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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홍 Jun 13. 2019

마지막 출근

천사들이 묵어가는 집에서

무한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네모 상자에는 <졸따구> 4명이 있다.

<졸따구 J>를 비롯하여 D, L, S가 있다. 이중 <졸따구 L>은 사진 한 장과 함께 문자 하나를 네모 상자에 투척했다.

와이프 마지막 출근


<졸따구 L>의 아내는 신생아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다. 내가 듣기로 아내는 이렇다. 이쁘고 한없이 천사 같은 아이들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신생아실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걸 너무 행복하고 즐겁다고 했다. 또한 마음가짐만큼이나 실력도 대단하다고 들었다. 분유를 먹이거나 기저귀를 교체하는 일은 식은 죽 먹기라고 한다. 여러 아이들을 한꺼번에 돌보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런 그의 아내가 오늘 나이트(Night) 근무를 한다. 마지막으로 천사들의 천사 역할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사진 한 장은 애틋한 감정이 어있다. 아쉬움은 기본이고, 처음 이 곳에 발을 내딛고, 스스로 다짐하고, 열심히 땀 흘리며 천사들과 지내왔던 삶의 터전을...... 그리움을 뒤로하고 이제 떠나야 한다. 저 멀리 작은 구석 무엇인가 먹먹한 느낌이 전달된다.


남편인 <졸따구 L>은 네모 상자의 특별한 기능인 사진 찍기를 실행하고 아내를 바라본다. 웃으며 손가락을 V자로 포즈를 취하는 천사의 아쉬움과 기대 그리고 지난 시간에 대한 그리움, 그는 작은 사진 한 장에 담아냈다. 찰나의 순간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이제 외벌이를 해야 하는가. 나는 이제 아내의 잔소리 숲에서 생존해야 하는 가. 그냥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할까. 음...... 이게 정답인가. 돌이킬 수 없다면 새롭게 응원할까. 아니야. 그래도 수고 많았어. 우리 와이프. 오늘 마지막 출근 잘해'


나를 비롯해 <졸따구 D>와 S도 충분히 느꼈다. <졸따구 L>은 가계의 수입과 지출을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렇지만 우리에겐 감정이 있다. 돈은 물질이다. 감정은 파도와 같다. 잔잔한 물결처럼 다가오지만 이내 성난 파도처럼 우리 마음을 요동치게 만든다. <졸따구 L>은 분명 돈 따위 물질보다는 아내의 수고와 두려움을 함께 하고 자 하는 사랑스러운 동반자라는 사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것이다.




지난 과거를 돌이켜 생각해 볼 필요는 없다. 그래도 잠시 한 문장으로 나만이 느끼는 두 번의 마지막 출근을 기록해 보고 싶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 나의 첫 직장에서 치료를 완료하지 못하고 뒤돌아 그곳을 나와야 했고, 2003년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의 상태를 초조하고 긴급하게  X-ray 촬영을 마무리하고 삼겹살과 소주 한 잔으로 마지막 출근을 했던 기억.


<졸따구 L>의 아내는 웃으며 마지막 출근을 시작한다. 다음날이면 천사들이 묵어가는 집에서 아쉽지만 환한 웃음을 잃지 않고 또 다른 그리움을 가득 남기고 저 멀리서 천사가 걸어 나올 것이다. 과연 우리의 <마지막 출근> 모습은 어떨까. 예상은 된다. 평온함과 자신감 뒤에 감춰진 두려움과 걱정거리. 다행히 아직은 아니다. 그러나 마음의 준비는 항상 해야 한다.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천사의 아쉬움과 발걸음은 훗날 우리의 모습이 될 것이다. <마지막 출근>은 출근하는 자 즉, 직장인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수신호와 같다. 우리도 <졸따구 L>의 천사와 같이 환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V자로 포즈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졸따구 J, D, L, S>는 분명 즐겁고 신나고 환하고 밝고 긍정적이며 차분하게 <마지막 출근>을 기다릴 것이다. 웃어볼 틈도 없다. 네모 상자는 시끄럽게 흔들어 대고 있다. 네모 상자에는 졸따구들 끼리 주절주절 보내는 신호와 함께 잔잔한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고생 많았어요.

수고 많았어요.

축하합니다.

감사합니다.



-끝은 또 다른 시작과 같다. 마지막은 없다.


<아기천사 사진 출처 : https://bookhand.tistory.com/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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