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보고서

호기심 천국

태풍이 사라진 주말 아침, 아직 비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구름이 잔뜩 낀 날씨에 습한 공기를 가득 머금은 부슬비다. 행복한 우리 집이라는 이 작은 공간에 하루를 보내기엔, 나는 너무 아니다 싶다고 생각했다. 오전 중으로 비가 그칠게 뻔하다는 판단하에 가족들에게 무작정 나가자고 말했다. 핸드폰에 빠져있는 아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좋아했다. 분명하다. 게으름이 찾아오기 전에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아이들의 성지를 두 가지로 나눠 보았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놀이터와 집에서 제일 먼 갯벌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후자를 선택했다. 운전대에 앉아 목적지를 검색하고, 느낌 가는 대로 지난 여행지를 결정했다. 시동을 켜고 바로 출발한다. 옆 좌석에는 친구들과 놀기를 체념한 듯 안전띠를 움켜잡고 창문 너머 먼 풍경을 보고 있는 아들 녀석이 있었다. 뒷 자석에는 신나서 노래를 부르며 흥얼거리는 딸과 아내가 있었다. 그렇게 우리의 일요일 아침은 시작되었다.

1시간을 달렸다. 아무리 가까운 곳이라도 갯벌이라는 장소를 가기 위해서는 적어도 1시간은 투자해야 한다. 물론 걸어서는 못 간다. 차 기름값도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족의 안전을 최우선이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하기 위해서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갯벌에 가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 혹은 투자는 <시간, 돈, 정신력>이다. 결국 투자의 완성은 저 멀리 펼쳐진 바다와 아이들의 성지인 갯벌이 될 것이다.

비는 이미 멈췄다. 구름에 가려진 태양이 우리에게 인사한다. 나는 선글라스를 준비 안 한걸 후회하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눈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진다. 나빠도 다들 어디 갔지? 그들은 투자의 완성을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바닥만 보며 보물을 찾는 중이었다. 1시간 전만 해도  핸드폰에 빠져 있던 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갯벌 아래를 뒤졌거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또한 집에서 제일 먼 놀이터를 접한 딸은 엄마 손을 뿌리치고 오빠와 경쟁이라도 하는 듯 갯벌을 탐사하고 있었다. 무엇이 그들을 하늘이 아는 땅바닥을 보게 했는가.

나는 선글라스 대용으로 검은 우산을 들고 갯벌을 응시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 멀리 호기심에 이리저리 탐사하고 있는 아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갯벌은 호기심 천국이다. 돌 사이에 바닷물이 제 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듯 탐사대원들을 피해 바닷길 쪽으로 흐르고 있다. 그 사이로 생긴 물길은 어느 고귀한 지구의 풍경을 축소한 듯한 모습을 담고 있었다. 아주 깊은 협곡을 지나 대지의 생명을 가득 안고 거침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말이다. 작은 돌을 들어본다. 돌 틈 사이에 짝짓기를 하는 이름 모를 갯벌의 주인인 게 두 마리가 보인다.

“아빠! 게 담아서 가져가서 키울까?”

저 멀리서 아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나는 내 발 밑에 있는 게를 바라보며 말했다.

“짝짓기 중인 녀석들 빼고”

“어?!”

나는 아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특별한 반응이 없는 아들은 제 할 일이 남아 있는 듯 도망갔다. 이 녀석 <짝짓기>를 아는군. 지금 너에겐 갯벌에 있는 게들이 호기심 대상이겠지만, 너는 나의 호기심 대상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여름철 호러 영화인 <미저리>가 갑자기 생각난다. 다음 독서는 <미저리>가 될 것 같다.

딱 30분을 놀았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라 할지라도 체력은 차이가 있다. 무한 에너지를 자랑하는 아들과 달리 저질 체력을 가진 딸은 지쳐 있었다. 호기심의 부작용이다. 작은 꼬마 숙녀는 이미 몸과 마음이 방전된 듯 보였다. 나의 두 번째 호기심 대상이 힘들고 지쳐 있으니 이를 어쩌나. 해결은 집으로 가는 길 뿐이다.

나는 운전대를 잡고 시동을 켜고 준비한다. 가족 운전사로 완벽한 자세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꼈다. 자세를 가다듬고 다시 한번 투자 3요소를 생각해봤다.

<시간, 돈, 정신력>

마지막 투자의 완성을 끝내고 보고서를 작성해본다.

오늘 투자는 가성비 최악이다.
하지만 호기심 천국에서 짝짓기 게들과 놀았던 재미는 기억할 것이다.
즐거움이라는 투자의 미래는 가치를 논할 수 없을지 모른다.
-130보고서.