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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 은 작가 Apr 24. 2016

할아버지의 언어와 손녀의 언어

소통의 오해

"우리 강아지 올해 몇 살이지?열살은 됐나?"

"저 4학년이라니깐요. 열 한 살!

"아이고, 열 한살이면 밥 지어 먹고 다녀도 되네! 이제는 강아지가 밥 지어 할아버지 밥 차려주면 되겄구나!"

아버님과 딸 아이의 대화는 늘 "밥"으로 종결된다.

몇 살이냐고 물은 다음 "밥을 지어야한다"고 마무리가 되니 "밥"으로 종결되는게 맞다. 아버님의 속 뜻은 막둥이의 막내가 벌써 열 한살이 된게 기특하고 신기해서 자꾸 말을 거는 것인데, 어린 딸아이는  자꾸 밥 지으라고 일 시키는 할아버지께 섭섭함이 생겼다 한다.


아침에 딸아이의 머리를 빗으로 빗어주는데, 아이가 그 섭섭함을 뱉어냈다. 그래서 아버님의 언어를 통역해줘야 겠다 싶어서, "할아버지가  밥 지으라고 하는건 그만큼 네가 큰게 신기해서 자꾸 말 붙이시는거야~~너랑 대화하고 싶어서. 그러니까 짜증 내지 말고 네~~  밥 지어 드릴께요.해봐."라고 아버님의 언어를 풀이해줬다. "아니, 엄마! 너 이제 많이 컸구나! 하시면 되지 왜 자꾸 밥하라고 해. 요즘 누가 내 나이에 밥을 한다고. 속상해."

그러고 보니 아버님은 에둘러표현하는 우리네 표현 방식대로 손녀에게 '너 참 많이 컸구나~'를 표현하셨고, 딸 아이는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는 서양식 표현 방식의 언어로 받아 들인거였다.

에둘러표현하고 때론 직접 표현하기도 하는 우리 세대는 아버님 세대와 우리 아이들 세대의 언어통역가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적 나라면 " 할아버지 밥 지어 드릴께요.~"하며 어른 취급해주시는게 신이 나서 어깨 힘 주며 상기된 목소리로 대답했을 텐데...

딸 아이에겐 "밥지어도 된다"는 아버님의 칭찬이 일 부리는 할아버지로 입력이 되다니 끼인 세대에서 느끼는 속상함에 다시 펜을 잡았다.

일제시대를 겪고, 6.25를 겪으신 아버님은 여전히 "밥"으로 대화 소재를 삼으신다. 인생에서 중요한게 "밥"이라고 생각하시는게 언어습관에 스며들어있기 때문인것 같다. 그래서 "밥"으로 작은 아이에게 말을 걸었던 것인데 "밥"이 아직 중요하지 않은 작은 아이는 이제 할아버지의 "밥"이야기에 그만 폭발하고 만 것이다. 자식 교육 잘 못 시킨 것에 대해 자책을 하다가 우리 3대의 언어를 정리 할 필요가 있겠다싶어 아버님과도 이야기하고 딸아이와도 이야기를 했다. "밤새 안녕하셨어요?"가 전쟁을 겪은 아버님 세대의 인사말이었다. 혹은 "식사는 하셨어요?"가 인사말이었다. 밤새 상대의 집안 식구들에게 아침까지 별일없이 안녕한지의 인사말이었고, 끼니를 거르지는 않았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을 인사로 나누었던 아버님 세대의 인사 이야기!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집에 밥이 없어도 라면과 빵 거기다가 이젠 2분이면 되는 즉석밥까지 사방에 먹을것으로 둘러싸인 세대이다.

아버님의 "밥"은 생명이었고, 그 "밥을 짓는다"는 것은 성인식에 해당하는 행위였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에게 "밥"은 생명이 아니라 하루 일과 중 중요하지 않은 일이요,  아이들에게 성인식은 부모의 동의없이 사이트에 가입할 수 있는 것이 성인식에 해당하는 행위이다 보니 소통의 오해를 가져온 것 같다. 세대 별 언어 소통은 그렇다면 어떻게 풀어가야 할까? 매번 우리 부부가 통역을 해야 할까? 아닐 것이다. 언어는 삶이므로 아버님과 아이들 즉 두세대가 지속적으로 공유할 시간과 장소가 있으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할 통역 센스가 생기지 않을까 한다. 그렇다면 두 세대의 만남을 주선하는게 우리 부부가 해야 할 일이지 않을까?

"아버님 다음 달에도 김제에 내려오겠습니다."라는 말에 아버님은 다시 "뭣하러?"하셨다.

그런데 우리 부부는 안다. "그래? 진짜 아이들 데리고 올래?"라는 확인하는 말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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