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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Oct 06. 2019

작은 의자

작은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온다. 그들은 어설픈 인사와 동시에 아주 작은 의자에 앉았다. 작은 만남이 시작되었다. 약 5분이라는 시간은 누군가의 인생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짧은 만남은 두 가지 기억으로 남았다. 짧은 시간에 느껴지는 강한 인상이 그것이다. 반대로 찰나의 순간처럼 알지도 못하게 스쳐 지나가는 경우다. 오늘, 내게 고마운 인연들은 이렇게 길게 혹은 짧은 기억이 되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집에서 막 나온 듯 짧은 티셔츠와 청바지 차림, 미리 준비한 치마와 아침 미용실에 갔다 온 머리 스타일, 부모님이 준비해 준 깔끔한 정장 차림, 힙합을 연상하게 하는 자유로운 영혼, 아직 때가 묻지 않은 앳된 수줍은 얼굴, 여드름이 가득한 얼굴과 어울리는 교복, 한눈에 딱 봐도 둥근 안경 너머 보이는 모범생 등이 아니다.


진정 우리가 보는 것은 만남이 이루어지는 작은 공간에서 작은 의자에 앉아 대화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짧은 시간은 우리를 재촉하고 있었다. 다시 말하고 싶다. 외모와 외형은 전부가 아니다. 작은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는 절박한 소망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바로 이 시간이 중요하다.


그들이 작은 의자에서 일어나 작은 문으로 나가는 그 순간까지 나는 그들의 눈빛을 놓치지 않았다. 그 눈빛이 말하는 마지막을 읽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이라는 아쉬움이 존재하고 있다. 이를 지켜야 할 책임이 존재한다. 이별이라는 가혹한 순간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그들에게 말하고 싶다. 나 자신을 알고 스스로가 무엇을 할 것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 여러 모습과 말 그리고 몸짓 사이에 중요한 한 단어가 내 머리에 박혔다. 자신감. 작은 문과 의자 사이에 어두운 그림자처럼 느껴지는 존재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자신이 쌓아 온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생각과 행동 그리고 미래를 대표할 수 있다. 의자 맞은편에 앉아 있는 저 어두운 그림자에게... 바로 자신이 누구이며 왜 이 작은 의자에 앉을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진정 유일한 희망인이다.


신이 아닌 한 인간의 선택이 이렇게 가혹한가? 누군가를 숫자로 정의하는 게 옳은가? 정말 모르겠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긴장하는 그들은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들이다. 맞냐 그렇지 못하냐는 신의 영역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 의자를 준비할 수 없다. 오로지 하나의 작은 의자만이 존재할뿐이다. 바로 앞에서 스쳐 지나간 눈빛 하나하나가 기억난다.


한 마디도 못하고 어리둥절하게 바닥만 바라보는 시선, 처음부터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 눈을 어디로 둘지 몰라 허둥지둥거리는 시선, 하루라는 시간이 주어지면 시간이 모자를 정도 바라보는 시선, 말 못 한 것들에 아쉬움이 남은 시선, 지금 이 순간을 후회하는 시선, 다시는 오지 않을 곳이라고 직감하는 시선, 내년 봄이면 내가 있을 자리라고 확신에 찬 시선, 여기가 아니면 안 될 절박한 시선, 오로지 희망과 꿈에 기대에 찬 시선, 미리 준비된 포부와 희망을 전하는 자신감 넘치는 시선.


작은 의자에는 많은 희망과 좌절이 앉아 있었다. 그들의 숨소리가 하나하나가 느껴졌다. 두려움과 자신감이 교차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누군가는 우리가 준비한 작은 의자에 앉을 수 있으나 대부분 그렇지 못하다. 스쳐 지나가는 나의 옛 기억을 뒤로 한채, 우리는 작은 의자에 앉혀야 할 인연들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눈을 마주치고 인사하고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나는 최대한 마지막까지 훔쳐봤다. 후회, 아쉬움, 희망 등 온갖 표정들이 내게 말하는 듯했다.


그들 중 하나는 짧은 시간에 많은 걸 쏟아부었다. 오늘 밤, 조바심에 잠을 이루지 못하겠지만 분명한 것은 면접이라는 경험은 성공이든 실패든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부디 작은 실패에 허탈한 마음을 가슴에 오래 담아 두지 않았으면 한다. 하나 더, 부디 작은 성공에 자만심 가득한 가슴을 내밀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작은 의자에 앉아 긴장하는 여러 존재를 끝까지 봤다. 모두가 승리자다. 첫 실패한 자는 첫 경험을 발판 삼아 더 큰 성공을 이루길 조심스레 바란다. 반대로 성공한 자는 실패자에게 부여받은 소중한 기회를 뜨거운 가슴으로 간직하길 조심스레 바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순서만 다를지언정 그래도 이 작고 작은 의자에 앉아 힘들고 지친 경험을 한 그대들은 진정한 승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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