats By Dre

당시에 음악산업에만 포커스를 두고 있던 이 작은 테크 회사는 베이징 올림픽을 기점으로 고작 두 달 전에 첫 헤드폰 모델을 런칭했었다. 헤드폰이 주력 사업이 아니었다. 하지만 상하이에 미국 농구국가대표팀이 도착했을 때 르브론 제임스가 Beats By Dre 헤드폰을 착용한 채로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 그 모습이 프레스를 통해 전세계로 퍼져나간 순간, Beats By Dre는 하루만에 헤드폰 업계에 메인스트림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당시 Beats By Dre 대표 Luke Wood는 "우리는 그 당시 완전히 음악 산업에만 매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르브론과 그의 팀에게 헤드폰을 협찬 겸 선물해주면서 그 어떤 기대효과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르브론 제임스로 인해 Beats By Dre는 비로소 우리가 아는 지금의 Beats By Dre가 되었다.


지난 <DAY 28 세상은 넓고 예쁜 농구화는 많다> 게시글에서 농구화를 중점적으로 다루긴 했지만, 실제로 2008년 르브론과 Beats By Dre 이전에 선수들이 개성을 드러내고, 홍보효과를 보일 수 있는 것은 농구화와 나이키, 아디다스 등의 스포츠 의류에 국한되어 있었다. 아니, 선수들 자체가 제한된 공간에서 제한된 역할을 했다. 선수로서의 역할, 운동선수로서의 롤모델의 역할. 그것 뿐이었다.

하지만 2008년 Beats의 성공은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대중은 더 이상 르브론 제임스를 농구선수로만 생각하지 않았다. 남성을 대표하는 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르브론 제임스는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Fashion gives them the chance to actually stop and think about who they are and who they want to be.
패션은 실제로 그들이 누군지, 무엇이 되고 싶은지 멈춰서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렇게 선수를 적절한 패션 인플루엔서로 인식하는 움직임은 스포츠계에, 특히 NBA 내에 강하게 퍼졌고, 선수들이 비행기에서 내릴 때나 경기장 복도로 들어설 때의 상황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미쳤다.

대중들은 더이상 경기장 내에, 코트 내에 있는 선수들에만 집중하지 않았다.

그들이 무슨 옷을 입고 무슨 스니커즈를 신고 들어오는지, 무슨 아이템을 손에 들고 오는지에 집중하였다.

그들의 복장은 더 이상 '개인의 패션 스타일' 정도의 기능만을 담당하지 않는다. 선수들은 하나의 셀프 브랜드가 되었고 이는 비즈니스로 발전했다.



Concrete Runway. 콘크리트 런웨이.

선수들이 NBA 스타디움에 들어선 후 실제 경기장 안까지 들어오는 동안 지나게 되는 긴 복도는 선수들의 패션과 그들의 영향력, 그리고 프레스가 만들어낸 하나의 런웨이이다.


1. Beats By Dre는 이제 NBA와 공식적인 계약을 맺은 헤드폰 업체가 되었다.


2.휴스턴 로켓츠 소속 러셀 웨스트브룩은 이 콘크리트 런웨이를 매일 지나가면서 선보인 그의 데일리룩을 인스타그램에 페이지로 게시했고, Style Drivers 라는 책으로도 출간하였다.


3. 저번 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마이애미 전설 드웨인 웨이드는 Stance Socks라는 양말 브랜드의 제품을 계속 착용하다가 이 브랜드와 협약을 맺고 파트너십 브랜드를 런칭하기도 했다. Stance는 이제 NBA의 공식적인 온코트 양말 업체가 되었다.


Stance Socks를 착용한 드웨인 웨이드 (좌) / 본인의 아웃핏을 Style Drivers라는 책으로 출간한 러셀 웨스트브룩 (우)


4. Filling Pieces라는 암스테르담의 작은 의류 회사는 2018년 3월 크리스폴이 비행기에서 내리면서 착용한 운동복이 SNS 내에서 화제가 되면서 웹사이트 웹사이트 트래픽이 하루만에 104% 증가하였고, 며칠 뒤 드웨인 웨이드가 포스트게임 인터뷰에서 Filling Pieces 자켓을 착용하고 나온 뒤 트래픽이 89% 더 증가하였다.

Filling Pieces의 스웨트셔츠를 착용한 크리스폴


2018년 통계에 의하면 르브론이 그의 스폰서에 안겨준 수익은 1억3700만 달러, 스테판 커리가 그의 스폰서에 안겨준 수익은 3900만 달러라고 한다. 어마어마한 액수이다. 비록 이 액수가 전체 스폰서의 총합이라고 하여도 의류스폰서가 이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기존의 나이키, 아디다스와 다르게, NBA 선수들이 착용하고 나오는 브랜드들은 가시적인 수익 효과를 얻을 수 있었고, 선수들 또한 그들이 인플루엔서로서, 셀프 브랜드로서 업계에 기여한다는 생각에 패션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패션쇼 제일 앞줄에 앉아 유심히 패션소를 관람하는 선수들도 많아졌고, 자신만의 패션 스타일을 만들어나가려는 움직임은 당연해질 정도로 커졌다. 그리고 선수들이 걷는 경기장 복도는 그들 본인이 정말 런웨이로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변화가 직접적으로 불어닥친 요인은 무엇일까. 촉진제 역할을 했던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전문가들은 이를 두가지 측면에서 본다.

NBA 사무국의 기념비적인 규정 변화소셜 미디어의 출현.


2005년 NBA 총재 데이비드 스턴은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며 선수들이 경기장 내로 진입할 때 비즈니스 룩 혹은 캐쥬얼 룩을 입도록 하는 규정을 만들었다. 처음에는 의아하다는 반응이 다수였고, 오히려 허용하는 측면보다 일부 규제하는 측면에 더 많은 관심이 쏠리며, 이를 테면 펜던트, 체인 착용을 금하는 내용에 대해 인종차별적인 규제라는 반응으로도 이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선수들에게 코트 밖에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이를 드러내기 위한 발판을 제공해주었다.


NBA 선수들이 데뷔하기 전에 갖는 목표는 모두 동일하다: NBA 데뷔. 하지만 데뷔한 이후에는 그들이 코트 밖에서 갖고 있는 영향력에 대해 자연스레 생각해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선수들은 본인 스스로가 브랜드가 되어야겠다는 인식을 점차 갖게 되었다. 이에 제도적 발판을 제공해준 것이 NBA 사무국. 그리고 이들이 자신만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플랫폼 제공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이 바로 소셜 미디어의 출현이다.

소셜 미디어를 통해 선수들은 자신의 계정으로, 또는 프레스, 팬의 계정으로 세상에 노출된다.

멋진 패션으로 나타나든, 누구보다 튀는 의상으로 나타나든 그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본인들을 드러낸다.

코트 내에서 농구 실력으로도 본인들의 입지를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지만, 코트 밖에서도 셀프 브랜딩을 위한 노력은 비슷한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개인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고, 디자이너와 협업하며 선수들은 점차 데일리룩에서 비즈니스로 인식을 넓혀갔다.

PJ 터커

혹자는 NBA에서 농구 자체로 최고의 위치에 올라야 그만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이미 패션과 강하게 연결된 NBA 세계에서 이는 사실이 아니다.


대표적인 예가 휴스턴 로켓츠 소속 PJ 터커. 물론 PJ 터커도 굉장히 뛰어난 휴스턴의 핵심 식스맨 자원이다. 하지만 PJ 터커의 스니커즈 컬렉션은 코트 밖에서 그가 NBA 올스타급 선수들 만큼이나 거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었다.


PJ 터커는 유독 비싼 신발들을 골라서 소장하고 이를 착용하고 나타났다. 실제로 한화로 약 3000만원 정도에 이르는 나이키 르브론 6 크리스마스 스페셜 에디션을 신고 나타나기도.


농구화 자체가 선수들에게는 필수적인 아이템이니만큼, 선수들이 패션에서 처음 시작을 내딛는 것도 대개는 농구화이다. 선수들이 스니커즈 아이템에 관심을 많이 갖기 시작하면서 해당 업계에서도 다양한 디자인을 내놓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DAY 28에서 언급한 NBA의 규정완화로도 이어지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피닉스 소속 켈리 우브레 주니어도 뛰어난 롤플레이어이긴 하지만 슈퍼스타급 레벨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켈리 우브레 주니어는 NBA 내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선수 중 하나로 알려져 선수로서의 입지에 비례하지 않는 엄청난 인스타 팔로워 수를 보유하고 있다. 셀프 브랜딩의 성공 사례이다.


NBA 내 패션 스타일이 비즈니스로 전환된 역사

선수들이 착용하는 브랜드는 엄청난 수익효과를 올리게 되고 많은 홍보 효과를 누렸다.

일부 브랜드들은 NBA와 공식적인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하기도 하였다.

2019년부터는 경기장에 진입하는 콘크리트 런웨이에 두 가지 신발을 동시에 선보이는 것이 대세가 되었다.

하나는 신고, 실제 경기에 신을 신발은 들고 오는 것, 동시에 두 가지 디자인을 선보일 수 있는 구조이다.

마케팅 도구는 오로지 하나, 선수 본인이다.


특이하지만 어느 마케팅 팀보다도 강력한 NBA만의 패션 브랜드 마케팅은 이렇게 이어져오고 있다.



NBA에 데뷔하는 선수들의 나이는 평균적으로 18세~21세. 갓 성인이 되어 정체성을 찾기 시작하는 이들에게 패션은 스폰서십이나 비즈니스적인 차원에 대한 논의 이전에 결국은 자기표현의 수단이다.

그들이 자신을 영향력있는 개인 브랜드로 인식해감에 따라서, 선수들은 인간적인 차원에서도 한단계 더 성장한다.

한국의 수많은 운동선수들이 학창시절 내내 듣는 말, 이후 선수가 되어서도 가장 많이 듣는 말. "너 평생 운동만 했는데, 운동선수 아니면 뭐할래? 다치거나 그만두게 되면 그땐 뭐할래?" 이말에 좌절하는 선수들, 혹은 꿈나무들을 보며 이것이 비단 시스템이나 직업적 차원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선수들 개개인이 자신의 정체성, 영향력에 대해 고민해볼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것은 아닐까. 요즘 다른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도 사이드 프로젝트는 큰 이슈이다. 메인으로 종사하고 있는 일에서 벗어나 주말이나 남는 시간에 즐기는 취미가 사이드 프로젝트로서 나에게 또 다른 수익을 가져다 주고 또 하나의 전환점을 마련해 준다는 것. 이는 모두 자기 자신에 대한 섬세한 관찰과 탐구가 선행된 뒤에 가능하다. 특히 운동선수들은 더더욱이 이런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운동만 해야 했기 때문에.


제임스 하든의 스타일리스트 Kesha McLeod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농구를 그만둔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할 것인가? 모두가 스포츠 해설을 하고 있을 수는 없다. 르브론 제임스와 드웨인 웨이드, 그들이 농구 바깥에 존재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개척해두었다. 제대로 고민해보아야 한다. 농구를 그만둔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르브론 제임스의 헤드폰 하나로, 선수들의 작은 움직임 하나로, 패션업계와 NBA는 강하게 묶여가면서 NBA 선수들만큼은 기존의 제약에서 자유로워지기 시작했다. 선수들이 자기표현의 측면에서, 그리고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잘 갖춰진 제도적 여건과 플랫폼 위에 많은 긍정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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