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만하면 돌아오는 나... 하하... 바쁘게 현생을 살다 보니 본의 아니게 몇 달에 한 번씩 돌아오게 된다.
한 번 쓸 때 에세이처럼 써야 되니 스스로 부담이 되어서 요번에 리뉴얼한 스레드도 알아봤는데 맨 험담 아니면 저격. 본인 PR 아니면 광고가 끝. 읽다가 급 피곤해져서 다시 브런치로 왔다.
캐나다와 이탈리아. 한국 태생으로써 같은 서구문화니 비슷하겠거니 했는데 웬걸. 은근히 다르다. 15-20년 정도의 케케묵은 라때 얘기를 하자면 약간 한국과 중국에서 살 때 서로 같으면서도 많이 달랐던 기억과 비슷하다. 사람들 겉모습만 비슷하지 두 나라 간의 생활환경, 식습관, 문화 등 다른 것처럼, 캐나다와 이탈리아 생활 사이 묘한 이질감이 느껴진다.
캐나다는 신생 국가이다. 이탈리아나 한국의 긴 역사에 비하면 명함을 못 내밀 정도로. 아무래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일궈낸 국가이다 보니, 규칙을 따르는 행위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
무슨 뜻이냐면, 내가 캐나다에 이민 왔을 때, 주위에 수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많은 Karen들이 있었다.
여기서 Karen이란? 보통 인종차별적인 중년의 백인 여성을 지칭하긴 하는데, 요즘은 더 넓게 쓰인다. 편견에 휩싸여 있으며, 문화의 다양성을 이해 못 하고(하려는 생각조차도 못함), 본인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하며 낄 때 안 낄 때 구분 못하고 공격적으로 남들을 가르치려 하는 차별주의적인 인간들을 지칭한다.
이민자로서 캐나다에 잘 정착하고 살려면, 나 자신을 자르고 욱여넣어서 어떻게든 캐나다의 규칙에 맞게 살아야 됐다. 그렇지 않으면 미개한 이방인 취급을 당했다.
나같이 학창 시절을 보낸 1.5세대는 물론이고, 주위를 봤을 때 혼혈인이나 2세대 조차도 (의사소통 문제없어서 어릴 때 말고는 겉으로는 차별하진 않겠지만) 본인의 정체성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아직 캐나다의 '우리' 범주에 들기 힘들다. 이민 3-4세대 정도에 정말 겉은 아시안이지만 속은 백인 캐나다인처럼 (우리끼리는 속되게 바나나라고 부른다.)하고 다녀야 "그래, 너는 우리처럼 문명인이구나"라고 취급하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요즘에는 그래도 아시안 아메리칸/캐네디언 입지가 (특히 한국인들이)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넓고 깊게 뿌리 잡아가는 중이라서 내 후대 언젠가는 저 나라에 속해있겠구나 느낌이 들지만...
이탈리아는 나뿐만 아니라 내 후대가 아무리 열심히 자르고 욱여넣어도 이탈리아의 '우리' 범주 근처에도 들을 일은 없겠구나 싶다.
마치 한국 미디어에서 요즘 한국에 사는 혼혈인, 입양아, 이민자에 관심이 뜨겁지만, 막상 인터뷰를 하면 그들이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인생 반 이상을 한국에서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아도 여전히 "한국말 정말 잘하시네요" "어디서 왔어요?" "외국인인데 어떻게 이런 한국 음식도 먹어봤어요?" "본인 나라의 말 좀 해봐요" "발음 너무 웃겨요" 등등 따위의 차별적인 말을 서슴없이 해대고 그게 잘못된 말인지도 모르는 사회적 분위기랄까.
지금은 그 옛날 영광을 잃은 지 오래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콧대 높은 이탈리아다. 찬란했던 중세 문화유산 관광으로 지금까지도 국민을 먹여 살리는 이 나라는 규칙보다 그 긴 역사 속 쌓아온 관습이 훨씬 중요하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이탈리아와 한국이 더 비슷하다고 많이 느꼈다.
둘 다 역사가 깊은 만큼 규칙보다 관습이 더 중요하고, 외국인에 대한 인식도 비슷하고, 다른 나라들에 비해 친절하지만 무표정한 표정 등 무례할 때가 있고, 캐나다처럼 퍼스널 스페이스에 대한 문화가 없고, 직접적인 화법에,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를 신성(?)하게 여기고, 남녀모두 꾸미고 잘 차려입어야 매너라고 생각하고, 정열적인 사랑을 선호하고, 다혈질이며, 흥이 많고 열정적이다.
유구한 역사를 가진 한국과 이탈리아지만, 한국은 미래 지향적이고 변화에 초점을 둔다면, 이탈리아는 전통과 역사를 잘 유지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문화조차도 빨리빨리 바뀌는 한국의 1년이 마치 느릿느릿한 이탈리아의 100년과 같다.
흡사 몇 백 년 전에 타임머신을 타고 온 것처럼, 대부분 이탈리아 사람들의 생각에는 외국인이 이탈리아 사회에 속할 수 있다는 개념 자체가 아직 없는 것 같다. 이민을 왔던,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랐든 말든, 이탈리아인처럼 생기지 않았으면 모두 다 관광객 아니면 영원한 이방인인 것이다.
설사 이탈리안의 피를 이어받았다고 해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고 자라지 않고 이탈리아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 못한다면 (한국 사람들이 마치 재외국민을 검은 외국인이라 부르는 것처럼) 이탈리안 사람들은 그들을 진짜 이탈리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그전에도 앞으로도 그들의 '우리'에 속하지 않다 보니, 구태여 바꾸려고 하지도 않는다.
문화 차이를 겪을 때, 캐나다의 수많은 Karen들처럼 나를 밑도 끝도 없이 다그치고 본인들처럼 바꾸려는 게 아니라, 그냥 '얘는 외국인이니까 모르나 보네' 하고 그러고 넘어가며 끝난 적이 많았다.
단적인 예를 들자면, 캐나다에서는 내 한국이름은 캐나다 사람들이 발음하기 어려우니 영어 이름을 만들라고 권유받았고, 이탈리아에서는 한국 이름이 있는데 왜 바꾸냐고 오히려 나한테 되물어봤다. 그렇다고 그들이 한국어로 어떻게 발음하냐고 묻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자연스럽게 이탈리아 스펠링으로 부르기 때문에 내 한국 이름은 전혀 다른 이름이 되지만 나한테 그래도 괜찮은지는 묻지 않았다. 덧붙여 중국에서 살았을 때, 중국 이름이 없다고 하니 어느 날 갑자기 중국 선생님이 내 이름을 한자로 어떻게 쓰냐 물어보고는 네 이름은 중국어로 이렇게 부른다고 오히려 나에게 알려줬었다.
이렇게 이름 하나 가지고도 각 나라마다 외국인을 어떻게 다르게 대하는지 느낌이 오는가?
외국인을 대하는 자세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이탈리아는 Karen이 없는 것 같다. 이탈리아에서 살면서 캐나다였으면 고소당하고 컴플레인 들어왔겠다 싶었던 일들이 수도 없이 많이 목격했는데, 다들 (여행객을 제외한 외국인 현지인 모두 포함) 그냥 재수가 없었네-하고 끝내버리는 게 아닌가..?
문제는 분명히 있지만, 그 문제를 고치려고 하지 않는다. 문제를 인식하고 고발하는 과정조차도 굉장히 오래 걸리고. 흔적만 남은 그들의 문화유산처럼 고치지 않고 그냥 문제와 같이 살아가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