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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an 01. 2020

첫 행선지

새해 첫날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 되짚어 보려면, 그 시점에서 공간을 기억하면 빠르다. 언제부터인지 나는 새해 그 공간을 기억하게 되었다. 최근 3년을 돌아보면, 재작년은 학교, 작년은 장례식장이다. 


올해 첫 행선지는?


별 쓸데없는, 그 공간일지 모른다. 특별한 의미는 아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볼 때, 첫 행선지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느껴진다.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이 시작은 내 마음 깊숙한, 어느 한 구석에서 작은 의미와 같이 다가온다. 가령 잔잔한 바다 위에 흔들거리는 작은 배가 항해를 위해 움직이는 순간처럼 말이다. 첫 행선지의 작은 의미는 방향키 것처럼...


재작년에는 이랬다. 무거운 책가방을 어깨에 메고,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시작부터 학교와 교실 그리고 학생으로 집중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해는 교육이라는 단어가 중심이 되었다. 작년은 또 어떠한가. 어느 한 장례식장에서, 가는 해와 오는 해를 동시에 맛보았다. 일 년 동안, 문상을 많이 다닌 것 같다.


올해는 예상치 않게 병원이다. 1월 1일 차가운 새벽, 차 안에서 쌀알처럼 부슬부슬 떨어지는 눈을 바라보며, 첫 행선지에 도착했다. 익숙하다. 나의 직장이다. 무슨 의미로 시작되는 걸까? 나는 직장이 곧 집처럼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새해에는 복을 많이 받아야 한다. 일복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룸미러 사이로 아버지 얼굴이 반쯤 보인다. 힘없이 앉아 계신다.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구고... 얼굴은 어제와 다르게 부어있었다. 언젠가, 나도 경험할지도 모르는 그것은 정말 힘든 과정일 것이라 느껴진다. 조용히 페달을 밝았다. 집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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