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생각 한 줄>
"비교를 내려놓는 순간, 삶은 비로소 나만의 속도로 깊어지기 시작했다."
태어나자마자 우리는 이름과 몸무게로 기록되었고, 성장하며 숫자로 평가받는 삶에 익숙해졌다. 학교에서는 성적과 등수가 나를 설명했고, 사회에서는 직장과 연봉, 집과 차가 삶의 가치를 대신했다. SNS가 일상이 된 지금은 하루의 감정과 풍경마저 타인의 삶과 나란히 놓고 비교하게 되었다. 경쟁은 때로 동력이 되었지만, 대부분은 피로와 상처를 남겼다. 나는 내가 누구인가보다, 남보다 얼마나 앞서 있는지에 더 많은 힘을 쏟고 살았다.
그러나 수십 년의 시간을 지나며 분명해진 것이 있다. 삶은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경주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인생은 경쟁이 아니라 과정이며, 비교가 아니라 발견의 여정이다. 이 깨달음은 내 인생 3막의 첫 문장이 되었다.
나는 전직 소방관이다. 1988년 9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36년간 불길 속을 누비며 살았다. 셀 수 없는 현장을 지나왔고, 수많은 삶의 끝자락을 지켜보았다. 그 시간은 언제나 빠른 판단과 즉각적인 행동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을 가장 가까이서 본 자리에서 나는 삶의 속도에 대해 다시 배우게 되었다. 인생은 앞서가는 사람이 이기는 구조가 아니었다.
나는 인생을 네 막으로 나누어 바라본다. 1막은 출생부터 30세까지, 배우고 익히는 시간이었다. 생존의 규칙을 몸으로 받아들이던 시기였다. 2막은 31세부터 60세까지, 채움의 시간이었다. 가족과 조직, 국가를 위해 쉼 없이 달려온 시절이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3막에 서 있다. 61세부터 90세까지, 이 시간을 나는 나눔의 시간이라 정의했다. 마지막 4막은 91세 이후, 비움과 정리의 시간이자 엔딩노트를 점검하는 구간이다.
3막의 문을 열자마자 나를 맞이한 것은 독서와 글쓰기였다. 쉰여덟에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고, 불과 3년 만에 전자책 세 권과 종이책 두 권을 세상에 내놓았다. 수필가로 등단하는 경험도 했다. 나의 이야기를 쓴다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가능성의 증명이었다. 독서와 글쓰기는 나이와 이력을 묻지 않았다. 오직 시작하는 용기만을 요구했다.
우리는 살아 있는 한 매일 새로운 문장을 살아낸다. 어떤 날은 문장이 또렷하고, 어떤 날은 오탈자로 가득하다. 웃음이 많은 날도 있고, 이유 없이 무너지는 날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날은 삶의 원고에서 빠질 수 없는 한 페이지였다. 완벽하지 않아도, 느려도, 그 길은 분명 나의 이야기였다.
내게 은퇴는 마침표가 아니었다. 새로운 문단의 시작이었다. 더 많이 나누고, 더 깊이 쓰고, 다시 배우는 삶이 열렸다. 이 여정에는 결승선이 없다. 누가 더 빨리 가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내가 나답게 걷고 있느냐가 전부다. 오늘도 나는 책을 펼치고 펜을 든다. 경험을 삶으로, 삶을 글로 옮기며 살아간다. 글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며,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 닿을 때 우리는 서로의 삶을 건너간다.
인생에는 결승선이 없다. 우리는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오늘, 나는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비교로 하루를 시작했다면, 오늘은 어제의 나를 돌아보는 질문 하나로 하루를 마무리해도 충분하다. 그 질문이 삶의 방향을 바꾸는 첫 문장이 된다.
<이웃의 공감 댓글>
작가님께서 말씀하신 배움의 시간, 채움의 시간, 나눔의 시간, 비움의 시간으로 나눈 인생의 4막을 저 또한 조용히 성찰해 보았습니다. 현재는 채움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나눔의 시간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 느꼈습니다. 글과 함께하는 삶, 그리고 독서와 운동을 통해 제 삶을 조금 더 알차게 채워가고자 합니다. 그렇게 채운 것들을 언젠가 작가님처럼 기꺼이 나누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은퇴가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문을 여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겠습니다.
<작가의 답글>
‘배움, 채움, 나눔, 비움’의 4막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님의 시선이 아름답고 깊이 있게 다가옵니다. 지금의 채움이 곧 나눔의 자양분이 되듯, 님께서도 하루하루 정성스럽게 삶을 채워가시리라 믿습니다. 글과 독서, 운동으로 다져지는 그 시간들이 앞으로의 인생 3막, 4막을 더 빛나게 할 거예요. 은퇴가 마침표가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씀에 저 역시 함께 힘을 얻습니다. 님을 위해 늘 응원드립니다.
<작가노트>
은퇴 이후 삶의 속도가 느려지자, 경쟁으로 채워졌던 자리에 문장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글은 그 전환의 입구에서 써 내려간 나의 현재 진행형 고백이다. 나는 과거의 이력보다 지금의 호흡에 집중하며 살고 있음을 스스로 확인하고자 했다. 이 기록이 누군가에게 인생의 다음 문단을 여는 조용한 용기가 되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