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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은 작가 Apr 30. 2016

사돈이 구박하면 할애비 한테 와!

2014년 12월 10일에 쓴 할아버지 작별 일기


오늘 이 세상 소풍마치고 떠나신 할아버지! 점심때 부고를 듣고서 서서히 충격이 왔다. 회사일 어쩌지? 부터 애들은?


“시집갔는데, 사돈이 너 구박하거든 얼른 할애비 한테 와~”

신혼 여행 다녀오고 김제 시댁으로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와 함께 신행길 오를 때 우리 할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장남의 첫 손녀라 어릴 적 할아버지 무등도 많이 타고 자랐다.

친정엄마가 동생들 낳을 시기가 되면 고모들 손에 이끌려 단양 할아버지 댁에서 한 두달 지내었다. 대구 엄마가 보고 싶기도 했지만,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이 커서 딱히 대구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4살 5살짜리가 엄마 떨어져 할아버지 댁에서 한 두달씩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신통 방통한 일인 것 같다. 그 시기 시골에서는 나로 인해 할아버지는 술 마실 핑계가 한 가득이셨다. 힘든 농사일 마치시고, 읍내 나가서 술 한잔 걸쳐도 꼭 세꼬미라는 야쿠르트를 사가지고 집으로 돌아오셨다. 핑계는 손녀에게 야쿠르트를 사다준다는 거였다. 그런데 야쿠르트는 챙기셔도 할아버지는 당신의 지게를 술 마신 상회 평상 곁에 늘 두고 오셨다. 그러면 나는 다시 할머니 손 잡고 할아버지 지게를 찾으러 갔었다. 그 사이 술에 잔뜩 취하신 할아버지는 샘물이 퐁퐁 쏫아나는 샘터에 비닐팩 채로 묶인 5개들이 한 줄짜리 야쿠르트를 시원해지라고 샘에 담가두시곤 툇마루에 대자로 누워 주무셨다. 당신 정신이 술로 인해 혼미해져도 손녀에게 줄 야쿠르트는 어찌되었건 챙기셨다.

그리고 시골 장날이면 꼭 주황색 바탕에 알록 달록한 꼬마 고무신을 사다주셨다. 시골에 오면 고무신 신는 거라시며 쿠션감 전혀 없는 고무신을 내발에 신겨 주셨다. 이때부터 나는 신발이 좋았는지 모른다. 색색별 고무신을 다 사다 주셨으니 말이다.

그런 할아버지가 나는 좋아서 고추밭에 나가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망태들고 따라 나섰다. 5살짜리 손녀가 얼마나 돕는 다고, 새끼줄 꼬아서 손녀 맞춤 망태를 만들어 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자 아이의 가방 좋아하는 본능을 읽어주신 것 같다. 고추밭에서는 고추를 따는 건지 뺀질 뺀질 노래부르며 할아버지, 할머니를 귀찮게 하는 건지 “할매~목 말라~, 할배~ 배고파~ 나 춤 추까? 내가 헬로우 헬로우 미스터 몽키~ 노래 불러볼까?” 라며 재잘 재잘 두분을 귀찮게만 해드린 기억뿐이다. 겨울이면 비닐하우스에서 빵개살이(소꿉놀이)를 한다고 돌가루 만들어 놓구선 밥 지었다고 안채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를 고래고래 큰 소리로 불러서 드시게 했다. 그러면 우리 할아버지는 손녀가 밥도 짓는다고 동네 방네 자랑하셨다.

2년 전 할머니 돌아가실 때부터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오늘 부고를 듣는데 그 충격의 데미지가 서서히 오고 있다. 그리고 12년 전 첫 손녀 시집 가던 날 전라도 사돈들이 대구 도착했다는데 혼주가 빨리 예식장 가야한다며 작은 아버지들께 그리 잔소리를 했다고 하셨다. 그리고 웨딩드레스 입은 날 보고는 “왜 이렇게 못났누~! 누가 이런 못난이를 델꼬 가? ” 그래놓구선 “시집갔는데, 사돈이 너 구박하거든 얼른 할애비 한테 와~”이러신 할아버지...

할머니는 천국으로 인도해드렸는데, 할아버진...이번 추석때 친정 엄마가 단양에 들렸다가 수원가라는 말에 “엄마~  나 피곤해~ 나서방에게 미안하고~ 아들 딸들 있는데 왜 맨날 손녀들보고 챙기라고 해?”라는 불효를 저지르고 말았다. 올 설에 그나마 혁이 누리 데리고 다녀온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나랑 둘째 결혼식 때까지는 정정하게 다 참석하셨는데, 셋째 윤정이때 부터는 참석을 못하셨다. 그래서 잔치 마치고 나서 다들 할아버지 댁에 들려 함께 예배드리고 대문 앞에서 사진찍은게 두 분과 함께한 마지막 사진이 되었다. 시집갔었도 더 자주 찾아뵐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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