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자의 달리기

덴버에서

by 래미

해 뜨는 시각이 빨라져서 여섯 시 이전에 나가지 않으면 뜨거운 볕을 견디며 달려야 하는 요즘입니다. 그걸 알면서도 왜 몸은 빠릿빠릿 일어나 지지 않는 걸까요. 머리가 아는 일이 손끝, 발끝까지 전달되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먼 것 같아요. 집 밖을 나가면 해가 뜬 지 이미 한 시간이나 지난 상태예요. 땅은 한껏 데워졌지만, 다행히 고산 지대 특유의 건조한 바람이 곳곳에서 불어옵니다. 그럼에도 입안이 바짝 마르는 갈증은 어쩔 수 없어요. 한국에서 달릴 땐, 갈증을 거의 느끼지 못했는데 이곳에선 조금만 달려도 머릿속이 온통, 벌컥벌컥 마시고 싶은 물 생각으로 가득 찬답니다. '나그네 외투 벗기기’ 내기를 하던 해와 바람이 ‘래미 물 먹이기’ 내기라도 시작한 걸까요.


오늘은 인터벌 연습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연습을 위해 타이머 앱을 하나 깔았어요. 6분 워밍업, 2분 운동, 1분 휴식을 10회 반복으로 설정할 수 있는 앱이에요. 이전엔 핸드폰을 들고 달린 거리를 보면서 연습했거든요. 그랬더니 집중도 안 되고, 전력 질주를 하기도 어려웠어요. 타이머 앱이 ‘준비’, ‘운동’, ‘휴식’ 이렇게 음성 안내를 해 주는 덕분에 연습하기가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6분 워밍업 구간이 끝나고 ‘삼, 이, 일, 운동!’ 전력 질주의 시작을 알리는 음성 안내가 들렸어요. 상체를 앞으로 조금 더 기울이고, 다리도 더 빨리 굴려봅니다. 무릎도 배꼽에 닿는 기분으로 올려 보고요. 팔과 다리가 교차하도록 골반을 밀고 팔 치기도 적극적으로 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햄스트링을 쭉 펴는 느낌으로, 뒤로 뻗은 다리가 바닥을 힘껏 미는 데 집중해요. 이제 팔, 다리, 몸통 모두 전력 질주 모드가 되었습니다. 체감 속도가 올라가요. 힘들다는 생각과 이렇게 빨리 달릴 수도 있다는 생각이 겹치기 시작하고요.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욕심과 욕심 때문에 보폭을 키우거나 템포를 잃지 않도록 단속하려는 마음이 싸우기도 합니다. 2분은 생각보다 길고, 그 시간 내내 전력 질주하는 건 역시 어렵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기 마련이고 ‘나는 곧 쉴 수 있어!’ 이렇게 버티다 보면 휴식을 알리는 음성 안내가 나옵니다. ‘삼, 이, 일, 휴식!’ 이 순간이 얼마나 좋은지요.


그런데 오늘은 첫 전력 질주 구간을 마치고 휴식 구간이 시작되었을 때, 기분이 영 좋지 않았어요. 제 거친 호흡 소리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날에도 분명 헉헉거렸을 텐데, 오늘따라 유난히 제 숨소리가 거칠게 들렸거든요. 선물 님도 거친 호흡 소리가 싫으신가요? 저는 저의 헉헉대는 소리가 무척 싫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제가 달리는 곳은 고도가 높기 때문에 산소 밀도가 낮아요. 빠르지 않게 달린 덕분인지 치동천을 달릴 땐 숨이 차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여기선 비슷한 페이스로 달려도 숨이 턱끝까지 차 올라요. 그런 저의 모습이 싫습니다. 바닥이 드러난 느낌이랄까요. 조급하고 안절부절, 불안해 보입니다. 힘든 걸 과장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짐승이 된 것도 같아요. 유난스럽고 비정상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저는 저의 거친 숨소리가 왜 이렇게 싫은 걸까요.


아무렇지 않게 보이고 싶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을 지나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일을 할 때도, 평정심을 잃지 않고 우아하게 지나가는 사람이고 싶어요. 제가 저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그렇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모범적인 분들이셨어요. 아빠는 누구보다 성실하셨고 때가 되면 가족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는 가정적인 분이셨죠. 엄마는 천사가 따로 없는, 친절하고 잘 웃는 분이셨어요. 오빠와 제가 힘들까, 닳을까, 애지중지하신 건 물론이고 집 안에 먼지 한 톨 없게 하던 깔끔한 분이셨죠. 주변 사람들은 우리 집을 화목한 가정의 표본이라고 했어요. 저와 오빠도 큰 말썽 없이 자라면서 그 이미지는 점점 더 강화되었습니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 기억하시죠?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한 이유로 행복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우리 집은 대외적으로 행복한 가정이었어요. 멀리서 봤을 때 비슷한 모습으로요.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이 각각의 이유로 불행의 모습을 안고 있는 것처럼 우리 집도 그랬습니다. 제가 예민했던 것인지, 두 모습의 간극을 받아들이는 게 꽤 힘들었어요. 사람들은 우리 집을 행복의 표본이라 하는데, 정작 그 안에 있는 저는 행복하지 않았거든요. 손쓸 수 없는 거짓말에 연루된 기분이었어요. 당연하게도 그 거짓말을 벗어날 기회도, 용기도 없었고요. 행복한 가정의 아이인 척해야 했습니다. 마치 정상인 것처럼요.


새로운 자리에 가면 정상의 기준이 무엇인지부터 살피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 기준을 알기란 얼마나 어렵던지요. 겨우 알아낸다 해도, 기준에 맞는 사람이 되기란 불가능해 보였어요. 제가 선택한 방법은 평정심을 유지한 듯 가만히 있는 것이었어요. 저를 비난해도, 가만있기. 제 것을 빼앗아도, 가만있기. 그것도 하나의 훈련이었을까요. 실제로 저는 화가 잘 나지 않습니다. ‘화’라는 감정을 잃어버린 것 같아요. 화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감정이라고 하던데 말이죠. 정상으로 보이기 위한 저의 태도는 시간이 갈수록 견고해졌습니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만난 관계가 흔들리는 순간이 오면 저는 한 발짝 물러서 저를 숨기는 걸로 평정심을 유지했습니다. 저를 드러내지 않는 게 정상이라는 감각으로 자리 잡았어요. 어쩌다 가끔 제가 드러나면 들킨 기분이 되어요. 좌불안석 어쩔 줄 모릅니다. 정상인 척 숨어 있다가 작은 숨소리에 모든 걸 들킨 것처럼요.


고도가 높은 콜로라도에서 전력 질주를 하는데 헉헉대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그게 더 자연스러운 ‘정상’에 가까운 모습일 텐데요. 저에게 각인된 ‘정상 = 평정심’이라는 이미지가 전력 질주를 하는 순간에도 작동한 것 같았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그 순간에도 정상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저에게, 얕은 연민이 드는 순간이었어요.


‘삼, 이, 일, 운동!’ 두 번째 전력 질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엔 대놓고 소리 내며 달려보았어요. “헉, 헉, 허어어어 억!” 언제부터 어떻게 갇히게 된 ‘정상 감옥’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또 어떤 정상의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애쓰게 될지 모르겠지만, 힘들 때 ‘헉헉’ 소리 정도는 낼 수 있겠다. 그 정도는 해도 된다. 좀 들켜도 괜찮다. 그런 허락을 저에게 해본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숨은 찼지만, 쾌감은 있던데요. 이제야 한 꺼풀 벗었다, 하는.


세상엔 대문자의 일과 소문자의 일이 있다고 해요. 역사적으로 기록에 남을 만한 굵직한 사건이 대문자의 일일 겁니다. 대문자의 흐름을 피할 길은 없을 테고요. 지금, 이 순간에도 그 흐름을 타고 우리는 어디론가 가고 있을 거예요. 선물 님은 그 흐름에 기민하게 반응하시는 것 같아요. 그 점이 늘 부럽고, 배우고 싶은 모습이지요. 저는 아직 그럴 깜냥이 못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인식하고 행동할 수 있는 건, 소문자의 영역이라 생각해요. 눈앞에 있는 사람이 나와 비슷한 - 정상인 척하고 싶어 하는 - 간절함을 가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 그래서 보이지 않게 애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놓지 않으려고 해요. 정확한 이유나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내가 모르는 그만의 고군분투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요.


‘친절하라. 당신이 만나는 사람 모두 각자의 전투를 치르고 있다.’ 이걸 안다고 해서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는 친절이란 ‘다정함’을 건네는 일인데, 그러려면 용기가 얼마나 필요하던지요. 거절당할 용기가 필요하지 않나요. 그런 용기가 아직 부족한 저는 플라톤의 말처럼 제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저 '측은지심'이 생겨요. 그도 나처럼 애쓰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린 모두 얼마나 연약한지요. 그 연약함이 우리를 연결한다고 생각해요. 그 가느다란 연결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확장되길 바랍니다. 누군가 나의 기준을 벗어난 행동을 하더라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거라 짐작해 보기. 다정하게 손은 못 내밀어도, 거칠게 밀어내진 않기. 이런 게 제가 할 수 있는 소문자의 일인 것 같아요.


‘삼, 이, 일, 운동 완료!’ 드디어 인터벌 연습이 끝났습니다. 가장 기쁜 순간이죠.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된다! 이제 걸을 수 있다! 아무도 걸으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는데, 우리는 왜 달리는 동안 이런 허락을 기다리는 것만 같을까요. 왜 그 허락을 받는 순간 이토록 기쁠까요. 여기에도 혹시, 보이지 않는 기준이 있는 건 아닐까요. 그런 게 있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거친 숨을 쉬며 달렸고, 달리고 있고, 달릴 테니까요. 어디에서 얼마나 빨리 달리건, 우리 모두 각자의 숨을 쉬고 있다면 어쩐지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어쩌면 달리기도 제가 할 수 있는 소문자의 일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어요.


턱끝까지 차오른 숨을 가라앉히려고 동네 한 바퀴를 걸었습니다. 해는 더 뜨거워졌고요. ‘오늘도 더 새까매졌겠구나.’ 생각했습니다. 제가 놀랄 만큼 까맣게 수축해 돌아가도 비정상으로 보진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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