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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시카 Feb 12. 2022

열정의 도시 나폴리로 가다!

홈스테이 가족과의 첫 만남, 바닷가 드라이브, 그리고 평화로운 저녁.

하이힐을 신은 것 마냥 유달리 높았던 고속버스였다. 짐을 맡기고 세 칸을 걸어 올라가면 또 의자에 타려고 한 번 더 올라타야 했다. 의자 자체도 높게 되어 있어 키가 작은 나는 어쩔 수 없이 어린아이처럼 발이 동동 뜬 채 창 밖을 구경했다. 


창 밖을 본 세상은 도착한 첫날에 봤던 한밤 중의 도시와 또 사뭇 달랐다. 화창한 아침이었고, 여전히 초록빛으로 물든 산과 파란 바다...라고 하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고속도로로 쭉 달리느라 바다는 못 봤다. 어쨌든 생각보다 한국처럼 산이 많이 보였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장장 3시간에 걸쳐 버스를 타고 온 나폴리는 정말 남쪽의 나라답게 조금 더 정열적이고, 조금 더 거칠고, 조금 더 색채가 다채로웠다. 도시와 도시 사이 한적한 시골을 벗어 나와 드디어 나폴리의 시내에 도착했는데, 누구 할 거 없이 차 경적을 울리며 로마보다도 더 자주 서로의 안부를 묻는 바람에 귀가 좀 많이 따가웠다. 건물들은 고목의 나이테처럼 오래된 나폴리 역사의 전통미를 뽐내고 있었으며, 특히 아파트 베란다마다 형형색색의 각종 이불과 옷들이 널려있었는데, 그 옷들을 보고 있자니 남쪽 사람들은 대체로 북쪽보다 더 화려한 색깔을 입는 것을 선호한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홈스테이 부모님 친구분들께서 정류장까지 데리러 와주셔서 편안하게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워낙에 반갑게 맞아주시기도 했었고, 오기 전부터 서로 알고 지낸 지 꽤 된지라 예상외로 어색하지 않았다. 좋은 의미로 어린 시절 90년대 한국으로 타임머신 타고 다시 돌아 간 느낌이었다. 빨래 게다가 마주치면 서로 인사하거나, 종종 집에 초대해서 커피 한 잔을 나눠 마실만큼 이웃 간의 정이 두터웠고, 처음 만나는 사이여도 누구 할 것 없이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바로 친해질 수 있는 따뜻하고 포근한 동네였다. 


아무래도 이탈리아어를 모르니까 집에서 대부분은 가족끼리 서로 대화하는 걸 듣고 혼자 멋대로 해석하다 간혹 궁금한 점이 생기면 친구들을 통해 의사소통을 했다. 이번 저녁에는 근처 바닷가에 다 같이 놀러 가자고 제안하셔서 흔쾌히 승낙을 했다. 



대망의 저녁이 되고, 다시 그 픽업해주신 친구분들과 함께 홈스테이 아주머니, 친구 그리고 나까지 총 다섯 명이 포실리포 바닷가로 구경하러 갔다. 아쉽지만 아저씨는 일 때문에 갈 수가 없었고, 친구 누나는 졸업 전 마지막 시험공부하느라 바빴다. 캐나다의 저녁에 너무 적응돼버린 바람에, 9시가 넘은 밤에도 가게들마다 불빛이 켜있고 삼삼오오 모여 바닷가를 걷는 사람들을 보며 살짝 문화 충격을 받았다. 친구가 놀란 나를 보더니 원래 이탈리아인들은 저녁을 8시에서 10시 사이에 먹기 때문에 밤에도 사람이 많다고 친절히 설명해 줬다. 



오랜만에 맡은 바다 향기는 참 시원했다. 사실 너무 시원한 나머지 조금 쌀쌀해서 혼이 났다. 홈스테이 가족분들이 환영한다고 귀여운 하얀 나시 원피스를 선물로 사주셨는데, 너무 기쁜 나머지 날씨도 잘 알아보지 않고 달랑 하나 입고 갔다가 그 사달이 난 것이다. 추운 건 추운 거고, 몸에 온기라도 올리고자 무작정 언덕을 걷기 시작했는데, 동그란 보름달이 잔잔하게 바닷가를 비추고 있었다. 그 광경이 바닷가 동네의 평화로운 분위기와 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워낙에 잠귀가 밝은지라 스스로도 생판 남의 집에 잘 수 있으려나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괜한 기우였다. 긴장이 풀어지고 여행의 피곤함과 시차 적응으로 인해 체력의 한계에 다다른 나는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친구의 침대에 눕자마자 또 기절하듯이 잠들었다. 내심 여행 오기 전까지는 불면증으로 몇 년을 꽤나 고생한 터라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제 때 잠들 수 있어서 너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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