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고1에서 고2 올라가는 겨울 방학이었다. 아빠는 독서실에 가는 나에게 어디로 드라이브를 가자 한다. 공부는 해야 하는데 아빠가 가고 싶나 보다 해서 몇 시간 동안 바람 쐬고 왔던 기억이 있다. 10년도 훨씬 더 된 이야기인데, 오늘 유퀴즈를 보다가 왜 아빠가 드라이브를 가자고 했는지 서른이 넘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유퀴즈에 서울대에 합격한 배우 정은표의 아들이 나왔다. 정은표는 수험생인 아들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은 그냥 지켜보며 드라이브를 시켜주는 일이었다고.. 정은표는 힘들어하는 아들을 위해 머리를 식혀줄 수 있는 그 어떤 소극적이지만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서포트를 했던 것이다. 오늘 운동을 하다 아주 먼 과거의 나와 아빠가 보였고 그 배경은 눈이 한참 쌓인 송도 LPG기지였다.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왜 아빠가 나에게 드라이브를 가자고 했는지, 정말 아빠가 가고 싶어서 그랬던 것일지. 10년이 훌쩍 넘어 직장 생활하고 있는 나는 이제야 이해가 되었다.
나만은 안 걸릴 줄 알았던 코로나를 피하지 못했고, 제대로 피하지 못한 나는 지난주 며칠을 시름시름 심하게 앓았는데 아빠는 내 목소리가 범상치 않다 느꼈던 모양이다. 서른 넘은 딸에게 전화하자마자 힘내라고 크게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