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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지휘권

by 기공메자

<작가의 생각 한 줄>

"통제할 수 없는 것을 놓는 순간, 삶은 비로소 내가 움직일 수 있는 방향으로 열린다."


나는 소방관으로 살며 불길 앞에서는 늘 겸손할 수밖에 없었다. 화재가 언제 일어날지, 구조 요청이 몇 건 들어올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상황이 얼마나 심각할지 그 어떤 것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내 태도’만큼은 언제나 내 선택이었다.


두려움을 느끼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순간, 판단은 흐려지고 몸은 굳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두려움과 싸우지 않는다. 그저 인정하고 흘려보내며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뿐이다.


호스를 연결하고, 구조 동선을 확인하고, 사람을 안전한 곳으로 안내하는 일. 이 작은 행동들이 모여 많은 생명을 지켜냈다. 결국 통제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내가 선택한 ‘한 걸음’이 길을 만들어 주었다.


일상에서도 원칙은 같다. 퇴직 후 삶은 더 조용하지만, 원리는 변하지 않았다. 소방서의 긴급 호출 대신 일상의 작은 사건들이 나를 시험한다.


비가 온다고 하루가 망가지는가?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내 하루를 흔들어야 하는가?

세상의 흐름이 불공평하다고 내 마음까지 무너져야 하는가?


이제는 안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두고, 내가 붙잡을 수 있는 것에만 힘을 쓰는 것이 현명하다는 걸. 날씨는 바꿀 수 없지만 그날의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타인의 말은 바꿀 수 없지만 내 해석은 내가 정할 수 있다. 세상의 문제는 넓고 복잡하지만 오늘 내가 어디에 마음을 둘지는 온전히 내 몫이다. 삶은 결국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 vs. 조절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능력에서 달라진다.


스토아 철학은 감정을 억누르라는 말이 아니다. 감정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강조하는 건 단 하나, 감정이 행동을 지배하도록 두지 말라는 것. 우리가 흔들릴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내면의 중심을 잃지 않는 법, 결국은 ‘지금 할 수 있는 행동’에 집중하는 것이다.


삶은 통제할 수 없는 것투성이다. 하지만 완전히 손 놓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내 선택, 내 행동, 내 태도는 언제나 내 손 안에 있다. 이 단순한 진리가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바람을 막지 말고, 돛을 세우라. 우리는 종종 바람을 원망한다. 너무 세다고, 너무 약하다고, 불규칙하고 예측할 수 없다고. 그러나 바람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건 자연의 일이며, 인생의 일이기도 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람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람을 이용해 돛을 세우는 일이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항로를 만든다. 작은 선택이 쌓여 인생의 방향을 정한다. 그 방향은 누구도 대신 정해줄 수 없다. 그러니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것들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움직일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해보자. 그 순간 삶은 조금 더 평화롭고, 조금 더 단단해지고, 조금 더 나다운 속도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독자에게 전하는 메시지>

바람의 방향은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돛의 방향은 언제나 내가 선택할 수 있다. 오늘 내가 택한 작은 태도가 먼 훗날 삶의 항로를 결정한다.


<이웃의 공감 댓글>

작가님, 반갑습니다. 올해의 해는 유난히 뜨겁고도 밝습니다. 말씀처럼 바꿀 수 없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바꿀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삶이 더욱 의미 있는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토아 철학에서 말하는 ‘바꿀 수 있는 것’ 중 가장 쉬운 것은 결국 내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인생 선배이자 글친구이신 멋진 작가님의 글을 통해 늘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작가의 답글>

님께서 ‘존경’이라 말씀해 주시니 부끄럽습니다. 뜨거운 여름 햇살처럼 마음도 더 단단해지는 요즘입니다. 말씀처럼 결국 바꿀 수 있는 건 내 마음부터라는 걸 저도 자주 느낍니다. 저 역시 글을 쓰며 제 자신을 돌아보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 많으셨습니다. 따뜻하고 행복한 저녁 시간 되시길 바랍니다.


<작가노트>

화재 현장에서 배운 통제의 원칙이, 퇴직 후 일상에서도 삶을 지탱해 준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며 이 글을 썼다. 오늘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고자 했다. 지나온 경험이 지금의 나를 단련시키고 있다는 확신을 다시 확인했다. 내면의 지휘권을 스스로 잡는 일이야말로 삶을 가장 단단하게 만드는 힘이라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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