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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욜수기 yollsugi Apr 12. 2019

쉽게 질리는게 나쁘지만은 않아

나의 장점, 나의 단점, 그리고 선순환

쉽게 재미를 붙이고,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 새로운 것을 배우고 시도하는데에 거침이 없다는 것. 어렸을 때부터 나의 장점이었다.

자연히 끈기있게 하나를 오래 하지 못하고, 다른 쪽으로 관심이 돌아서버리는 단점이 수반되었다. 쉽게 싫증이 나버려서 하나를 오래 하지 못한 것이 나에겐 넘어야 할 고비이자 고충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다양한 것을 알아가는데에 대한 갈증이 컸을뿐, 내가 흥미를 느꼈던 것들은 결국 돌아왔고, 계 중에서도 정말 좋아하는 것들은 되풀이되면서 더욱 그 관심과 내공이 깊어졌다. 결국 돌아왔다. 그리고 돌아왔을때도 새롭게 즐기면서 내 것이 되어갔다.

그리고 내가 정말 갈구하는 것이 생겼을때, 정말로 이루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그간 여러 곳에 기웃거리며 겪었던 경험들과 조금이라도 학습했던 것들은 강한 에너지원이 되어주었다.

1. 중2때 드럼라인을 보고 스네어드럼에 꽂혔다.

(지금 생각해보면 중학생 아들이 영화 한편보고 드럼을 치고싶다며 10만원짜리 드럼패드를 사달라고 하는데 아무 말 없이 드럼패드를 사준 아버지가 존경스러우면서 아버지께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드럼 한번 안 배워본 사람이 드럼패드로 어떻게 효율적인 연습을 할 수 있겠는가. 영상강의들을 보며 스네어드럼을 이리치고 저리치다가는 몇 달 안 있어 그 드럼패드는 장난감보다도 못한 냄비받침대로 전락해버렸다.

끝이었을까? 성인이 되고 디제잉에 관심이 생기며 음악을 간단하게나마 만들어보고 싶던 욕심이 생기더라. 기술은 더욱 발전해서 드럼패드를 랩탑에 연결하여, 혹은 아이패드로 비트를 만들 때 생각보다 여러가지 변주를 만듦에 수월했다. 왜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어렸을 때 원판 하나에 드럼스틱을 두들기던 내가 보였다. 덕분에 리듬감이 중요하고 의식적으로 리듬을 신경써야 할 디제잉을 배울 때에도, 음악을 들으며 내가 원하는 하우스 장르의 아티스트들을 고를 때에도, 이 작은 포기는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2. 중학교때였나, 국내 인디락에 처음 발을 들여 음악을 열심히 듣기 시작하였다. 인디락 아티스트들 중 당시에 유명한 아티스트들의 앨범을 모두 다운받아 듣고, ( 당시에 신예 아티스트로 유명했던게 지금은 헤드라이너를 일삼는 국카스텐, 검정치마..  이랬는데) 취향이 아니었던 음악들까지 골라서 다 들었다. 그만한 동력이 있었다. 그랬더니 어느순간 인디락이 질리고 해외 펑크락, 모단락에 빠지게 되었다. (2000년대 중후반에 해외락밴드에 한번이라도 빠졌던 사람은 알만한 밴드들.. 후바스탱크, 오아시스, 뮤즈, 제트,  등등) 

2000년대 감성 그자체...후바스탱크


마찬가지로 영혼을 갈아넣는 디깅을 시작하였다.

역시나 어느 순간 빠졌던 음악 자체를 덜 듣게 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이 이후 힙합,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퓨처하우스, 퓨처베이스, 재즈, 알앤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금방 질려 바뀌던 내 '단발성 취향'은, 누적, 또 누적이 되자 모든 취향을 아우르며 잡식성으로 모든 노래를 즐겨 듣는 '스펙트럼'으로 바뀌었다. 


지금 시대에는 능력이 다다익선이라고 여겨진다. T자형 인간이랬던가, 하나의 코어를 깊이 파고, 이를 뒷받침해줄 수많은 능력과 지식들을 넓게 퍼뜨려 쌓아나가는 , 급변하는  시대에 어울리는 인재상이랬다. 나의 성격은 T자형 인간을 향한 준비과정에 분명 많은 기여를 해왔.

정답은 당연히 아니겠지만, 적어도 나 스스로만큼은 그렇게 믿으며 배우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주저하지 않고 있다. 대신 일정 기간 뒤에 다른 것으로 관심이 이동하더라도 한번   제대로 경험하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짧은 기간에 제대로 경험하겠다는 욕심이 더해지니 효율은 더욱 좋아졌다.



3. 그렇게 NBA 스탯을 더 잘 이해하고 싶어서, 나 혼자 페스티벌 관객 수를 알아가고 싶어 코딩을 배웠고, 매번 공연에 가서 영상 찍고 혼자 돌려 보는 점이 아까워 영상 편집을 배웠다. 그래놓고 처음에 해봐야 1달씩 배웠나.


이후에 코딩은 학교 전공 수업으로 다시 접하여 더 학문적으로 다질 기회가 주어졌다. 전공 수업이 갖는 힘이랄까, 과제가 워낙에 벅찼던 탓에 코딩에 대한 흥미가 떨어졌었다. 하지만 한 학기정도 동안 열심히 배우고 시도하던 것들이 나중에 다시 시작했을 때의 심리적인 진입장벽을 낮춰놓았다. 그렇게 나는 코딩 공부를 이어나갈 것이다.

4. 영상 편집이 그렇게 고된 작업일 줄 상상도 못했다. 방법을 알고 PPT처럼 템플릿을 사용하면 뚝딱하고 원하는 결과물이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10분짜리 인터뷰 영상을 편집하여 유튜브에 영상 하나를 올리기까지는,

이틀 여를 직접 찍은 영상과 다른 자료들을 찾아보며 인터뷰를 준비하고, interviewee와 시간을 맞추고, 촬영을 준비해서 영상을 40분 가량 찍고, 40분 정도의 인터뷰 영상을 적어도 10번은 돌려보며 필요한 말을 따내고, 어떤 내용을 편집하고, 어떤 내용을 살릴지를 선정하며 컷편집을 마친 후에 영상 하나에 어울릴 no copyright 음악을 반나절 가량 찾고, 차분히 한 마디 한 마디를 듣고 또 들으며 자막을 다는 과정이 있다는 점을 인지하지 못했다. 아 참, 무지막지하게 긴 시간으로 어도비 프리미어에서 렌더링을 하고, 유튜브에 올리는 데도 한 세월, 유튜브에서 저작권 침해 요지가 있다고 판단하여 공연영상에서 음악을 차단시키는 순간 추가적인 편집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무지막지한 과정을 겪으며 영상 몇개를 올린 뒤 내 영상에 대한 애정은 한 풀 식어버렸다.


내 채널이에요!!!!


 하지만 나에게는 끝까지 편집하여 몇일간을 투자하여 만든 인터뷰 영상들이 생겼고, 좋은 영상을 만들기 위해 편집 자체를 공부하며 얻은 영상 지식이 생겼고, 내 채널이 생겼고 앞으로도 이어나갈 아이디어와 동력이 생겼다.

분명 막 휘몰아치듯이 코딩을 학습하고, 영상편집을 알려주는 유튜브 영상들을 찾아보며 연습하고, 음악을 찾아다니고 하던 때가 있었고, 지금은 그보다는 덜한 열정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는 나도 알고 있다.돌아올 것이라는 것을. 언젠가는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새로운 재미와 함께 나에게 돌아올 것이고, 여기서 나는 다른 가지를 뻗어내듯 다시 또 그 취미, 그 관심사에 푹 빠져 향유하면 되는 것이다.

드럼패드를 두드리던 중학생이, 대학생이 되어 드럼패드와 함께 디제잉을 배우고, 이제는 디제이들의 셋을 들으며 그들의 문화를 찾아보고, 이들과 관련된 산업에서 종사할 것을 희망하고 있다.

한 가수, 한 장르만을 파다가 질렸던 중학생이, 어느순간부터 같은 느낌의 여러 장르 곡들을 큐레이팅하는 멜론디제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지금보 깊고 넓어질 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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