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正常)의 달리기

동탄에서

by 래미

분명히 저 앞에 있는 다리를 지나가야 1킬로미터인데, 1킬로미터를 달렸다는 이른 알람이 울립니다. 달리기 앱이 또 고장이 난 것입니다. 달린 거리는 7.2킬로미터인데 8.4킬로미터로 찍혀 있으니 달리기 속도는 도저히 달성할 수 없는 엄청난 기록으로 남아버렸습니다. 앱을 지우고 새로 설치해 보고, 발리에 갔다 와서 앱 위치 기록이 정상으로 돌아왔던 경험을 떠올라 비행기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바꾸었다가 되돌려봐도 소용이 없더라고요. 제주행 비행기라도 타러 가야 할까 봅니다.


달리기 앱이 남긴 기록을 보면서 한숨이 나왔습니다. 안정된 호흡으로, 일정한 거리를, 일정한 속도로 달리지 못하는 저에게 매일매일 달리기 기록의 변화는 컨디션에 따른 달리기 능력을 가늠하는 확실한 기준이기 때문인데 말이죠. 누가 봐도 달성 가능할 리 없지만 달릴 때마다 쌓이는 거짓 기록을 가지고 나눗셈과 뺄셈을 하며 진짜 내 기록이 얼마인지를 가늠해야 하는 수학적 수고에 재미와 불평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생각보다 암산으로 해야 하는 이 계산이 어렵던데요?)


지구 1/6의 중력인 달에 가서 몸무게를 재면 얼마인가를 묻는 문제를 과학 시간에 풀었던 기억나실 겁니다. 만약 정말로 인류가 달에 가서 살게 된다면 달 인류의 몸무게는 지구 기준으로 기록해야 할까요? 달의 기준으로 기록해야 할까요? 몸무게에 따라 옷, 의료 처방, 엘리베이터 수용인원마저 달라지는 데 이중 국적을 가진 사람들처럼 이중의 무게로 살아도 될까요? 몸무게뿐만 아니라 나의 진짜 고유한 어떤 것들은 무엇으로 측정될 수 있을까요. 생각의 무게 값, 진실과의 거릿값 등 측정 결괏값이 기준에 따라 달라진다면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오류를 보이는 달리기 앱을 보며 생각해 봤습니다.


자주,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을 나눕니다. 다르게 측정된 달리기 거릿값을 보며 '이건 비정상'이라는 자동적 판단과 동시에 기준이 되는 정상치 범위에서 벗어난 기록을 보는 것에 대한 불편감이 느껴집니다. 어디 달리기만 그러할까요. 나의 선택이 곧 남의 평가로 이어지는 심리가 신경망처럼 퍼져 작동하는 이 비교 경쟁 세상에서 통계적 평균치에서 멀어질수록, 사회 일반통념 기준에서 동떨어져 갈수록, 기대하는 작동 능력에 넘치거나 부족한 상태에 접어들수록 그것을 비정상으로 여겨 그 상태에 있는 자신을 스스로 낙인찍고, 불편한 타인의 시선도 받아야 합니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 인식을 측정하는 '세계가치조사' 결과에 따르면 '다른 인종을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럴 수 없다'라고 답한 한국인의 응답률은 30%가 넘었습니다. 드라마에서도 우리는 주인공의 논리와 말과 행동에 더 쉽게 공감하게 됩니다. 주인공과 대척점에 선 조연의 말과 행동에 악인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립니다. 어떤 작가의 표현대로 게으른 사유죠. 악인의 처지에서 보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다른 관점에 이입해 보려는 노력의 틈을 내려고 하지 않게 됩니다.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기준치, 모양새 훌륭한 근거로 무장해 어긋남이 없어 보이는 기득권의 주장, 드라마나 영화 속 주인공의 관점에 따른 말과 행동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우리는 거기에 맞춰 생각하게 되고 그 알고리즘이 단단한 접착제가 되어 나에게 고정관념을 단단하게 붙입니다. 고정관념에서 굳어진 것들이 동심원을 이뤄 힘을 발휘하게 되면 그 동심원 밖은 자동으로 주변부가 되고 중심으로 힘이 쏠리면서 편견과 차별이 발생합니다. '노동 환경 개선 조건'에 관해서 경영자들에게 물으면 연구 조사라고 생각하지만, 현장의 노동자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그것은 정치적 행위라고 구별 지어 생각하는 것, 장애에 대한 비합리적 편견이 작동해 서울 서진학교가 좌초되었던 일 등이 그런 예가 될 수 있겠네요. 물론 어떤 기준치가 되는 힘이나 행위 정도 이상이 가해지면 손상이 오거나, 질병 발생이 우려되는 임계점으로서의 기준마저 무시하고 기준이 없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생각이 이렇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 보니 달리기 앱이 측정하는 기록값이 달라졌다 한들 제가 다르게 생각해야 할 이유가 없구나 싶었습니다. 내가 우주에서 달린다면, 사막에서 달린다면 그 기록값은 또 달라질 테니까요. 그러니 4분대 기록이든, 5분대 기록이든, 어떤 값으로 기록되든지 그날그날 달리면서 느꼈던 몸의 컨디션, 발과 무릎에서 오는 통증, 허벅지와 종아리의 조임, 뇌가 느끼는 신선함, 생각의 어지러움 등등 성찰을 놓치지 않는다면 내 달리기는 의미가 쌓여갈 것이고, 달리기 속도 역시 누적 기록값을 통해 능력치를 가늠해 보면 될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수학적 수고의 불편한 재미가 사라졌지만 '의미'를 발견한 순간이었습니다. 어떤 믿을만한 기준치가 없으니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는 상대주의가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는 철학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지나친 하나의 기준에 매여서 세상을 가늠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는 일, 숫자가 나타내는 지표를 절댓값으로 보지 않으려는 노력도 '함께 살아가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필요한 삶의 공부가 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과 세상을 판단하는 가늠자가 딱 하나인 사람의 세계는 얼마나 단단하고, 건조하게 말라 있을까요. 그런 세상에서는 나와 타인이 함께 생장, 생육될 가능성이 적습니다.


평지에 비해 낮은 밀도의 공기가 머무는 해발 1,800미터 콜로라도는 메이저리그 투수들에게는 '투수들의 무덤'이라고 불립니다. 같은 힘으로 맞은 공이라도 더 멀리 날아가 홈런이 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또한 콜로라도에서의 달리기 역시 치동천 평지와 달리 더 많이 힘들고 숨이 빨리 차오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콜로라도의 달리기를 비정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되겠지요. 다른 달리기일 뿐입니다. 대신 산소 밀도가 더 높은 치동천에서 달리게 되면 그간 단련된 심장과 폐의 기능으로 씽씽 날아가겠죠? 앱이 측정하는 숫자 값에 너무 매여 비정상 달리기였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달리는 일에, 달리는 중에 일어나는 몸과 생각의 흐름과 변화에 더 집중해야겠습니다. 가요를 썩 좋아하지 않는 제가 숫자가 없어진 사람들의 사랑과 약속을 노래한 '10분이 늦어서 이별하는 세상'이란 노래가 특별하게 들린 이유가 이런 생각과 만나기 위한 인연의 복선이었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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