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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ul 16. 2023

좋은 아침입니다 2


시작은 미약하지만 벌써 세 번째 산책이다.

새벽이다. 머리를 들고 손과 발을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다.

게슴츠레한 눈을 비빈다.

오늘은 슬리퍼가 아닌 작은 운동화를 신자.

역시 도구를 사용해야 해.

문 앞을 나가는 느낌이 전보다 가볍다.


며칠 동안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공기는 작은 빗방울과 함께 연무처럼 뿌옇다.

우산이 필요하네.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내가 나에게 말한다.

피곤한데 집에서 쉬지. 뇌에서 말하는 귀차니즘.

모르는 척 잽싸게 밖으로 나왔다.



역시 운동화가 좋군. 걷는 게 빨라졌다. 

들고 온 우산이 불편하다. 부슬비가 내리다 말다를 반복한다.

그냥 접어야겠다.

천천히 걷다 보니 좌우로 빠르게 사람들이 지나간다.

나이 많은 한 어르신은 맨발의 청춘처럼 빠르게 치고 나간다.

그의 발꿈치에서 대지의 기운이 느껴진다.

고개를 내려 운동화를 봤다. 

나도 벗고 갈까. 아니야.

엉뚱한 생각을 접고 그냥 걷는다.


온몸이 축축해진다. 습식 사우나에 있는 것 같다.

뛰지도 않고 그냥 걷기만 했을 뿐인데 머리는 부스스해지고 살랑거리는 옷은 축 늘어졌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네.

나의 뇌와 싸워서 이겼으니 승리자의 기쁨을 즐기자.


집에 돌아왔다. 아직도 꿈나라에 있네. 각자 딴 세상에서 살고 있었다.

그들이 눈을 뜨면 나만의 시간은 없어진다. 서두르자.

찬물로 시원하게 샤워를 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선풍기를 틀었다. 강풍은 최대로 하고 머리를 말린다.

심심해서 어제 읽던 책을 가져와 쭈그려 앉았다. 

배고픔이 싹 없어지는 순간이다. 따듯하고 푸짐한 아침을 먹는 기분이다.

이래서 주말이 최고야.


무더운 한여름 열기를 식히기 위해 선풍기 앞에서 

아~ 

선풍기와 대화하는 과거가 떠오른다.


지금에 감사하니 한결 겸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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