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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Oct 19. 2019

땡기는데

임신한 아내를 위해 만두를 기다리는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초조하게 기다리는 중이다. 그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난 13년 전 내 모습이 그려졌다. 문제는 그때 내 뒷모습은 내 앞에 있는 그와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100야드를 꼭 날리고 말겠어.’ 드라이브 샷을 날리며 나는 속으로 외쳤다. 흔히 닭장이라고 불리는 그곳에서 나는 열심히 허리를 비틀며 샷을 날렸다. 바닥에 있던 흰색 골프공은 내가 휘두른 골프채에 얻어맞더니 이내 멋지게 날아갔다. 그 순간,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이스 샷!”


집에 들어왔다. 아내는 조용히 “냉면이 먹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나는 피곤하다며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피곤해” 라며 답했다. 아내는 또 조용히 “땡기는데”라고 말했다. 나는 텔레비전을 켜며 “좀만 참아”라고 답했다. 그런 나를 보며 아내는 다시 말했다.

“나 임산부야!”


그날도 열심히 ‘나이스 샷’을 외쳤다. 그리고 또 집에 들어왔다. 아내는 내게 “냉면이 먹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나는 “피곤해” 라며 대답했다. 그런 나를 뚫어지게 보면 아내는 조용히 내게 말했다.

“속아서 결혼했어.”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서 나왔다. ‘어디 가서 냉면을 찾지?’ 동네를 두리번거리며 냉면집을 찾았다. 하지만 늦은 저녁이라 웬만한 식당은 문이 닫혀 있었다. 돌아다니다 보니 1시간이 지났다. 너무 시간이 지체되었다. 나는 아내에게 전화했다. “이 시간에 문 연 식당이 없는데.” 저만치 들려오는 아내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그냥 와요.”


냉면 득템을 포기하고 집에 오는 길, 집 앞에 환하게 불이 밝혀 있는 분식집이 보였다. 엄청난 메뉴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그곳에 내가 찾던 냉면이 있었다. 허탈감이 엄습해 왔다. 하지만, 냉면을 기다리는 임산부가 생각났다. 나는 식당에 들어가서 주인아주머니에게 말했다.

“냉면 포장되나요?”


새벽 1시, 아내는 검은 봉지에 담긴 냉면을 맛나게 먹었다. 나는 우두커니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며, 식당을 찾다가 끝내 분식집에서 냉면을 찾았다고 말했다. 그런 나를 우두커니 보던 아내는 두꺼비처럼 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내게 말했다.

“불쌍한 우리 아기”


그 불쌍한 애기가 우리 부부의 첫째 아들이었다. 임산부에게 못된 남편 이기전에 정말 나쁜 남자라는 사실을 이제 느낀다. 하고 싶은 건 모두 다 했던 나였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방금, 따끈한 만두를 손에 들고 해맑게 웃는 그가 내게 말한다.

“한 봉지 더 주문했어요. 집에서 형수님이랑 드세요.”


술 한 잔 먹은 아내는 내게 말한다.

“속아서 결혼했어. 당신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냉면 먹고 싶다고 할 때, 당신은 뭐했어?”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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