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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Oct 02. 2019

17시간 나의 하루

지친 어깨를 이끌고 집에 왔다. 샤워를 하고 작은 방에 홀로 시계를 봤다. 12시가 막 지났다. 하루 17시간이 지났다. 에너지가 고갈됐다. 오늘 하루 도대체 어떻길래 이럴까? 돌이켜 생각해봤다.


오늘은 직장인에서 교수로 변신하는 날이다. 공식적인 휴가를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보냈다. 


아침 5시. 나의 사랑스러운 아내는 이미 출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향했다. 이윽고 나갈 준비를 했다. 오전 6시. 우리는 함께 지하철로 향했다. 6시 20분. 자리 하나 없는 전철에서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고 있었다. 약 50분이 지났다. 그녀는 가벼운 말을 남기고 먼저 내렸다.

“오늘 수업 잘해요.”


오전 8시 10분. 드디어 도착했다. 학교로 가기 전 편의점에 들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샀다. 찬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은 날씨다. 나는 자연스레 온기 있는 커피 용기에 손을 갖다 댔다. 교실로 가는 길에 복도에는 청소하시는 직원이 보였다. 가볍게 인사하고 교실로 들어갔다. 오전 8시 30.


어두운 교실을 밝게 하고 컴퓨터를 켰다. 가방에서 수업자료를 꺼냈다. 내 소중한 레이저 포인트도 꺼냈다. 누군가 인사를 한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전 8시 45분. 그 뒤로 학생들이 하나둘씩 밝은 교실로 들어왔다. 나는 컴퓨터 모니터에서 폴더를 열고 오늘 강의할 파일을 찾는다. 또 다른 학생이 인사를 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오전 9시. 계획한 수업을 시작했다. 왼손에는 학생 명단 종이를 들고, 오른손에는 레이저 포인터와 수성펜을 들었다. 강의 자료를 넘기며 끊임없이 말을 했다. 계속 말을 했다. 9시 50분. “잠시 10분간 휴식하겠습니다.” 학생들은 모두 일어나서 화장실에 가거나 졸린 눈을 비비며 책상에 엎드린다. 오전 10시. “자 이제 다음 내용을 이어가겠습니다.” 나의 손과 입은 바빴다.


12시 50분. 오전이 지나고 점심시간이다. 학생들과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수업을 종료했다. 쉬는 시간도 그렇지만 어느 한 학생이 내게 질문을 했고,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후 1시 10분. 교실에 홀로 남았다. 기운이 빠졌다. 점심을 먹을 힘도 없었다. 물론 입맛도 없었다.


이제부터 오후 3시간까지 수업은 없다. 약 2시간 동안 뭐하지? 어제는 늦은 저녁까지 특근을 했다. 몸이 무겁다. 코감기는 나을 듯 말 듯. 아무도 없는 옆방에 홀로 의자에 앉았다. 미리 준비한 빵과 우유를 마셨다. 배고픔은 금세 잊혔다. 졸린 눈을 비벼가며 내 손에는 쥐어진 논문 한 편을 보고 또 봤다. 우두커니 책상에 앉아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표시하며 읽었다. 눈꺼풀이 감긴다. 10분이라고 잠시 자고 싶었다. 마음은 이미 자고 있지만 몸은 그렇지 않았다.


오후 3시. 수업을 시작했다. 오전 수업과 동일한 내용이지만 요령이 생긴만큼 빠르게 진행했다. 몸은 지쳤지만 마음이 가벼워지는 이 느낌은 뭘까? 질문과 토의시간을 이어가며 오전보다 더 집중했다. 쉬는 시간이 두 번 지나갔다. 나는 학생들에게 물었다. “쉬는 시간을 가질까요. 이어서 빨리 끝낼까요?” 학생들은 주저 없이 말했다. “빨리 끝내주세요.”


오후 6시 15분. 수업을 종료했다. 수업 자료를 정리하고 컴퓨터에 꽂아진 USB를 뺐다. 잠시 한 학생이 다가와 질문했고, 1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또 다른 학생이 다가왔다. “교수님. 저희 논문 회의는 언제 할까요?” 나는 말했다. “10분만 도망갈 테니. 저 찾지 마세요.”


저녁 7시 30분. 학생 논문 지도를 끝냈다. 배가 고프다. 남은 에너지가 이미 소진된 것 같았다. 말할 기운은 이미 남아 있지 않았다. 학생 5명도 나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들에게 말했다. “저녁이나 먹읍시다.” 빠른 답변이 들렸다. “네 좋아요. 교수님”


우리는 작은 식당에서 오손도손 허기진 배를 채웠다. 맛난 음식이 아니다. 즐거운 행복이다. 술 한잔에 이야기 여러 잔이 오고 갔다. 논문, 학교, 인생 이야기 등. 나의 입은 지쳤지만 하염없이 그들에게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시간이 늦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로써 논문은 끝났습니다. 잘했습니다. 수고 많았어요.”


저녁 9시 30분.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홀로 전철을 탔다. 앉을자리가 있었다. 다행이다. 작은 시집을 꺼내 읽었다. 절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책을 덮고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음악을 들었다. 자장가가 따로 없었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11시 30분.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한 손에 들려진 손가방이 오늘따라 무겁게 느껴진다. 나의 에너지 0%를 확인하는 순간이다.


나의 하루 17 시간은 이렇게 지나갔다. 정말 알차게 보냈다. 모든 에너지가 빠져나간 기분이 들었다. 처음도 아닌데... 이제야 교수 명찰을 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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