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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욜수기 yollsugi Apr 03. 2019

골목시장감성을 음악에 입히다

레트로와 칠아웃, 그 사이 어딘가: 한국의 시티팝


연남동, 경리단길, 삼청동, 성수동 등 도시적인 느낌의 베뉴들만이 인기를 끌고 있던 중, ‘을지로’라는 이단아가 등장하였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감성이 담긴 곳, 레트로라는 수식어를 공간 전체가 보여주는 곳, 바로 을지로였다.


을지로라는 공간 안에서 젊은이들은 골목 골목 간판이 없는 카페와 바들을 찾아다니며 힙한 감성을 ‘파밍’하고,

중년층은 옛날 노상 주점의 감성에 젖어 노가리에 맥주를 마시며 지나가던 캔디바와 서주아이스를 파밍한다.

그리고 이 둘은 자연스럽게 같은 공간 안에서 섞여들어 시너지를 낸다.


을지로 이전에도 레트로 공간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자라왔다.

망원시장의 상권이 부활하여 세대가 어우러질 때, 종로 광장시장이 SNS의 힘을 얻어 대학신입생들의 버킷리스트로 등극하기 시작했을 때.

이전 세대가 즐겨 향유하던 문화를 다음 세대가 이어 받아 새로운 감성으로 향유한다.


세대 간의 공감, 그리고 공감에서 더 나아간 새로운 감성의 창조.

이것이 워낙 이루기 힘든 과제이기에, 을지로에서처럼 레트로 감성이 어느 분야에서든 잘 스며들었을 때, 그 멋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90년대 향수에 이끌려, 시티팝 장르가 주는 호기심에 이끌려 섣불리 이 채널에 들어갔다가는 브금이 본업을 압도하는 현상을 맛볼 것이다

작년 11월 쯤이었나, 유튜브에서 새로 알게 된 채널이 있다. 그 이름은 [Seoul City Beat].


시티팝이 일본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에도 위대한 씨티팝 노래들이 있다! 그것도 90년대에!” 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채널이다.
실제로 이 채널에서는 한 곡씩을 뽑아서 업로드하기도 하고, 분위기나 장르에 맞추어 믹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Acid Jazz City Pop / 여름에 듣기 좋은 Summer City Pop / 유희열, 윤상 City Pop 믹스 등)
영상 길이는 대략 30~40분.

어차피 앨범 커버와 함께 노래가 흘러나오는 것 뿐이라, 다른 작업을 하면서 브금으로 깔아두기에 최적이다.

시계방향으로 이상은 ‘그대 떠난 후’, 모노 ‘넌 언제나’, 빛과 소금 그리고 장원영
원래부터 90년대 음악들을 좋아했던 개인적인 성향 때문인지, 채널 관리자의 환상적인 선곡 센스와 깔끔한 믹싱 실력 덕분인지, 굉장히 빠른 시간 내에 이 채널에 빠져버렸고, 이 채널 속에서 시티팝으로 불리는 90년대 음악들을 다시 파기 시작하였다.

유희열, 윤상, 빛과 소금, 김현철, 이상은, 김성재, 패닉 등등

시티팝이라는 것은 사실상 장르의 구분으로 보기는 힘들다. 정확히 장르로 따지자면 오히려 신스팝에 가깝다고 하는 것이 좋겠다. 다른 장르도 그러하듯 대부분의 세부 음악 장르들이 다양한 곳에서 영향을 받아 근원지가 불명확한데, 현재 잘 알려져 있는 시티팝의 근원지는 일본이라 할 수 있다. 일본 특유의 감성, Acid, Retro, Lo-Fi, Chill,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분위기를 내뿜는 신스팝들을 City Pop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부르기 시작하였고, 인기가 많아지면서 신스팝의 하위장르가 아닌 마치 독립적인 장르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국내에서의 시티팝은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을 선도하는 소위 ‘힙스터’들이 이 시티팝에 꽂혀 유행을 타기 시작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가만, ‘주목받기 시작했다’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일까. 더 정확히는 ‘90년대 음악의 재조명’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국내 1990년대 음악 중에는 상당히 음악적으로 수준이 높은 음악들이 즐비하다. 대중적인 감성도 건드리면서, 음악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음악들이다. 응답하라 시리즈, 그 중에서도 응답하라 1997과 1994가 그 인기에 수록 ost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점 또한 그 당시 곡들 하나하나의 완성도에 기인한다고 생각해왔다. 2010년대에 들어서서 MBC 무한도전의 [토토가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로 90년대의 댄스음악이, JTBC 슈가맨으로 발라드 및 Mid-Tempo 댄스음악들이 다시 주목을 받았었다. 그리고 최근 을지로 골목상권의 부흥과 더불어 한국만의 City Pop이 새로운 트렌드로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가장 반가워 할 사람 두 명이 있다. 장기하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양평이형’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City Pop DJ 하세가와 료헤이 님과 레트로 감성 외길인생으로 국내 DJ씬 내에서 독자적인 색깔을 다져가는 DJ 타이거디스코 님이다. 최근에서야 시티팝이 언더그라운드에서 본격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했지만, 이 두 분은 이미 몇 년째 시티팝과 레트로를 파오던 분들이다. 인기에 상관없이, 대중의 수요에 관계없이, 늘 이 분위기에 맞추어 음악을 틀어왔다. 장르를 떠나 실력적으로도 존중받아 마땅한 분들이기에, 장르의 부흥과 더불어 이 두 분의 가치 또한 재조명될 것 같아서 팬인 필자의 입장에서도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트랩 힙합이나 일렉트로닉처럼 강한 비트에 자극적인 음악은 아니지만, (물론 이 두 장르 또한 필자는 매우 사랑한다, 매우...매우...매우...!) 일본의 시티팝과는 느낌이 또 다른 것이 우리나라의 90년대 음악들이지만, 한국만의 chill한 바이브가 있다면 이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리듬과 흥을 향유하기 좋은 음악이 한국 시티팝이라 본다.
올해 2월 22일자에 하세가와 료헤이x타이거 디스코x김현철 이라는 라인업으로 This is the City Life가 열렸다. 사실 김현철 님이 빛내주신 이 공연 때문에 글가지 쓰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채널 1969 베뉴에서 김현철님의 대표곡 “왜그래”가 울려 퍼지는 것을 보고 큰 희열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김현철씨가 이 포스터에서 내뿜는 아우라가 이 글의 메인 테마다
도대체 왜~ 아무런 말도 없는거야~ 미안해서 못하는거야? 하기 싫어 안하는 거야?


여담으로 지금이라도 시티팝의 대열에 합류하고 싶은 포텐셜 코리아 힙스터들에게는 [채널 1969] 베뉴를 추천한다. 엄밀히 말하면, 앞서 언급한 료헤이와 타이거디스코 DJ 둘을 추천하고 싶은 마음이다. 김현철 님이 참석하신 2월의 공연의 경우도 이 두제이가 주최하는 프로젝트 공연의 일환인데, 앞서 언급했듯 ‘This is The City Life’라는 이름으로 매달 열리니 참고해보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지금의 이 현상이 너무나도 반갑다. 다양한 세대가 하나의 공연을, 하나의 문화를 다르게 해석하며 즐기는 현상이 더욱더 확대되기를 소망한다. 훗날 부모님과 채널 1969와 같은 베뉴에서 같이 맥주 한 잔 기울이며 1~2시간의 언더그라운드 디제잉공연을 즐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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