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홍 Jul 21. 2019

검은 닌자 고양이

글자를 먹어치우는 괴물

점심시간 <쫄D>의 뒷모습이 보인다. 둥글고 두툼해 보이는 어깨선, 자세히 보니 아주 작은 검은 물체가 보인다. 나는 독수리 눈으로 감지한다. 얼굴에 검은 두건을 쓰고 있어 확실히 보이는 건 작고 하얀 동그라미 두 개가 전부다. 나와 눈빛이 마주친 그 녀석을 힐끗 쳐다보고는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지나간다. 나는 순간 깜짝 놀랐다. 뒷모습에 은빛 색의 검 자루 두 개가 보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서로 X자로 교차하며 형광빛에 반사되고 그 표식은 흡사 위험을 알리는 경고 신호처럼 보였다.



그 녀석은 조용하고 은밀하게 <쫄D>의 어깨를 탐사하고 있었다. 열심히 뛰어가며 좌우를 살피는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나의 매서운 눈은 그의 뒷모습을 인지한다. 자세히 보니 뒤에 꼬리가 있네. 검은색이다. 건성으로 봤다면 분명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그 순간, 그 녀석이 검은 고양이 일지 모른다고 분명하고 직감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검은 닌자 고양이.


검은 닌자 고양이는 <쫄D>의 둥근 어깨를 쉼 없이 내달렸다.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지 모른다. 그러나 방향은 그의 목덜미를 넘어 머리 쪽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나는 잠시 고양이를 지켜봤다. 무엇을 할 모양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기도 하지만 온전히 호기심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우두커니 둥근 어깨를 바라본다. <쫄D>의 목덜미에 아주 작은 검은 형체를 응시해 본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하며...


<쫄D>는 자신의 어깨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고 있다. 정말 모르고 있다. 그는 앞에 놓인 모니터만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다. 무엇을 그렇게 하고 있는가. 엄청난 에너지가 그의 온몸에 흐르고 있다. 파장의 강도는 가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높다. 지금은 점심시간이다. 그래서 더욱 그럴 법도 하다. 방금 섭취한 맛난 음식은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눈빛으로 모아진 에너지는 모니터를 뚫어버릴 기세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에너지 충만한 볼트 맨으로 만든 것인가. 아. 잠시 잊고 있던 존재. 그의 어깨를 제집 앞마당처럼 신나게 튀어 노는 닌자 고양이는 대체 무엇인가. 그의 몸에 내뿜는 에너지가 공간으로 전달되고 있다.


검은 닌자 고양이는 삽시간에 그의 목덜미를 넘어 우측 귓불 앞까지 갔다. 이윽고 힘 있는 뒷다리를 가진 개구리처럼 점프를 하더니 귓구멍 앞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닌자 고양이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귓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검은 구멍과 검은 형체가 만나니 방금 전 신나게 달리던 닌자 고양이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 잠시 뒤, 키보드 위에 얹어진 <쫄D>의 오른 손가락이 우측 귀로 향했다.


<쫄D>의 에너지는 갑자기 증가한다. 그의 둥근 어깨가 변하고 있다. 지난여름에 턱걸이 운동으로 다져진 모습으로 바뀌어간다. 잠시 뒤 둥근 어깨는 어느새 각지고 네모난 어깨가 되었다. 그 모습은 분명 추운 한겨울에 물에 빠진 고양이가 탈출하여 허리를 곶곶이 세우고 앞발과 뒷발을 일자로 들어 올리는 자세와 흡사했다.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난다. 그의 엉덩이가 양 옆으로 부풀어 올라가고 있는 것이다. 의자 옆에 뚫린 작은 공간 사이로 엉덩이 한 부분이 꽉 차고 있었다. 나는 자칫 나의 손에 들려 있는 볼펜으로 이쁘게 올라온 그 부위를 찌를 뻔했다. 그러나 그럴 여유도 없이 새로운 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둥그런 똥배가 맹꽁이처럼 커지는 게 아닌가. 계속 부풀어 오르면 어쩌지? 다행히 터질 것 같은 살은 비좁은 옷에 갇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다행이라 생각할 즈음 <쫄D>는 옆에 있던 두꺼운 책을 들고 펼치더니 그 속에 적힌 수많은 글자들을 먹어대고 있었다. 깊고 검은 골짜기와 같은 그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글자들은 눈과 코와 귀 그리고 검은 머리칼에 엄청난 에너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글자를 먹어치우는 괴물.


그 녀석 때문이다. 검은 닌자 고양이가 그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를 조정하고 있다. 내 예상은 맞다. 나는 분명 둥근 어깨너머에서 목덜미를 너머 그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걸 보았기에. 검은 닌자 고양이는 그의 야성을 깨우는 기폭제 인지도 모른다. 그의 눈과 귀와 머리는 터지고 에너지 충만한 괴물로 변화된 것이다. 역시 기폭제는 그의 머리를 폭파시켰다. 에너지 덩어리는 산산조각 나서 물방울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간다. 글자들이 공간에서 춤을 추며 그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그는 즐거워한다. 머릿속 글자로 채워진 물방울은 마음을 가볍게 해 주고 있다.


하지만 검은 닌자 고양이는 또 다른 하나를 선물을 던져줬다. 어느새 통나무 같은 일자 모양의 몸체는 집에서 사료만 먹고 운동하지 않아서 배가 바닥에 붙어 어기적거리는 얌전하지만 게으른 고양이처럼 변하고 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퇴근 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