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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Oct 18. 2019

당당한 매력을 소유한 여자

이 분이 누군지 아세요?

네. 순천향 중앙의료원 노동조합 위원장이에요. 잘 아시죠? 모르시면 제가 좀 이야기해도 될까요?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그냥  제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제 글로 남기고 싶을 뿐이거든요. 그분에 대한 포인트는 <당당한 매력을 소유한 여자>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보세요.


최근, 노조 조합원 교육으로 제주도를  갔다 왔어요. 3년째이고 마지막 기회였어요. 막장에 갔다 온 셈이죠. 위원장님과 사무국장님을 포함하여 총 17명이 제주도의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다 그리고 울창하고 안락한 숲을 걸었어요. 개인적으로는 다시 찾기 힘든 기억으로 남게 될 것 같아요. 아쉬운 마지막 날, 비자나무가 울창한 비자림이라는 곳을 갔어요. 신선한 아침 그곳에는, 사람들이 앞만 보고 가고 있었어요. 청록의 나무와 그늘진 시원함을 만끽하는 듯 보였어요. 저도 똑같이 그 아름다운 분위기를 호흡하며 신비로운 길을 걸었죠. 분명, 그 길은 지난 기억을 되살리기에 최적의 장소인 것 같아요. 정말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에요. 누구에게 간접 받지 않고 사색을 즐기기에 충분하죠. 그곳에서 문득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위원장님을 언제 봤더라...'


위원장님은 내게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어요. 그때가 기억나네요. 2003년 9월 입사와 동시에, 나는 내가 일할 곳을 찾아갔죠. 지하 2층이었어요. 복도를 걸어갔어요. 근데, 이건 뭐지? 바로 옆 사무실 간판을 봤죠. <노동조합> 그때는 그랬어요. 보기만 해도 듣기만 해도, 단어 자체가 무섭고 무운 느낌이 들었죠. 조심스레 지나치며 생각했죠.

'아는 척하지 말고, 조심해야겠어.'


출근부터 퇴근까지, 심지어 화장실을 다니면서도 살금살금 그곳을 지나쳐 다녔죠. 그로부터 어느 날, 아니나 다를까. 일 한지 얼마 안 될 때였어요. 복도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무슨 일이 있나, 궁금해서 나가봤죠. 그곳에 누군가 서 있었어요. 허리에 양손을 얹고 반득하게 서 있었어요. 날카로운 콧날은 누군가의 얼굴을 향하고 있었죠. 목소리는 우렁찼어요. 단어 하나하나에 힘이 실려 있었고, 무엇보다 상대를 압도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상대가 주눅 들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아직도 기억나지만, 저에겐 이런 느낌이 남아있었죠. '저분은 무조건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구나. 또박또박 말하며 상대를 압도하고 있구나.' 그런 모습에, 살짝 지켜보다, 저는 조용히 제 일터로 향했어요. 그리고 다시 생각했죠.

'아는 척하지 말고, 절대 조심해야겠어.'

땅과 하늘을 지키고 있는 장엄한 나무 한그루가 보이네요. 이 녀석 나이는 얼마지? 50년? 100년? 500년? 아니 천년? 이 거목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짧은 만남에 불과하구나. 17년. 참 시간 빠르다. 저 멀리 뒷모습이 보이네요.

당당한 매력을 소유한 여자. 저만의 생각이에요. 보통 노동조합 위원장님께 여자라는 표현은 하지 않잖아요? 개인적으로 다른 관점에서 보고 싶어서 그러니... 웬만한 남자보다 멋지고 정도 많고 당당한 여자라고 생각해요. 듣기만 해도 매력적이지 않나요? 뭐. 아시는 분은 고개를 끄덕일 겁니다. 전 그분의 우렁찬 목소리와 서글픈 눈물을 옆에서 훔쳐봤기에, 제 눈에는 그렇게 보이네요. <당당한 매력을 소유한 여자>


문득 생각나네요. 항상 근로자인 우리를 위해 노조 대표로 움직이고 힘쓰는 당당한 모습. 2006년-2007년, 구조조정에 대항하며 붉은 띠를 머리에 두르고 함께 노동가를 불렀죠. 장구를 치며 흥겹게 소리도 질렀어요. 춤까지 추니 정말 흥겨웠어요. 부도덕한 근로 조건을 꼬집어보며 작지만 하나하나 바꾸려고 노력했어요. 전 그때만 생각하면 딱 한 가지 좋았던 게 생각나요. 남들 다 월급 동결할 때, 우리는 월급이 올랐다는 점. 지금은... 에잇 말하고 싶지 않네요.


함께 움직이면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줄 알았어요.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어요. 참 어이없는 일을 겪게 되었죠. 이명박 시절, 2011년 의료기관 최초로 복수노조가 생겼어요. 제가 알기로 국내 최초일 거예요. 저희죠.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올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직장 내에 함께한 동료들이 어느 순간 내편 네편으로 갈라지는 모습을 보았거든요. 웃기는 일이 벌어진 거죠. 어제 술 한 잔 먹었던 선생님들이 복도에 마주치면 아는 척하지도 않았죠. 심지어 삿대질하며 욕을 하는 경우도 봤어요. 웃기는 장면도 보았죠. 개인적으로 너무 혼란스러워 뭘 해야 할지 몰랐죠. 일하는 재미가 없어졌어요. 함께라는 말이 쉽게 입밖에 나오지도 않았죠. 근로환경을 개선해야 할 판에 서로 싸우고 으르렁 거리고 있으니...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가슴 아프죠. 저도 그렇지만, 하물며 위원장님은 어땠을까? 함께한 조합원들이 등을 돌리는 모습을 하나하나 경험했으니 정말 가슴 아픈 상처로 남겨졌을 거라 생각이 드네요. 아마도 탈퇴한 조합원 수만큼이나 가슴에 구멍이 생겼을 거예요. 그로부터 8년이 지났네요. 되돌아보면 '참 이벤트가 많았네. 그 속에 우리가 있었네. 조합원들 다 빠져나가서 얼마나 허탈할까. 나 같으면 미련 없이 때려치울 텐데, 위원장님도 참 대단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보다 자기 자신을 생각했으면 오히려 고통을 받지 않을 수 있을 텐데...  그때, 앞서 가던 그분이 뒤돌아 저를 보 발걸음을 멈추네요.


"홍~ 뭐해?"

"네, 구경해요."

"오랜만에 나오니까 좋지?"

"좋은데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주도를 아내보다 위원장님과 더 많이 온 것 같아요."

"일할 때 일하고, 쉴 때 쉬자."


'아는 척하지 말고, 조심해야겠어.'라는 그곳에 앉아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어요. 도통 간 적도 없고 갈 생각도 없는 직원 휴게실보다 여기가 좋아요. 서로 담소를 나눌 수 있거든요. 제일 좋은 건 식당 옆이라서 밥 먹고 커피 한 잔 하기 딱 좋죠. 이곳에서 20대, 30대, 40대를 보냈어요. 참 신기하게도 이제는 정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네요. 영원한 건 없다지만 지난 좋은 기억만큼은 꼭 영원하길... 대의원대회, 율동패, 천막농성, 집회 등 각종 행사에 참석할 때마다 힘들고 지쳤지만, 잃은 것보다 얻는 게 많았다는 걸 이제야 좀 느끼네요. 지금은 예전 같지는 않지만, 분명한 건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한 명 정도 있을 거예요.


모래성 같은 노조가 어느 순간 무너질지 모르지만, 우두커니 나아가는 힘의 원동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올까? 생각해보면, 탄탄한 조직보다는 한 사람의 외침과 소신에 따라 달라진다고 봐요. 물론 함께하는 사람들의 눈빛과 의지도 중요하죠. 노를 같은 방향으로 저어야 앞으로 나가는 법인데, 각자 딴생각하고 맘대로 하면 좋을 일이 없겠죠. 그래서 유능한 선장과 선원이 있어야 하나 봅니다.


당당한 매력을 소유하신 그분이 복도를 지나가네요. 노조 가입서를 들고 말이에요. 저는 커피를 내려놓고 사진 한 장을 유심히 바라봤어요. 고뇌로부터 잠시 벗어난 밝은 표정 지난 17년 동안 보지 못한 매력을 이제야 보게 되네요.


[관련 글 : https://brunch.co.kr/@jjh-345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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