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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Sep 19. 2019

야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한 일비로소 늦은 저녁에 끝났다. 특근이 싫어진다. 멍 때리며 직장에 나왔다. 집에 도착하니 10시 30분이다. 방금 나는 돈을 벌었다. 가을 문턱을 넘어선 밤은 쌀쌀했다. 집 앞에 펼쳐진 공사장이 보였다. 내년이면 이 공사장도 저 멀리 보이는 화려한 불빛과 같겠지?


가족들은 모두 자고 있다. 나는 조심스레 아들방으로 들어갔다. 작은 책상에 앉아 서류를 챙겼다. 빠진 게 없는지 보고 또 본다. 잠이 오지 않는다. 읽던 책이 보였다. 읽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이내 생각을 접었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너무 멀쩡하다. 책이라도 읽을까...


궁금한 게 생겼다. 집안 대소사를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언제부터일까? 대학생? 결혼 후? 아들이 생기고? 딸이 생기고? 대학원을 마치고? 나이 40에? 중요한 시점을 나열해봤다. 하지만 원하는 답은 없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자. 나는 언제부터 무거운 짐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된 것일까?


내가 원하는 답은 보금자리다. 집이다. 집을 옮겨야 하는 시점은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고 걱정되기 마련이다. 신경 쓸게 많기 때문이다. 야밤에 잠을 청하지 못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지금이 그렇다. 그 이유는 뻔하다. 내 판단에 따라 가족에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이 야밤에 잠을 청할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닐까.


모든 가장이 다 똑같은 마음일 테다. 그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한다. 지친 몸을 이끌고 보금자리에 돌아간다. 가장의 무게 한 덩이는 보금자리에 대한 고뇌일 것이다. 옆 방에 가족들이 곤히 잠자는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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