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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Sep 15. 2019

달빛

그냥 밖으로 나왔다. 쌀쌀한 가을 저녁이다. 무심코 머리를 들었다. 저만치 아파트 건물 사이로 둥근달이 떠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 밝아서 눈이 부실 지경이다. 누군가 저 멀리 손전등으로 우리를 비추는 듯하다. 핸드폰을 꺼내 달빛을 저장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저녁을 밝게 비추는 달빛은 아름다웠다. 낮에는 미처 몰라봤다. 자세히 보니 먼 과거, 우주로부터 날아온 운석이 남긴 충돌 흔적은 사방으로 뿌려진 달빛과 같았다. 오늘따라 태양으로부터 반사된 그 빛은 더 밝았다. 문자 하나가 날아왔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연휴 잘 보내세요.”


이맘때면 비슷한 문자를 받게 된다. 허나 모두 같지 않다. 각기 마음의 빛이 다르다. 몇 년 전 수업을 기억하는 마음. 직장인이 된 지금과 수업에서 언급한 조언을 이해하는 마음. 올 한 해 첫 수업에서 느낀 기대감. 무엇보다 과거에 대한 마음이 작은 문자 남겨 있었다. 그중 유독 신경 쓰이는 문자 하나 있었다.


“매 학기마다 학생들의 말에 귀 기울여주시고 소통하는 강의 진행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이번 학기도 저희를 맡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달은 주기적으로 모양이 변하고 밝기도 달라진다. 무엇하나 똑같은 달빛은 없다.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특별히 달라지지도 않다. 우두커니 어두운 밤하늘에 한 줄기 빛으로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달빛이 느껴진다. 유독 신경 쓰이는 문자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변함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기준을 알게 된 걸까.


몹쓸 성격에 나는 애초부터 남의 말과 판단에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특히 수업이라는 시간 앞에서 더욱 그랬다. 오래 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내 흐린 초점에 사방으로 뻗은 달빛처럼 나도 흔들린다. 거만할 수도 있다.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도 내 기준을 의심하고 자문하고 있다. 그러나 달빛에 비춘 문자 하나로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 답은 내게 있는 게 아닐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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